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갑’ MD(홈쇼핑 구매담당자)가 업체 쥐락펴락
▲ 검찰은 홈쇼핑 업체와 납품업체 간 비리행위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할 방침이다. |
이번 검찰수사로 밝혀진 홈쇼핑 비리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홈쇼핑 구매담당자(MD)인 아들과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위해사범중앙조사단 팀장으로 근무하던 아버지가 함께 납품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금액도 어마어마했다. 아들 전 아무개 씨는 전직 NS홈쇼핑 MD로 활동하며 지난 2008년부터 최근까지 7개의 납품업체로부터 무려 4억 2700만 원에 달하는 뒷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모두 물품 입점이나 황금시간대 배정을 위한 대가였다.
수상한 거래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검찰은 지난 8월 전 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가 홈쇼핑 업체와 건강기능식품 제조업체를 단속하는 식약청 직원임을 밝혀냈다. 이에 검찰은 아버지 전 씨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인 결과 계좌에서 출처가 의심스러운 자금 흐름이 있다는 사실을 적발했고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여기에 전 편성팀장인 박 아무개 씨와 NS홈쇼핑에서 중소기업 전문 홈쇼핑 업체인 홈앤쇼핑으로 이직한 일부 MD도 납품업체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이들은 검찰수사에서 일부 비리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비리사건이 연달아 터지자 업계는 행여 불똥이 튈까 몸 사리기에 바쁜 모습이다. 우선 비리 양산지로 불리는 MD 단속에 나섰다. 현재 국내에는 CJ오쇼핑, GS홈쇼핑, NS홈쇼핑, 롯데홈쇼핑, 현대홈쇼핑, 홈앤쇼핑 등 총 6개 업체가 등록돼 있는데 대체로 TV방송과 온라인을 구별해 운영하고 있다. MD도 방송과 온라인으로 나뉘어 있는데 매출 규모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권한은 방송 쪽이 훨씬 강하다.
A 홈쇼핑 관계자는 “방송MD와 온라인MD는 접대받는 것부터 차이가 난다. 방송MD가 납품업체 사장으로부터 접대를 받는다면 온라인MD는 과장에게 받는다. 보통 방송에서 대박이라 함은 억대를 말하는데 온라인은 기껏해야 수천만 원 수준이기 때문”이라며 “특히 방송은 MD가 입점 물품 선정부터 방송 시간대 편성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납품업체에서는 ‘절대 갑’으로 통한다. 납품업체는 어떻게 해서든 잘 보이고 싶어 금품을 제공하는데 홈쇼핑MD 중 상품권 한 장 안 받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MD에게로 권력이 편중된 것은 홈쇼핑만의 특성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방송은 제작 전반을 담당하는 PD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홈쇼핑은 물건을 판매하는 방송이라 MD가 절대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방송이 어떻게 제작되든 납품업체로서는 입점 자체가 중요한 사안이라 MD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고액의 매출이 확보되는 극소수의 상품이야 MD에게 휘둘릴 필요 없이 제품 판매 계획서를 홈쇼핑 업체에 제출하고 MD와 수수료 및 판매 방식을 협상해 방송에 내보내면 된다. 그러나 홈쇼핑 상품의 상당수가 중소기업이나 신생회사의 것이라 MD의 눈에 들지 않으면 방송 기회조차 얻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즉 방송을 원하는 업체는 많고 채널은 한정돼 있으니 당연히 비리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욱이 MD가 물품 입점 선택권만 가진 것이 아니라 방송시간 편성 및 제작 전반에도 영향력을 끼쳐 납품업체로서는 살기 위해 뇌물을 바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보통 출근시간 이후인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와 저녁 드라마 방영시간 전후가 황금시간대로 불리는데 이 시간대에 방송이 편성되느냐 마느냐는 그날 매출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과거 홈쇼핑에 납품했던 식품업체 관계자는 “식품엔 중박이 없다고들 말한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다. 이를 결정짓는 것은 제품의 맛도 질도 아닌 방송 시간대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팔면 누가 보고 사겠느냐”며 “다른 상품군도 마찬가지인데 이 때문에 모두가 황금시간대를 잡길 원한다. 하지만 이 시간에 방송을 내보내려면 치열한 로비전에서 이겨야 한다. MD가 대놓고 ‘따지’를 구입하라 독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따지란 특정 방송 시간을 구입하는 것을 말한다.
우여곡절 끝에 홈쇼핑 입점권을 따내고 좋은 시간대에 편성된다고 MD에게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방송 횟수가 거듭될수록 원하는 요구사항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상품의 판매가격 결정부터 세일방송까지 강요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다림’으로 유명한 중탕기 생산업체 씨앤전자 전준호 대표는 “수년간 롯데홈쇼핑과 거래해왔는데 자신들이 필요할 땐 납품업체를 이용하곤 쓸모가 없어졌다 판단되면 헌신짝처럼 버린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무리하게 세일 판매를 요구하고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그는 “우리도 세일 판매 요구를 받아 일정 판매량을 확보해주는 조건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롯데홈쇼핑은 판매량이 떨어지자 갑자기 방송을 중단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며 “참다못해 문제를 제기하자 내가 자살을 시도하며 협박을 해 어쩔 수 없이 방송 편성을 해줬다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해결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이에 대해 롯데홈쇼핑은 전 대표가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며 법적 대응도 불사할 뜻을 내비쳤다.
B 홈쇼핑 관계자도 “MD의 횡포는 홈쇼핑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한 가지 예로 MD가 옷값을 정하면 납품업체는 그 가격을 맞추느라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생산해 판매한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며 “최근엔 방송제작도 외주로 주고 홈쇼핑에서는 오로지 물품 선정 및 판매에만 치중하고 있어 MD의 권력도 끝없이 강해지고 있다. 그만큼 각종 비리도 만연하다. 나도 홈쇼핑에 종사하고 있지만 지인들에겐 채널을 지우라고 할 정도로 믿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날이 갈수록 MD의 횡포가 심해지자 홈쇼핑 내부에서도 권한을 분리하는 방향으로 해결책 찾기에 나섰다. 애초부터 물품 입점과 편성을 나누어 제작을 진행하는 업체도 있었으나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편성팀이 생기고 있는 것. 하지만 납품업체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로비를 해야 할 대상만 늘어났을 뿐 현실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앞서의 식품업체 관계자는 “단발적인 해결책이 아닌 비리의 근원을 뿌리 뽑을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상품을 팔 수 있고 홈쇼핑의 수명도 길어질 것”이라며 “일단 납품업체들은 검찰이 전 방위로 수사를 하고 있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어쨌든 좋은 방향으로 해결돼 중소기업도 살고 홈쇼핑도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