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 선거 “그래도 민주당” “이번엔 바꿔야지” 흐름 공존…민주 장세일·혁신 장현·진보 이석하 오차범위 접전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에서 만난 남성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야권 주요 정치인들이 10·16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잇달아 영광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영광에서 현장 최고위원회를 열며 민주당 후보에게 힘을 실어줬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영광에서 월세방을 얻고 후보 지원에 나섰다. 진보당도 김재연 대표를 비롯해 전국 당원들이 자원봉사에 나서며 총력을 기울였다. 9월 29~30일 영광을 돌며 바닥 민심을 들어봤다.
#민주당 “이변은 없다”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선거 캠프는 유동인구가 많은 버스터미널 옆 옥당로를 타고 늘어서 있다. 세 캠프 중간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60대 임 아무개 씨는 영광 토박이인 장세일 민주당 후보가 유리하다고 점쳤다. 장 후보가 군민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다고 덧붙였다. 임 씨는 “지역에서는 인맥을 가지고 정치하제. 정치인들이 아는 사람과 형님 동생하고 그래. 그전 (강종만) 군수도 파면됐는데, 무소속으로 다시 나와 민주당 후보 이기고 또 했어”라고 설명했다.
호남이 텃밭이라는 점은 민주당에 양날의 칼이라고 했다. 임 씨는 “계속 민주당만 하다 보니 염증도 있어. 그런데 대안이 없어. 민주당 아니면 누구를 뽑냐, 이 말이야”라며 “이번에 한 번 바꿔볼까 해서 진보당이나 조국혁신당 찍으려고 하는데 될 것 같으면 찍어주는데 될 것 같지가 않거든. 그러니까 에이 또 민주당 찍어야지 그렇게 되더라고. 그래도 지금은 조금 다른 분위기 같아. 옛날에 안철수처럼 돌풍 여지는 있어”라고 말했다. 20대 총선에서 안철수의 국민의당은 호남 28석 중 23석을 석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진보가 서로 치고받으며 분열하는 모습이 썩 달갑지 않다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임 씨는 “(20대) 대통령 선거 때도 표가 분산되어서 결과적으로 이재명이 못했잖아”라며 “지금도 이렇게 싸우는데, 서로 양보하라고 그러는데, 나중에 가면 단일화를 어떻게 해”라고 했다.
20대 조 아무개 씨도 지역 정치는 인맥에 의해 좌우된다고 했다. “영광이 다 좁은 사회여서 친인척끼리 알고, 한 다리 걸쳐서 다 안다. 그냥 가까워서 뽑아주는 게 있다. 또 아는 사람들끼리는 ‘저 사람이 되면 조경 사업한다, 아니면 저 사람이 건설사 했으니까, 도로랑 로터리 깔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돌아가는 게 있다. 그래서 군수가 잘려서 재선거하고 이런 거에 대해서 딱히 염증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죄책감이나 눈치 보는 건 전혀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조 씨는 민주당에 유리한 판세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민주당에 대한 비호감을 가진 군민도 많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호남 사람들이 이유 없이 파란색을 좋아하는 것도 있다. 아무래도 민주당이 유리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런 분위기가 있으니 (장세일 후보도) 민주당으로 나왔으니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어차피 민주당’ 분위기도 보기 싫고 하니까 요즘은 조국당으로 쏠리는 트렌드도 있다. 조국당도 마땅히 뽑을 사람 없는데, 그나마 선호한다는 느낌”이라고 짚었다.
현지에서 만난 민주당 관계자들은 승리를 자신했다. 이들은 호남이 민주당 아성인 만큼 전통적인 지지세가 강하다고 봤다. 조직력도 다른 두 당보다 월등하다고 평가했다. 민주당 한 보좌관은 “처음에 후보들이 정리되지 않았을 때 박빙 판세가 나왔다고 본다. 지금은 앞서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영광군의회 8석 중 7석이 민주당 소속 의원이다. 도의원은 2석 중 1석이 민주당이다. 다른 1석은 진보당 소속이다. 국회의원은 4선 이개호 민주당 의원이다. 민주당 입김이 강할 수밖에 없는 여건인 셈이다. 장 후보 캠프 관계자는 “다른 지역위원회 80여 곳에서 지원 나올 것”이라며 “이재명 대표가 직접 지원사격을 했고, 예결위원장인 허영 의원, 장세일 후보, 이곳 도의원과 군의원 등이 영광 미래발전을 위한 협약식을 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허영 의원실은 10월 6일 협약식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장 후보의 전과 이력은 약점이라고 인정했다. 장 후보는 1989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2014년에는 사기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 9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장 후보는 10월 2일 KBS 토론회에서 폭력행위와 관련 “철없던 시절의 과오다. 깊이 반성한다”고 했고, 벌금 전과에 대해서는 “공직 임용 전의 일이다. 지식 부족으로 빚어졌다. 깊이 반성한다”면서도 “영광군청이 당시 재판부에 선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벌금형이 내려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아성 깨질까
민주당에 염증을 느끼거나 장현 조국혁신당 후보 개인을 높게 평가하는 기류도 감지됐다. 법성면에 있는 ‘법성포 굴비 거리’에서 만난 한 식당 사장은 “거시기 뭐냐. 나는 이번에 조국혁신당 뽑기로 했어. 민주당은 너무 많이 했어. 이번에 바꿔야제”라고 말했다.
농약사를 운영하는 김 아무개 씨(84)는 장현 후보의 경쟁력을 언급했다. 김 씨는 “인물로 이렇게 딱 본다면 장현이가 낫다고 봐. 인지도도 높고, 호남대에서 교수도 했어. 똑똑한 거로 봐서는 장 후보가 낫지”라며 “장현이는 맨 처음에 서울에서 출발한 사람이거든. 그런데 이제 이사를 했다고 하더만. 자기 형은 영광 살고 있어. 우리가 알아”라고 말했다.
장현 후보가 공천 과정에서 불공정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당적을 민주당에서 조국혁신당으로 옮긴 것에 대해서는 “그것도 영향은 많아. 사람들이 철새니, 뭐니 이렇다 저렇다 해. 그거에 대해 글쎄다(별 문제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고. 우리는 그렇게 안 보니까”라며 “원래 정치인이 그러면서 커가는 거제. 그리고 네 번인가 출마하면서 인지도도 쌓았고”라고 말했다. 장현 후보는 2002년 지방선거 때 무소속으로 영광군수 선거에 출마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함평·영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했다. 2008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영광군수 선거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김 씨는 “조국혁신당 바람이 얼마나 부나 그게 문제지. 촌사람들은 한번 딱 정하면은 (안 바꾸는 그 정서를) 또 무시 못 해”라며 “노인들이 모르면 1번 찍게 돼. 그것이 상당히 차지하고 들어가. 1번이라는 것은 제일 유리한 거야. 무시 못 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그러니까 장세일이가 유리할 것 같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 내가 볼 때는 막상막하야. 표 차이 얼마 안 날 것 같아”라고 전망했다.
김 씨는 이재명 대표의 방문이 조국 대표의 월세살이보다 파급력이 더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 씨는 “이재명이가 내려오고 장세일 지지도가 올라갔다고 해. (조국 대표보다) 체급이 크잖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죄가 없는데도 정부에서, 검찰에서 묶어서 (기소) 한다. 이렇게 평이 나와 군민들 (사이에서)”라고 전했다.
농약사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두 남성은 ‘도덕성을 1순위로 본다’고 입을 모았다. 강종만 전 군수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으며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강 전 군수는 친척 관계인 지역 기자에게 현금 100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았다. 강 전 군수는 초선 군수 때인 2008년에도 지역 건설업자로부터 뇌물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에 추징금 7000만 원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두 사람은 전과가 없는 장현 후보에게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조국혁신당도 장현 후보가 전과가 없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했다. 장현 후보 캠프 관계자는 “군민들이 ‘징글징글하다. 일단 비리를 저지르지 않을 군수였으면 좋겠다. 진짜 ‘깨끗한 놈’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며 “우리 후보는 전과 기록이 없다는 게 상당히 큰 장점이다. 민주당 후보는 전과가 두 번 있고, 진보당 후보는 음주 운전 전과가 있다. 군민들이 바라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당적 논란에 대해서는 “여러 도전 과정에서 군민들과 신뢰를 쌓았다. 지금 여론조사에서 박빙으로 나온다. 철새라고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은 거다. 앞으로 동의하지 않는 분들의 공감대를 넓히는 게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과 진보당에 비해 조직력이 약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조직싸움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건강한 경쟁을 하기 위해 선거에 나온 것은 우리 나름의 용기”라며 “국민들께 평가를 받아서 원내 제3당이 됐다. 편하게 민주당 그림자 뒤에 있어야만 하는가. 민주당과 차별성과 공통점을 평가받고 책임지는 게 맞다. 편해지려고 가만히 있는 건 정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진보당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민주당 아성에 도전하는 모습이다. 진보당에 따르면 영광에만 당원 800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 시·도당에서 당원들이 지원에 나섰다. 이들은 새벽녘부터 영광읍과 인근 면들을 돌며 인사하고, 후보 이름을 알리고, 농사 일손을 돕고,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한 진보당 관계자는 “지역 선거는 조직싸움이다. 지금은 조국혁신당과 진보당이 표를 나눠 먹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 (조직력이 더 강한) 진보당이 조국혁신당 표를 흡수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석하 진보당 후보는 학생운동을 하다 1993년 전남대학교에서 제적됐다. 1995년 군에서 제대한 뒤 영광군에 내려가 대마면 복평2리 이장을 지냈다. 이후 약 30년 동안 지역에서 농민 운동을 했다. 진보당은 이 후보가 농민회 등 영광 농민들의 표심을 얻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2001년과 2005년 있었던 음주 운전 전과는 약점으로 꼽힌다. 이 후보는 10월 1일 KBS광주 토론회에서 “20~30대 시절 일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군민들에게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백수읍에서 만난 하 아무개 씨(70)는 “자원봉사자들이 다른 지역에서 온다니까. 나는 기절할 뻔했어. 식당에서 밥 먹고 7시에 나오는데, 거리에 있는 거야. 저녁에도 어저께도 (진보당) 여자가 와서 청소하고 막 그래. 진보당이 열심히 하기는 해”라며 “그리고 농민회 쪽을 꽉 잡고 있다고 들었어”라고 전했다.
여론조사에서는 ‘3강 구도’를 형성한 세 후보가 초박빙 접전을 벌이고 있다.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를 받아 9월 29~30일 조사를 실시해 10월 1일 발표한 지지율 여론조사(무선ARS)에 따르면 장세일 민주당 후보 32.5%, 장현 조국혁신당 후보 30.9%, 이석하 진보당 후보 30.1%로 집계됐다. 오차범위 안에서 세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여론조사기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변수 떠오른 ‘진주 강씨’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았다는 군민들은 정당들이 지역민에게 진짜 필요한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불평했다. 특히 세 당이 고루 내세운 현금성 공약을 현실성이 없는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장현 후보는 행복지원금 연 120만 원 지급을 약속했고, 장세일 후보는 연 100만 원 기본소득을 공약했다. 이석하 후보는 군민 거주수당 연 100만 원 지급을 내세웠다. 세 후보 모두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기준 영광군 재정자립도는 11.7%로 229개 기초자치단체 중 163위다.
앞서 백수읍에서 만난 하 씨는 “조국이 (월세살이) 하니까, 이재명이가 와서 얼굴 비치고 가고, 중앙에서 오고 그래. 군수 선거인지 국회의원 선거인지 분간이 안 가. 인물 싸움이 아니라 당 싸움이 돼버렸어”라며 “연지급을 얼마 해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고 그러는데, 그런 식의 공약이 번져버리면 영광군은 (예산이 부족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야”라고 지적했다.
지역 정가에선 진주 강씨 성을 가진 유권자 표심이 최대 변수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본다. 강학손이 무오사화 때 영광군 팔용촌에 유배된 이후 진주 강씨가 이 일대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영광군 전역에 거주하고 있다.
일요신문이 만난 군민들 역시 강씨 일가의 영향력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한 군민은 “강종만 전 군수가 비리로 자리를 잃었다가 다시 당선된 이유도 강씨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장세일 후보를 봤을 때 ‘얼른 강종만을 찾아가서 지지를 얻어내라’라고 했다”며 말했다.
영광=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