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형 기술 다 뺏고 싶어”
▲ 하위권을 맴돌던 SK를 올 시즌 선두권에 올려놓은 주인공 김선형은 최근 외출을 할 때마다 알아봐주는 사람이 많아 인기를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사진제공=KBL |
김선형은 울산 모비스와 1위 자리를 놓고 ‘단독선두’와 ‘공동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6강 싸움을 벌이며 다른 팀들의 성적에 일희일비했지만 선두를 달리고 있는 지금은 오로지 소속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어 ‘가진 자의 여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요즘 프로농구 선수들 중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별명이 ‘대세형’이라고 불릴 정도인데, 실감을 하나.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외출이나 외박 나가면 사람들이 거의 못 알아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많이 알아보시더라고요. 기분은 좋은데 행동하는 부분이 조심스러워서 불편하긴 해요. 춤을 좋아해서 가끔 친구들과 클럽에 가는데 거기 오신 여성분들 중에 제가 노는 걸 유심히 지켜보는 분들이 있어요. 스트레스 풀러 갔다가 눈치 보여서 그냥 나오곤 해요.
―팬들이 보내는 선물들이 굉장히 많다고 들었다.
▲택배로 많이들 보내주시고, 주로 경기 끝난 뒤 버스에 오를 때 직접 전해주시는 선물들이 많아요. 과자나 빵 종류는 선배들이 몽땅 가져가요. ‘수고했다’면서. 제가 우리 팀 ‘앵벌이’라니까요(웃음).
―SK에는 F4가 있다고 하던데, 누굴 말하는 건가.
▲하하, 구단에서 정해주신 자칭 최고의 꽃미남들인데요, 절 포함해서 변기훈, 권용웅, 정준원이 F4입니다. 4명이 맡고 있는 역할이 틀려요. 저랑 기훈이는 파이팅과 개그적인 부분을, 용웅이랑 준원이는 얼굴, 즉 외모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용웅, 준원은 게임을 뛰지 않아도 인기가 장난 아니에요. 만약 제대로 뛰면 엄청난 소녀팬들을 농구장으로 불러들일 겁니다.
▲ 사진제공=KBL |
▲포인트가드를 맡기 전에도 양동근, 전태풍, 김태술 형들은 제 롤 모델이었어요. 나도 과연 그 형들처럼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막상 해보니까 조금씩 자신감도 생기고, 승부욕이 솟구치는 걸 느껴요. 무엇보다 전 일대일 매치가 좋아요. 상대팀 선수와 라이벌 매치를 벌이며 점수를 주고받는 싸움이 즐거워요. 그런 점에서 포인트가드는 저한테 딱 맞는 포지션인 것 같아요. 농구를 즐기면서 한다는 말이 지금의 제 모습입니다.
―전태풍도 김선형의 팬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저야 무조건 감사하죠. 대학 4학년 때 대표팀에 뽑혀서 태풍이 형한테 직접 지도를 받기도 했었어요. 형처럼 플레이하는 선수가 우리나라에는 없잖아요. 상대 선수로 만날 때는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플레이를 하는데 저도 팬인 입장에서는 정말 멋진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형의 기술들을 뺏어올 수만 있다면 다 뺏어오고 싶어요(웃음).
―187cm의 키에 덩크슛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덩크슛을 쏘는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엔 제가 덩크슛 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반반이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것과 팬들이 원하는 부분이 섞여 있는 것 같아요. 경기 뛰면서 느낀 건데, 제가 3점슛을 쏘거나 덩크를 할 때 주위가 굉장히 조용해져요. 그러다 공이 림을 통과하는 순간 환호가 쏟아지죠. 그럴 때 정말 짜릿한 기분이 느껴져요. 프로에 와서 가장 재미있는 건 팬들의 반응입니다. 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아줄수록 더 신바람이 나서 농구를 하게 되죠. 사실 대학 1학년 때만 해도 전 공을 두려워했어요. 중요한 순간에 공을 잡으면 다른 선수에게 패스하거나 도망 다니기 일쑤였거든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제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프로에 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되려면 공을 피해선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 벽을 넘어 서니까 두려움이 없어지더라고요.
―런던올림픽 대표팀에 뽑히기도 했었다. 외국 선수들을 상대하면서 배운 게 많았다고 들었다.
▲러시아팀이랑 붙을 때는 신장 차이가 워낙 많이 나서 지레 겁을 먹었어요. 그런데 러시아 선수들은 의외로 스피드가 빠르지 않더라고요. 스피드를 이용한 게임은 할 만했습니다. 물론 완패하면서 본선에 올라가진 못했지만 우리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대회였고, 제가 국제 무대에서 통하려면 어떤 부분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어요. 제가 욕심이 많은 편인데, 올림픽 예선전 치르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어요. 분해서요.
▲ ‘2011-2012 KBL 올스타’에 출전한 김선형이 백댄서와 함께 섹시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KBL |
▲절대 안 할 거예요(웃음). 지난 시즌 때는 프로 1년 차이고, 앞뒤 분간을 잘 못하다보니 요청 들어오는 것마다 다 응한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비난이 만만치 않았어요. 한 번이었으면 정말 멋지게 각인됐을 텐데 자꾸 나오니까 식상해졌던 거죠. KBL 시상식 때 제가 페어플레이상을 받았거든요. 아마도 그동안 행사 때마다 무보수로 ‘쇼’를 펼쳐 보여 미안해서 주신 상이 아니었나 싶었어요. 그 상을 받을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거든요. 올해는 예능과는 거리를 두다가 다음 시즌 때 좋은 ‘작품’ 만들어서 개인기를 펼쳐 보일 예정입니다.
―아버지가 목사이신데, 혹시 그런 부분 때문에 생활하는데 제약을 받는 부분이 있나.
▲노는 걸 좋아하지만,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행동을 조심하는 편이에요.
―프로-아마 최강전 1차전에서 연세대와 맞붙었지만 실제로 뛰진 못하고 벤치를 지켰다. 연세대 허웅이 ‘선형이 형이랑 꼭 붙고 싶었다’라고 인터뷰를 했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나.
▲저도 그 기사들을 봤어요. 웅이가 저의 승부욕을 자극하더라고요(웃음). 웅이가 뛰는 걸 지켜보니까 ‘농구대통령’ 허재 감독님의 아들이라 그런지 탁월한 개인기가 눈에 띄었어요. 웅이가 계속 골 넣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당장 코트로 뛰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웅이도 곧 프로에서 만날 텐데 우리 팀보다는 다른 팀 선수로 보고 싶어요. 그래야 제대로 맞붙을 수 있으니까요.
프로농구 최고의 ‘인기남’에게 여자친구의 존재 유무를 물었다. 김선형은 망설임 없이 “지금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 여자가 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의 여자친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정도의 단계는 아니라고 말하는 그한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요즘 무슨 고민해요?”
“음, 누구한테 공을 줘야 하는지가 고민이에요. 용병한테 줘야 할지, 아니면 다른 형한테 줘야 하는지…, 가드이다 보니 어시스트 역할이 중요한데 한 선수만 밀어주면 오해 아닌 오해를 받을 수도 있어서…, 그래서 가드가 어려워요.”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