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깰 일도 아닌데…” 단일화 시간표 왜 자꾸 늦춰
▲ 피 말리는 주도권 대결…안철수 후보가 단일화 협상 중단 카드를 꺼내 들자 문재인 후보는 민주당 지도부 총사퇴를 포함한 ‘통 큰 양보’를 보여주며 ‘공’을 다시 안 후보에게 던졌다. 일요신문 DB |
충격과 멘붕은 야당을 출입하면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측을 취재하고 있는 기자들에게도 찾아왔다. 협상 중단 이유에 대한 안 후보 캠프 관계자들의 공식·비공식 설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에둘러 표현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말해라” “진짜 화가 난 이유가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기자들이 보기에도 안 후보 측의 행보가 납득이 안 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대선 국면의 모든 시선을 집중시킨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허탈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이는 거듭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협상 중단이라는 안 후보 측의 극단적 선택을 두고 뒷말이 무성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안 후보 측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대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론조사) 지지율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알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문 후보 측과 민주당이 보여주고 있는 구태, 옛날 방식의 정치행태를 방치했다간 감동 있는 후보 단일화는 불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단일 후보가 선출되더라도 지지층 이탈이 불가피하며, 그렇게 되면 결국 정권 교체와 정치 혁신이라는 당초 목표도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안 후보를 이처럼 암울한 전망과 위기감에 빠지게 만든 민주당의 구태, 옛날 방식의 정치행태 중 첫 번째는 이른바 ‘안철수 양보론’ 유포다. 지난 6일 안 후보와 문 후보가 단일화 합의를 이룬 뒤부터 줄기차게 문 후보 측에서 “결국 안철수 후보가 양보하고 차기를 노릴 것”이라는 주장이 흘러나왔고, 이 같은 발언이 담긴 언론 보도를 근거로 민주당이 조직적으로 ‘안철수 양보론’을 유포시켰다는 것이다.
안 후보 선거캠프 민원실 관계자는 “‘안철수 펀드’를 모집한다고 알리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양보한다면서 무슨 펀드를 모집하느냐’는 식의 문의 전화와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밑바닥 조직을 통해 ‘안철수 양보론’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했다”며 “이런 마타도어는 결국 안 후보 지지층을 이탈시키기 위한 저급한 술수”라고 말했다.
‘안철수 양보론’과 함께 안 후보 측을 자극한 또 다른 민주당의 구태는 조직 동원이다. 문 후보 선대위 시민캠프와 특보단 차원에서 민주당원 및 지지층에게 광범위한 문자 메시지가 살포됐는데 그 내용이 결코 그냥 봐주고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안 후보 측이 공개한 문제의 문자 메시지는 여러 건이다. 우선 발신자가 ‘시민캠프’로 돼 있는 “오늘 단일화와 관련한 중요한 여론조사가 몇 차례 시행됩니다. 여론조사 시간은 5∼7분 정도 소요됩니다. 다소 긴 내용이지만 중요한 여론조사이니 필히 전화응대해 주시기 바랍니다”는 메시지가 있다. 또 다른 문자 메시지는 “제가 문재인 후보의 금융특보로 임명돼 본격적으로 문재인 펀드 모집에 발 벗고 나서게 됐습니다. 부탁드리오니 최소 금액 1만 원이라도 좋으니 꼭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천인에 제 이름을 꼭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안 후보 측은 “집 전화를 휴대전화로 착신할 수 있게 설정하도록 독려하고 있고, 펀드 모집과 지지자 모집을 할당하는 등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며 “마치 우리를 새누리당 대하듯 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문 후보 측 협상 대표들의 오만한 태도도 안 후보 측을 자극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후보의 정무특보였던 백원우 전 의원이 새누리당 출신으로 현재는 안 후보 측 미래기획실장을 맡아 단일화 룰 협상 대표로 참여하고 있는 이태규 씨를 비난하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일부 친노 인사들이 이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안 후보 측은 단일화 룰 협상 당시 ‘안철수 양보론’과 조직 동원, 백 전 의원의 행태 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으나 문 후보 측 협상 대표들이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히려 “뭘 그런 걸 가지고 문제를 삼느냐. 당신들은 문제가 없느냐”는 식으로 나왔다는 얘기도 들린다.
안 후보 측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민주당은 당연히 억울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안철수 양보론’에 대해선 부주의했고 부적절했지만 사석에서 나온 발언들을 어떻게 다 통제할 수 있느냐는 반응이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발언 당사자로 몇몇 의원이 지목됐는데, 그런 발언을 했던 의원들을 다 색출해 낸다면 나를 비롯해 수십 명은 될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한 것도 아닌데 그걸 문제 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조직 동원 논란에 대해서도 문 후보 선대위 진성준 대변인은 “당 조직이 자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두고 조직 동원이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거캠프 관계자는 “시민캠프는 엄밀하게 보면 당 조직도 아닌데, 우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한 자원봉사자에게 ‘너 구태 정치 하고 있으니 반성해라. 그런 짓 그만 해라’라고 얘기하라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태규 씨 논란에 대해서도 백 전 의원의 행동은 비판받아야겠지만, 하필 이 씨를 협상 대표로 내세운 안 후보 측도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아무리 민주당이 어려움에 처했다고 하더라도 4·11 총선 때 새누리당에 공천신청까지 했던 사람이 안철수의 대리인이라고 나타나서 우리를 구 정치 세력으로 몰아세운다면 누가 수긍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안 후보 측은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문 후보 측은 억울함을 삼키듯 뒤에서 볼멘소리를 쏟아내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제3자들의 시선은 비교적 중립적이다. 두 후보 중 어느 쪽이 잘못했다기보다는 단일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필연적인 갈등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정치평론가는 “문 후보 측에서 일부 금도를 벗어난 행동을 보이긴 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엄중한 과제 앞에서 판을 깰 만큼 대단한 사건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평가는 곧 안 후보 측의 극단적 선택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 평론가는 안 후보에 대한 검증 공세가 한창 뜨거울 당시 안 후보 측 금태섭 상황실장이 정준길 전 새누리당 공보위원으로부터 협박을 받았다고 폭로했던 사례를 들면서 “최근 안 후보 측 행태가 당시와 오버랩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금 실장의 폭로 기자회견이 결국 안 후보를 검증 국면에서 탈출시킨 효과가 있었다”며 “이번 단일화 협상 파행이 ‘문재인 상승, 안철수 하락’으로 요약되는 최근 추세를 한번 크게 흔들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관계자도 “안 후보 측이 ‘새 정치 대 구정치’ 프레임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걸 보면 최근 논란은 다분히 저쪽(안 후보 측)에서 의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안 후보 측이 단일화 협상을 그냥 깬 게 아니라 ‘민주당이 구태 정치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협상을 못하겠다’는 식으로 치고나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런 논란이 시끄러워질수록 문 후보와 민주당이 구태 정치 세력처럼 비쳐질 수밖에 없다”며 “안 후보로서는 이를 통해 단일화 협상에서의 주도권도 쥐겠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에도 3차례나 파국의 위기가 있었던 점을 예로 들면서 문 후보와 안 후보 모두 결국에는 판을 깨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협상 중단 사태가 적잖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한 정치평론가는 “안 후보 지지층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무당파층은 ‘아름다운 단일화’를 기대했을 텐데 최근 흘러가는 양상은 이와 정반대”라며 “정치 혐오증이 있었던 무당파층이 결국 다시 떨어져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단일화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얘기다.
협상 중단과 갈등 봉합 과정에서 문 후보와 안 후보 양측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점도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두 후보 선거캠프 실무자들끼리 감정이 상한 것도 문제이지만, 두 후보 간의 신뢰에도 적잖은 금이 간 측면이 있다”며 “단일화 이후 화학적 결합이 만만찮은 과제가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박공헌 언론인
승부수 띄운 문재인의 계산은?
‘안 후보, 담판으로 화답하시게’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경색됐던 후보단일화 협상에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지난 11월 18일 12시 30분 이해찬 대표가 퇴진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찬 대표와 지도부가 아주 어려운 결단을 해 주셨다”며 “안 후보 측에 조속한 단일화 논의 재개를 촉구한다. 여론조사 방식이든 여론조사+α 방식이든 단일화 방안을 안 후보 측이 결정하도록 맡기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광주전남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 기자회견 소식에 “광주 일정이 끝나는 대로 가까운 시일 내에 문 후보를 만나겠다”고 전했다. 문 후보의 예상치 못한 전격적인 반격카드에 안철수 캠프는 당혹해하며 대응책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안 캠프 측 한 출입기자는 “민주당에서 ‘이해찬 사퇴 카드’를 언제 쓸 것인가를 두고 조율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금요일부터라고 알려졌는데 이후 3일 동안 캠프에서 그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해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캠프에서는 자칫 자신들이 단일화 협상을 중단하면서까지 요구한 민주당 정치쇄신이 꼭 친노그룹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되진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사실 문재인 후보가 전격적으로 단일화 협상방식에 대해 일종의 ‘백지수표’를 안 후보에게 위임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강했다. 거대 야당의 힘을 가진 문 후보가 통 크게 양보하지 않는 이상 경색국면이 해결되기 어려웠고, 단일화 효과 반감으로 본선 승리가 위태로운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 안팎에서는 문 후보의 기자회견 며칠 전부터 “전부 다 던지고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던 국면이었다.
이제 공은 안철수 후보에게로 넘어갔다. 문 후보가 ‘백지위임장’을 준 만큼 그에 화답하는 설득력 있는 카드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문 후보의 통 큰 양보가 양측의 담판으로 귀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안 후보가 담판을 끝까지 거부하고 경쟁방식을 추진할 경우 그에게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뒤따를 전망이다. 여론조사를 포함한 방식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내놓을 경우 문 후보의 통 큰 양보와 비교되는 ‘이기적인’ 행보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19일부터 야권 단일화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민주당 대선캠프에 있는 한 보좌관은 “이제 유권자들의 관심이 안 후보 측이 무엇을 내놓을 것인지에 쏠리면서 부담을 안게 됐다”라며 “안 후보가 협상중단으로 주도권을 잡았지만 문 후보의 대 결단으로 다시 명분싸움에서 밀리게 됐다. 타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안 후보가 어떤 카드를 쓸지 상당히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안 후보, 담판으로 화답하시게’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가 경색됐던 후보단일화 협상에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지난 11월 18일 12시 30분 이해찬 대표가 퇴진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이해찬 대표와 지도부가 아주 어려운 결단을 해 주셨다”며 “안 후보 측에 조속한 단일화 논의 재개를 촉구한다. 여론조사 방식이든 여론조사+α 방식이든 단일화 방안을 안 후보 측이 결정하도록 맡기겠다”고 말했다.
같은 시각, 광주전남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안철수 후보는 민주당 기자회견 소식에 “광주 일정이 끝나는 대로 가까운 시일 내에 문 후보를 만나겠다”고 전했다. 문 후보의 예상치 못한 전격적인 반격카드에 안철수 캠프는 당혹해하며 대응책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안 캠프 측 한 출입기자는 “민주당에서 ‘이해찬 사퇴 카드’를 언제 쓸 것인가를 두고 조율하기 시작한 것이 지난 금요일부터라고 알려졌는데 이후 3일 동안 캠프에서 그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해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캠프에서는 자칫 자신들이 단일화 협상을 중단하면서까지 요구한 민주당 정치쇄신이 꼭 친노그룹에 대한 공격으로 연결되진 않을까 염려하고 있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사실 문재인 후보가 전격적으로 단일화 협상방식에 대해 일종의 ‘백지수표’를 안 후보에게 위임한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강했다. 거대 야당의 힘을 가진 문 후보가 통 크게 양보하지 않는 이상 경색국면이 해결되기 어려웠고, 단일화 효과 반감으로 본선 승리가 위태로운 상황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 안팎에서는 문 후보의 기자회견 며칠 전부터 “전부 다 던지고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던 국면이었다.
이제 공은 안철수 후보에게로 넘어갔다. 문 후보가 ‘백지위임장’을 준 만큼 그에 화답하는 설득력 있는 카드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문 후보의 통 큰 양보가 양측의 담판으로 귀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안 후보가 담판을 끝까지 거부하고 경쟁방식을 추진할 경우 그에게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뒤따를 전망이다. 여론조사를 포함한 방식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내놓을 경우 문 후보의 통 큰 양보와 비교되는 ‘이기적인’ 행보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19일부터 야권 단일화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민주당 대선캠프에 있는 한 보좌관은 “이제 유권자들의 관심이 안 후보 측이 무엇을 내놓을 것인지에 쏠리면서 부담을 안게 됐다”라며 “안 후보가 협상중단으로 주도권을 잡았지만 문 후보의 대 결단으로 다시 명분싸움에서 밀리게 됐다. 타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안 후보가 어떤 카드를 쓸지 상당히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