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례 ‘세대별 투표율’ 적용 오데이터 논란…각 캠프는 ‘아전인수’ 격 해석
▲ 과학기술나눔마라톤축제 개회식에 안철수, 문재인, 박근혜 후보가 나란히 참석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요즘 각 대선후보 캠프에서 여론조사 데이터를 놓고 동상이몽에 빠졌다. 안철수 후보 캠프와 문재인 후보 캠프는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지율을 놓고 “새누리당 역선택의 결과다” “민주당의 조직동원이다”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연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새누리당 역시 좀처럼 오르지 않는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고민이다. 시중에 나온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는 야권 후보들과의 양자대결에서 근소하게 뒤지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 데이터를 역대 대선에서의 세대별 투표율로 보정하면 박근혜 후보가 야권 후보들을 이길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오자 한껏 고무된 분위기로 전환됐다.
지난 11월 12일 <한겨레>에서 보도한 ‘박근혜 대통령된다…16대·17대처럼 투표하면’ 제호의 기사가 정치권의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이 기사는 최근 여론조사 양자대결에서 뒤지고 있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을 역대 대선에서의 세대별 투표율로 환산하면 야권의 두 후보를 앞지른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를 위해 <한겨레>는 A 여론조사기관에서 11월 2~3일 실시한 여론조사 데이터를 지난 16대 대선과 17대 대선 당시 세대별 투표율로 환산한 자료를 제시했다. 그 결과 “2002년(16대) 대선 당시의 연령대별 투표율을 적용해 보면, 오히려 박근혜 후보(48.8%)가 안철수 후보(47.4%)를 1.4%P 차이로 앞섰다 (중략)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양자 대결을 같은 방식으로 분석할 경우 박 후보는 득표율이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주장은 사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투표 참여율이 높은 50대 이상에서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박근혜 후보는 실제 여론조사 데이터보다 대선에서 숨은 표가 많다는 게 중론이다. 여의도연구소를 비롯한 여권 내부에서도 지금까지의 여론조사 흐름이 나쁘지 않다는 반응이다. 여의도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최근 진행되고 있는 여론조사보다 대선 때의 득표율이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지만 실제로 역전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도가 나온 것은 처음”이라며 “당 안에서는 야권 단일화 이후 여야 후보가 확정된 상태에서 실시되는 여론조사 결과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해당 기사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을 세대별 투표율로 환산하기 위해 사용한 데이터가 잘못 표기된 것이다. 해당 기사에서 사용했다고 밝힌 세대별 투표율은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 데이터였다. 하지만 해당 데이터는 각각 지난 2007년 대선과 올해 4월 총선의 세대별 투표율 데이터였다. 총선 세대별 투표율을 대선 여론조사 지지율에 활용한 것이다.
<한겨레>의 담당 기자는 이에 대해 “여론조사기관에서 준 자료를 받아 쓴 것이고 데이터가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참고하시면 안 될 것 같다”라고 답했다. 해당 조사를 진행한 A 여론조사기관 대표는 자신들의 실수를 일부 인정하면서 “실제로 데이터가 다르다면 해당 자료(17대 대선 투표율)를 못 찾았든지 조사 실무진들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총선 때 투표율을 반영했다고 해서 분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2002년 대선보다 2012년 총선이 현재의 인구 구성과 비슷하기 때문에 주장을 강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반박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재선 의원은 투표율 환산 여론조사의 논란과 관련해 “단일화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이런 기사는 여론조사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라며 “총선과 대선은 투표율도 다를뿐더러 투표 성격도 다른데 대선 투표율로 보정했다면서 실제 총선 투표율 데이터를 쓴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여론조사 데이터에 세대별 투표율을 적용하면 박근혜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양자대결에서 야권의 두 후보를 앞지를 수 있을까. 이 같은 주장에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B 여론조사기관 관계자는 “A 여론조사기관에서 어떤 식으로 투표율을 적용하고 이를 보정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코멘트하는 것이 부적절해 보인다”라면서도 “2002년 대선의 경우라면 투표율도 높고 2030세대의 참여도 많아 이를 적용했다면 현재 상황에서 박근혜 후보가 야권 후보 지지율을 뒤집지는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길리서치의 홍형식 소장은 “박근혜 후보는 지금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5% 정도 높은 게 실제라고 봐야 한다.
다만 대선과 총선은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단순 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총선 때는 정당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2030세대의 참여가 적다면 대선은 정당보다는 인물을 보고 뽑는 경향이 강하고 젊은 유권자의 투표율도 올라간다”라고 답했다.
결국 이번 대선이 세대별 대결에서 승패가 갈린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야권에서 2030세대 투표율 제고를 위해 투표시간 연장 캠페인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이러한 분석이 신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또 최근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 공약과 관련해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최종 조율을 거부하면서까지 보수진영으로 회귀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보수표만으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
앞서의 홍 소장은 이에 대해 “박 후보의 ‘집토끼 지키기’ 작전은 단일화 과정에서 효과적인 작전이라고 본다. 다만 야권 단일화 이후 중도층 포섭을 위해 어떤 전략을 이어나갈지에 관한 문제가 남아있다”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한겨레> 기사가 야권 단일화 후보가 정해지기도 전에 무리하게 쓰여진 것이라는 의심도 있다. 종편채널의 한 기자는 “야권 두 후보 가운데 박 후보와의 경쟁력을 비교해보기 위해 무리하게 여론조사 지지율을 대선 득표율로 연결시켜 본 것 같다. 이는 그럴 의도야 없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문 후보보다 안철수 후보를 주목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박 후보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높아지면 야권 지지층이 ‘본선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되는 안 후보 쪽으로 쏠리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 역시 14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연령대별 투표율을 감안한 여론조사 결과는 선거기간 종반에 선거를 예측할 때 분석하는 방법인데, 과거에는 지금 시점에 그러한 요청이 전혀 없었는데, 요즘 관련한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왜 이리 많은 거지요?”라며 “투표율을 반영한 여론조사 분석은 선거 예측을 위한 분석 기법인데, 통상적으로 선거 예측을 위해 선거 직전이나, 언론사의 요청으로 간혹 하게 된다. 투표율 반영 조사결과는 대개 야권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라고 전했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여론조사는 유권자들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지난 15일 모노리서치는 “대선에서 ‘여론조사가 지지후보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 물음에 응답자 50.8%는 ‘영향을 미친다’라고 답했다”라고 전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