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선 자화자찬 밖에선 공감부족
▲ 박근혜 후보가 11월 7일 서울여대에서 열린 걸투콘서트에 참석, 개그콘서트 인기 코너에 나오는 브라우니 인형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최근 <조선일보>는 새누리당 선대위 인사의 말을 빌려 “박근혜 후보가 ‘여성대통령’을 내세운 뒤, 최근 당 자체 여론조사에서 여성 응답자의 지지율이 4∼7%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새누리당 조해진 대변인은 해당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첫 호남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이 ‘첫 CEO 대통령’인 것처럼 박 후보에게 표를 주면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그러면 부동층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새누리당 내에서는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 혁신론’이라는 일종의 ‘우먼 마케팅’ 효과에 대해 무척 긍정적으로 자평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깊은 의문점을 제기했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여성대통령’을 내세우면서부터 여성 지지율이 올랐다는 새누리당 측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장작불’과 여론조사를 비교해보자. ‘장작’을 때기 위해서는 ‘불’이라는 하나의 변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변수는 ‘불’처럼 하나의 성질이 아니다. 변수는 무한대다. 여러 가지 변수 중 하나가 ‘여성대통령’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여성지지율이 올랐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아마도 박 후보 주변 사람 중 일부가 박 후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만든 말 같다”며 평가절하했다.
정치컨설턴트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 역시 “슬로건 하나가 지지율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너무 앞서 나간 이야기다. 다만 40대 이상 주부 유권자들 사이에서 약간의 기대심리를 갖게 할 수는 있다. 남성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불신 탓에 박 후보의 여성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볼 수는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그 영향은 미미할 것이다”고 진단했다.
‘여성대통령’을 내세우면 부동층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는 조 대변인의 주장에 대해서도 앞서의 홍 소장은 “어차피 이번 선거판은 ‘부동층’이라는 게 거의 없다. 자기 고정층을 단단히 묶는 데 적절한 전략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만으로 부동층을 끌어들이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역효과’다. 이미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후보의 ‘우먼 마케팅’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만큼 이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얘기다.
연세대 황상민 교수의 ‘박근혜 후보 생식기 발언 논란’은 그와 관련한 가장 큰 방증이다. 이로 인해 박 후보의 ‘여성성’은 단순한 논란거리를 넘어 이미 시빗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박 후보의 ‘여성대통령 첨병’ 역할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김성주 공동선대위원장은 황 교수를 ‘정신병자’로 운운하며 학교까지 찾아가 징계외압까지 넣었다. 박 후보의 여성성 논란에서 비롯된 이 사건은 유권자로 하여금 되레 볼썽사나운 장면만 연출했다. 황 교수는 지난 11월 15일, 본지(1071호)와의 인터뷰에서 “치마만 두르면 여자냐”며 박 후보 여성성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여전히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박 후보 ‘우먼 마케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지난 과거에도 국내외 수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주류인 남성정치인들과 경쟁하기 위해 갖가지 ‘우먼 마케팅’을 즐겨 사용했다. 그중 가장 성공적인 선례를 남긴 이가 바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영국 전 총리(재임 1979~1990)다. 박 후보와 대처를 비교하면 답은 쉽게 나온다.
평범한 식료품집에서 성장한 대처는 26세에 정치 입문한 후, 이듬해 한 사업가와 결혼해 평범한 가정을 꾸렸다. 자녀도 둘이나 낳으면서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대처의 ‘우먼 마케팅’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대처는 보수당 당수와 총리직에 오르는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설거지, 청소 등 집안일 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자주 노출시켰다. 총리 재임 당시 아들이 납치됐다 풀려났을 때는 여느 어머니처럼 대중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 여성 유권자들은 이러한 대처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시했다.
1979년 총선 당시 그의 캠페인은 대처표 ‘우먼 마케팅’의 백미다. 그는 당시 유세현장에 물건이 차고 넘치는 파란색(보수당 상징색) 장바구니와 가벼운 분홍색(노동당 상징색) 장바구니를 양 손에 쥐고 나왔다. 그러면서 그는 “물건이 가득 찬 파란색 장바구니는 우리가 집권했던 시기, 1파운드로 살 수 있는 식료품입니다. 가벼운 분홍색 장바구니는 노동당이 집권 중인 현재, 1파운드로 살 수 있는 식료품입니다. 지금은 고작 이것밖에 살 수 없습니다”고 말했다. 장보기를 통한 ‘우먼 마케팅’을 재치 있게 구사하며 상대 정당의 실패한 물가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앞서의 김대진 대표는 대처와 현재의 박 후보의 차이점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대처는 남편과 자녀를 가진 여성이었다. 이 때문에 국민과의 동등한 위치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대처의 ‘우먼 마케팅’은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 후보는 그게 어렵다. 자신이 갖고 있는 여성성보다 오히려 박정희의 딸이라는 정치적 배경과 후광이 더 크다. 박 후보에게 있어서 ‘여성’이라는 것은 결국 단순한 하나의 종속변수일 수밖에 없다”
여성으로서 나름 평범한 삶을 영위해온 대처가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데 반해, 박 후보의 경우는 미혼이라는 점과 아버지의 후광 탓에 ‘우먼 마케팅’을 구사하는 데 한계가 많다는 해석이다.
김 대표는 또한 “어차피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의 본격적인 양자대결 구도로 간다면 ‘여성대통령’을 메인 슬로건으로 내세우기는 힘들 것이다. 특히 한국은 안보 상황이 무척 중요하다. 여성대통령만 계속 내세운다면 문 후보에게 되레 당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 경례하다> |
대선 전 ‘2탄’ 그린다
그림 한 점이 화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아기를 낳는 장면을 그린 홍성담 화백의 <골든타임-닥터 최인혁, 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가 그것. 아기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한 의사는 아기에게 거수경례까지 하고 있다. 새누리당 여성의원들은 공직선거법 93조 1항(선거일 180일 전부터 선거일까지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 추천,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벽보, 사진, 도화 등을 배포·게시할 수 없다)을 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중앙선관위는 선거법 위반 소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홍 화백은 자신의 그림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이건 아주 단순한 문제다. 작가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그림을 그렸다 하더라도 일단 갤러리에 그림이 공개되면 이는 미술적 입장에서 봐야 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또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밝힌 “만평은 사이즈가 작고 순간적인 데 비해 이 그림은 거대한 사이즈에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 “바보다, 바보. 그런 바보들에 둘러싸여 있는 박근혜는 절대 대통령 되면 안 되겠다”고 비난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그림은 서울 종로 평화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평화박물관과 아트 스페이스 풀은 유신 40주년을 맞아 6부작 전시 ‘유체이탈 維體離脫’을 공동 기획했다. 지난 10일부터 오는 25일까지 3부 <유신의 초상>이 전시된다. 홍 화백 말고도 권종환, 김성룡, 박영균, 선무, 양은주, 이윤엽, 황세준 등 총 8명의 민중화가들이 참여했다. 이 중 이윤엽 화백의 그림 <유신의 망령>은 박근혜의 머리 없는 몸통이 박정희의 머리를 들고 있어 어쩌면 홍 화백의 그림보다 더 잔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홍 화백의 그림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전적으로 박근혜의 ‘출산’이라는 요소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홍 화백은 이에 대해 “예술가는 신문에 난 작은 가십 같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작은 것에도 영감을 얻는다”며 “김현철이 서른 살 먹은 박근혜 자식이 일본에 살고 있다고 하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그때 영감이 떠올라 출산 형식을 빌려 풍자해보자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는 지난 7월호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박근혜 출산설을 제기했다. 당시 박 후보 캠프는 법적 대응을 추진하기로 하는 등 즉각 반응했고, 이에 <월간중앙>은 김 씨의 주장이 사실무근이자 유언비어라고 정정보도문을 게재했다.
홍 화백은 “사람이 먹고 싸는 게 다 정치”라며 “정치적이 아니려면 자기 혼자 그려서 자기만 봐야지, 왜 전시를 하느냐”며 “꼭 정치인들이 지들만 정치하겠다고 저 ××들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 화백은 “우리나라의 풍자그림이 더 발전해야 한다”며 “합법적인 사기꾼인 정치인을 풍부한 서정 갖고 있는 우리 예술가가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미 새로운 작품을 스케치 구상 중인데 대선 전에는 끝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제목은 ‘박근혜의 동물농장’.
“박근혜 밑에서 뼈다귀 하나 더 얻어먹겠다고 지들끼리 쥐어뜯고 싸우는 모습이 꼭 동물 같잖아.” 홍 화백은 물러서지 않았다.
고혁주 인턴기자 poet041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