‘문재인을 과거의 남자로 몰아가라’
▲ 문 후보(오른쪽) 측에 대한 안 후보 측 공세가 거칠어지는 등 신경전이 본격화되고 있다. |
지난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민주통합당사 대회의실. 전국지역위원장단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하는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비장감이 깃들여 있었다. 문 후보는 “(단일화) 합의는 잘됐는데 구체적 협의에 들어가면 곳곳에 암초나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늘 디테일(세부사항)이 문제 아닌가. ‘악마는 디테일 속에 있다’는 그런 말도 있다”는 말도 했다. 그는 “민주당은 중요한 고비 고비마다 통합과 합당 등을 통해 외연을 넓혀 왔고, 그 힘으로 선거를 이겨낸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이번에도 민주당이 더 크게 넓어지면서 우리가 다시 정권 교체의 주인공이 되는, 그래서 세 번째 민주정부를 우리 힘으로 이끄는 선거를 꼭 만들어내자”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날 문 후보의 연설은 자신과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사이에서 여전히 팔짱을 낀 채 관망하고 있는 당내 인사들을 향해 던지는 호소이자 쓴소리였다. 민주당의 전통을 거론하면서 ‘이대로 다 빼앗기고 있을 거냐’고 다그친 것이다. 전에 없이 비장하고 강한 어조로 이뤄진 그의 연설은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양보할 수 없는 경쟁이 본격화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지난 6일 문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 합의’를 이룬 것을 기점으로 양측은 총력전 태세에 돌입한 모습이다. 두 후보 선거캠프의 움직임, 캠프 관계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졌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같은 분위기 변화에 대해 “전쟁이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양측 모두 살아남기 위한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문 후보 측은 우선 조직력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8일 전국의 지역위원회 위원장들을 한 데 모았고, 그 전날인 7일에는 의원총회를 열었다. 127명의 현역의원, 이들을 포함한 243명의 지역위원장들이야말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문 후보를 위해 백병전을 치러줘야 할 자원들이다. 이들이 바닥 민심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문 후보 선대위 관계자는 “전통적인 야당 지지층, 특히 호남의 지지층 중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과 안철수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이런 때일수록 당 조직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기대감을 표했다.
바닥 민심을 바꾸기 위해 후보뿐 아니라 당 지도부, 선대위 지도부들도 적극 나서고 있다. 2선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는 각각 충청과 호남으로 내려가 당원 교육에 매진한 지 오래다. 박영선 공동선대위원장과 우상호 공보단장 등도 최근 호남에 내려가 심상찮은 지역 민심을 다잡는 데 일조했고, 추미애 국민통합위원장도 전국 순회에 들어갔다. 대선후보 경선 때 경쟁자였던 정세균 의원도 강연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계와 학계 등에서 문 후보 지지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것은 이 같은 조직망이 가동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 후보 측은 동시에 단일화 룰을 통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태세다. 문 후보 측은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단일화’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되는 단일화’ ‘지지층뿐 아니라 국민과 통합하는 단일화’ 등을 단일화 3원칙으로 제시한 바 있다. 모바일 경선까지는 관철시키지 못하더라도 단순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실제로 김부겸 공동선대위원장은 “100만 명 가까운 선거인단이 참여해 문 후보를 대선후보로 선출했는데, 그 지지층을 완전히 무시한 채 여론조사로 단일후보를 정할 수는 없다”며 “TV토론뿐 아니라 전국 권역별로 3∼4회의 토크 콘서트도 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민들이 문 후보와 안 후보를 동시에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그게 단일후보 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한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깔고 있는 것이다. 이목희 기획본부장도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국민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단일화가 필요하다” “모바일 경선 준비기간이나 여론조사 준비기간이나 다를 게 없다”는 논리를 설파하고 있다.
안철수 후보 측도 가만히 앉아서 여유나 부리고 있는 게 아니다. 특히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문 후보 측과 민주당을 향해 거칠게 비난하는 등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들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일 유민영 대변인이 별도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강한 유감을 표한 것은 안 후보 측의 기류에 큰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유 대변인은 “왜곡된 정보가 언론에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것은 합의 정신이 아니다”며 “(안 후보의) 조광희 비서실장을 통해 문 후보 측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고 밝혔다. ‘안 후보가 지난 6일 문 후보와 만난 자리에서 신당 창당 얘기를 했다’ ‘안 후보가 단일후보 자리를 문 후보에게 양보하고 차기 대선에 도전할 것이다’는 식의 보도가 잇따른 데 대한 반응이었다.
유 대변인의 비판은 민주당 인사들을 향한 모양새를 취했지만 결국 문 후보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안 후보와 문 후보 간의 단독 회동 내용이 왜곡 전달되고 있다면, 이는 곧 문 후보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안 캠프 측의 기류를 의식한 문 후보는 최근 ‘더 이상 안 후보 측을 자극하지 말라’며 입단속을 주문하기도 했다.
김성식 공동선대본부장의 발언 수위 역시 이전과 다르다. 김 본부장은 최근 백브리핑 과정에서 기자들에게 “여론조사 보도 때 신중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다. 야권 단일후보로 누가 좋은지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종종 문 후보가 안 후보에 앞서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 여기에는 새누리당 및 박근혜 후보 지지층의 역선택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이는 문 후보 측에서는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김 본부장의 발언을 그대로 해석하면 새누리당 지지층이 대선 승리를 위해 문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가 되도록 밀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안 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한 실무자는 “문 후보가 아무리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분명한 사실은 표의 확장성 면에선 안 후보가 월등히 우세하다는 점”이라며 “이 부분을 지지층에게 분명히 알림으로써 지지자들의 ‘전략적 선택’을 유도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안철수 = 미래 = 승리’ ‘문재인 = 과거 = 패배’ 식의 프레임을 구축해 나가는 게 안 후보 측의 핵심 전략임을 알 수 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