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만 하면 ‘펄펄’…‘밭’이 문제?
▲ 조인성이 지난 8월 9일 9회말 끝내기 홈런을 친 뒤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11월 5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선 ‘2012 정규 시즌 MVP·신인왕 시상식’이 열렸다. 예상대로 한국야구기자회 투표 결과 총 91표 중 73표를 획득한 박병호는 장원삼(삼성·8표), 브랜든 나이트(넥센·5표), 김태균(한화·5표)을 따돌리고 MVP의 영예를 안았다. 신인왕 투표에선 서건창이 91표 중 79표를 얻어 박지훈(KIA·7표), 최성훈(LG·3표), 이지영(삼성·2표)을 압도했다.
▲ 2012 정규시즌 MVP 박병호(오른쪽)와 신인왕 서건창.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
박병호는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LG에 1차 지명선수로 지명돼 입단했었다. LG는 박병호를 ‘차세대 거포’로 키우려고 많은 기회를 줬다. 그러나 박병호는 2010년까지 1군과 2군을 오가며 꽃을 피우지 못하다 지난해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다.
서건창 역시 2008년 LG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바 있다. 하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방출됐고, 군복무를 마치고서 넥센에 신고선수로 입단해 올 시즌 만점 활약을 펼쳤다.
# ‘탈 LG 효과’의 역사
LG만 떠나면 실력을 발휘한다는 이른바 ‘탈 LG 효과’는 역사가 깊다. 1990년 김상호부터 시작됐다. 1988년 LG의 전신인 MBC에 입단한 김상호는 1989년까지 평범한 선수였다. 하지만, 1990년 OB(두산의 전신) 투수 최일언과 맞트레이되고서부터 실력이 만개했다. 그는 1995년 OB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해 정규 시즌 MVP를 거머쥐었다.
2004년엔 이용규가 김상호의 뒤를 이었다. 그해 덕수상고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한 이용규는 데뷔 첫해 타율 1할2푼9리를 기록했다. 고졸 신인이었기에 더 지켜볼 만도 했지만, LG는 2004시즌이 끝날 무렵 이용규를 KIA로 트레이드했다.
▲ 이용규. 사진제공=KIA 타이거즈 |
2009년엔 김상현이 이용규의 바톤을 받았다. LG에서 뛸 당시 장타력은 있으나, 타격정확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던 김상현은 2009년 4월 KIA 투수 강철민의 트레이드 때 박기남과 함께 KIA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LG 관계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김상현을 주고, 즉시 전력감인 강철민을 얻었으니 전혀 손해볼 게 없는 장사”라고 평했다.
하지만, 그해 김상현은 타율 3할1푼5리, 36홈런, 127타점으로 정규 시즌 MVP에 올랐고, 소속팀 KIA를 12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밖에도 LG에 있을 때 자기 포지션 없이 떠돌던 이성열은 두산으로 이적하고서 2010년 24홈런, 86타점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고, 올 시즌 FA(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LG를 떠나 SK로 이적한 조인성도 회춘에 성공했다.
# ‘탈 LG 효과’는 왜 생기나
‘탈 LG 효과’가 되풀이되는 이유는 구단 탓이 크다. LG는 삼성 다음으로 선수단 지원에 열심인 구단이다. 하지만 구단 운영은 낙제였다. 우선 감독이 자주 바뀌면서 구단 운영의 연속성을 담보하지 못했다.
1990년 창단한 LG는 23년 동안 10명의 감독을 교체했다. 평균재임기간이 2.3년. 2000년 이후엔 6명의 감독이 바뀌며 수명이 2년으로 단축됐다.
문제는 1군 감독이 바뀔 때마다 2군 코칭스태프도 물갈이되면서 유망주들이 매번 새로운 야구이론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상현, 박병호는 입을 모아 “전임 코치를 통해 열심히 배운 타격폼이 후임 타격코치가 부임하면 전면 백지화됐다”며 “이 코치, 저 코치의 지도를 받다보니 나도 내 타격폼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털어놓았다.
감독만큼 구단 사장, 단장이 자주 바뀐 것도 악재였다. 이들은 그룹계열사에서 넘어온 이들로 야구문외한이 다수였다. 대개는 야구단이 마지막 직장일 경우가 많았다. 당연히 신인 선발, 트레이드, 2군 운영은 직원들에 맡긴 채 이들은 자리 보전을 위해 1군 성적에만 관심을 뒀다. 이용규, 김상현, 박병호처럼 팀 내 최대 유망주를 버린 것도 당장 우승을 위해 즉시전력감을 구하려다 생긴 악수였다.
올 시즌에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한 LG는 ‘탈 LG 효과’를 종식하고자 여러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선 2군 훈련장 이전이다. LG는 현재 경기도 이천에 2군 훈련장을 짓고 있다. 현 구리시의 2군 훈련장인 챔피언스파크를 떠나 빠르면 내년부터 이천에서 유망주를 키울 예정이다.
여기다 1군 감독이 바뀌어도 2군 코칭스태프는 계속 끌고 간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LG는 별도의 2군 매뉴얼을 작성해 어느 감독과 코치가 부임해도 지도의 연속성을 유지할 방침이다. 무엇보다 1군 감독의 임기를 철저히 보장해 최대한 여유를 갖고 팀을 재건할 예정이다. LG의 다짐이 과연 얼마나 지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