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꿈꾸는 ‘검술 천재’ 노비 천영 연기…“박정민 ‘멜로 눈빛’에 흔들려, 꾸밈없이 좋은 사람”
“(박)정민 씨가 눈물을 글썽거릴 때마다 ‘얘가 어디까지 가려고 하나, 진짜로…’ 이런 생각 정말 많이 했어요(웃음). 저희끼리도 정민 씨 눈빛 연기 보면서 ‘야, 이건 멜로 눈알이야!’ 이랬거든요(웃음). 어디서 보니까 정민 씨가 제 연기에 맞춘 거라고 하셨던데 그건 아니에요. 자기가 먼저 하니까 나도 한 거지(웃음). 아마 정민 씨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그 둘의 관계를 깊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도 정민 씨의 울먹이는 연기를 보면서 ‘정말 슬픈가 보다, 나도 더 슬퍼해야지’ 하고 맞췄죠(웃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전, 란’에서 강동원은 면천을 꿈꾸는 노비 천영을 연기했다. 노비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천영은 어릴 적 팔려간 대감댁에서 자신이 모셔야 할 도련님 이종려(박정민 분)를 만나 신분을 넘어선 우정을 나눈다.
천것은 천하게 대해야 한다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유일하게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주는 종려를 형제처럼 여기는 천영은 천부적인 검술 재능을 살려 그를 대신해 무과 시험 장원 급제를 얻어낸다. 대대로 무관 집안의 ‘미흡한 자식’으로 취급받던 종려에게 급제를 안겨주고, 그 대가로 면천 받아 그토록 꿈꾸던 자유를 얻겠다며 천영은 희망에 가득 찬 얼굴을 보여준다.
“천영에게 있어 종려는 어릴 때 힘든 노비 생활을 버티게 해준 유일한 진짜 친구이자 형제 같은 존재예요. 좀 모자란 동생 같기도 하고요(웃음). 그러니 답답해서 시험도 대신 봐 준 거죠. 하지만 저는 종려가 실력이 부족해서 낙방한 것이라곤 생각 안 했어요. 실력은 천영이보다 조금 모자라더라도 정말 출중한데 모질지 못해 남을 때릴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천영이 종려에게 ‘네 칼엔 분노가 없다’고 말하는 거고요. 애가 너무 오냐오냐 커서 그래요(웃음).”
그러나 두 친구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대리 시험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쥔 천영은 가문의 치부일 수밖에 없었고, 종려의 아버지는 면천 대신 천영을 죽여 화근을 없애고자 한다. 어떻게 해서든 친구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던 종려는 아버지 몰래 천영을 도주시킨다. 바로 이 장면이 뭇 여성 팬들의 마음을 저리게 만들었던 ‘눈물의 이별’ 신이다. 강동원은 이 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촬영 하던 때가 생각난다며 웃어보였다.
“종려가 천영이를 보낼 때 정민 씨가 울면서 대사를 하는데 사실 대본에는 ‘종려가 글썽인다’까지 있었거든요. 그런데 애가 너무 울먹거리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그 장면을 찍을 땐 종려의 감정을 좀 낮춰야 했죠. 사실 그 장면 전후 사정을 보면 굉장히 비극적이지만 천영은 지금 기분이 나쁜 상태거든요. 약조한 면천을 안 해줘서 엄청나게 화가 났고, 날 죽이려 한 건 그의 아버지지만 종려도 미운 거예요. 어사화까지 갖다 바쳤는데 죽이려고 하니 얼마나 화가 났겠어요? 그런데 이 와중에 애가 우니까 ‘어? 음…’ 이렇게 된 거죠(웃음).”
이 시점을 시작으로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하던 둘의 우정은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산산이 조각나 버린다. 그간 폭군 같았던 대감 식구들에게 시달려 온 노비들이 전쟁을 틈타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뒤늦게 목격한 천영이 대감댁 식구들의 살해와 방화죄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 것. 선조(차승원 분)의 호위를 맡기 위해 집을 떠나 있던 종려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천영에게 깊은 분노와 절망적인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오해로 어그러진 우정이 각자의 칼끝으로 이어지며 전쟁 7년 만에야 맞닿게 된 이 둘의 처절한 결전은 끝내 종려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종려가 천영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데 사실 원래 대본에는 없었어요. 아마 ‘천영아, 살아야 한다’였었다가 바뀌었던 걸로 기억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살아야 한다’란 말이 더 좋더라고요. 천영이 입장에선 그게 더 슬펐으니까요. 감독님은 ‘미안하다’가 너무 좋다고 하셨는데 그건 개인의 취향이니까(웃음). 다만 제가 추구했던 게 있었어요. 천영이는 그때까지 종려의 이름을 한 번도 안 불렀었거든요. 계속 ‘도련님’이라고만 불렀는데 종려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르고 싶다고 말씀 드렸었죠. 그래서 그 대사가 들어간 거예요(웃음).”
작품에서 깊은 우정을 나눴기 때문일까. 서로 맞닿는 신은 짧았어도 강동원과 박정민 두 배우 모두 함께한 시간 이상의 ‘애정’을 느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누가 먼저 다가갔나”에 대해서는 두 배우의 의견이 갈리긴 하지만 확실한 건 아마 이후의 작품에서도 이 둘의 호흡을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강동원은 앞서 박정민이 추천한 넷플릭스 시리즈 ‘조용한 희망’에 대해 “만일 정민 씨가 출연하겠다고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제가 판권 당장 사오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도장 찍어야 돼요. 사왔는데 출연 안 하겠다 그러면 어떡해(웃음). 제가 정민 씨를 참 좋아해요. 늘 자연스럽고 꾸밈이 없는 좋은 사람 같거든요. 사실 아직 서로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어서 어떤 사람인진 잘 모르겠는데(웃음), 이런 것만 봐도 좋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져요. 근데 정민 씨가 자기가 먼저 저한테 다가갔다고 그래요? 하나도 안 느껴지던데, 오히려 제가 먼저 말 걸고 맛있는 것도 사다줬는데요(웃음).”
두 배우의 재회가 아직은 조금 먼 이야기라면, 강동원의 차기작은 바로 코앞에 놓인 이야기다. 그의 21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자 전지현과의 호흡으로 주목받은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북극성’이 2025년 공개를 앞두고 있다. ‘첩보, 로맨스’ 장르라는 점에서 벌써 부터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는 이 작품이 끝나고 나면 강동원은 이전보다 조금 더 밝고 가벼운 이야기로 대중들 앞에 다시 서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북극성’ 열심히 촬영 중이고요, 전지현 배우님 잘 모시고 열심히 찍고 있습니다. 극 중에서 모셔야 하는 캐릭터거든요(웃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요즘 자꾸 모시는 역할을 많이 맡게 되는 것 같아요(웃음). 또 최근 들어서 드는 생각인데 코미디를 안 한 지 오래됐다 보니 코미디도 하고 싶고, 더 나이 들기 전에 액션도 좀 더 찍고 싶어요. 저는 멜로나 로맨스보단 코미디랑 액션을 할 때 제일 재미있는 것 같거든요. 아무래도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흥미를 잘 못 느껴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멜로여도 ‘판타지 멜로’라면 연기하기 재미있을 것 같네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