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시한폭탄’6개월간 째깍 째깍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개미투자자 A 씨가 친구 B 씨에게서 루보라는 종목을 소개 받은 것은 두 달 전. B 씨는 “작전주 같은데 이상하게 상한가 한 번 없이 별다른 호재 발표 없이도 계속 주가가 오르고 있다”고 소개했다. A 씨가 관련 자료를 찾아봐도 루보에서 이렇다할 자료를 발표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주가는 계속 오름세를 탔다. 시장의 개미들에겐 작전주로 통했지만 금융당국이 손을 쓰고 있다는 기미도 없었다.
루보 주가는 지난 10월 초 1000원대에서 4월 16일 5만 1400원까지 치솟았다. 보통 작전주라면 한 2~3개월 만에 몇 번의 반등과 상한가 행진을 거친 후 갑자기 끝내는 게 보통인데 반해 루보는 상한가를 보인 날도 거의 없고 조금씩 조금씩 오르면서 주가가 50배나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시장의 예상대로 루보의 상승세는 지난 16일 꺾였다. 루보가 검찰의 주가조작 혐의 조사를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 루보 주가는 곧바로 곤두박질쳤다.
지난 6개월 동안 무려 50배나 폭등했던 루보는 검찰 조사 소식이 알려진 지난 4월 17일부터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하한가 첫날 800억 원의 시가총액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루보의 주가는 지난해 10월 초 1000원대 초반에서 4월 중순 5만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순손실 10억 원이던 이 회사가 어떻게 6개월 동안 퇴보 없이 장기상승할 수 있었을까.
코스닥시장에서 몇 배에서 수십 배 급등한 ‘작전’ 종목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흔히 말하는 ‘묻지마 급등주’들은 신약개발, 연예인 영입, 인수합병(M&A), 해외유전 개발 등의 호재성 공시를 내놓으면서 ‘개미’를 끌어 들인다. 물론 미리 물량을 충분히 매집한 이후다.
하지만 루보는 기존의 작전주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지금까지 나온 수사 진행 상황 등을 볼 때 루보에 모여든 작전 세력들은 피라미드 다단계 방식으로 자금을 모집, 주가를 끌어 올렸고 이를 바탕으로 추가 자금을 모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1번 투자자가 2번 투자자를 물어 오고 2번 투자자는 3번을 물어온다. 그 사이 주가가 특정 수익률까지 오르면 1번 투자자는 처분한다. 2, 3번 투자자가 수익률을 올리려면 또 다른 투자자를 물어 와야 할 수 밖에 없다. 수사 당국의 발표처럼 다단계 사업 방식 경험이 있는 제이유 사업자들이 가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불특정 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을 활용, 호재성 공시 하나 없이 주가를 수십 배로 뻥 튀겼지만 금융당국의 제재는 유유히 피해갔다. 때문에 금융당국의 대응이 너무 안이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주가조작 사건의 경우 증권선물거래소가 징후를 포착, 이 중 확실한 종목을 금융감독원에 통보한다. 금감원은 이를 바탕으로 조사, 법적 조치를 내린다. 적발에서 법적조치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증권선물거래소는 ‘조회공시’ 요구와 ‘이상급등종목지정’ 조치로 개인 투자자에게 경고장을 날린다.
조회공시는 거래소가 상장법인의 기업 내용에 관한 풍문 및 보도의 사실 여부를 확인·요구하는 경우 이에 대하여 당해 상장법인이 그 내용을 직접 공시하는 것을 말한다. 해당 상장법인은 조회공시를 요구받은 날로부터 하루 내에 직접 공시하고 그 내용을 즉시 거래소에 문서로 제출해야 한다.
루보 역시 주가 급등기간 급등사유를 묻는 조회공시 요구를 네 차례나 받았다. 그때마다 ‘이유 없다’는 답변이 전부였다. 조회공시 후 15일 이내에 상반되는 내용을 결정했을 경우에만 공시번복으로 간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다. 보름 동안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실제로 제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경우는 1건에 불과했다.
‘이상급등종목지정’ 조치도 마찬가지다. 주가가 단기간 급등한 종목에 대해서 주가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이상급등종목으로 지정한다. 이상급등종목으로 지정되면 신용거래가 제한되며 대부분의 증권회사는 위탁증거금을 100% 징수하게 된다. 즉, 미수 거래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루보는 50배나 오르면서 이상급등종목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이상급등종목 지정 요건을 교모하게 피해간 것이다.
최근 5일간 주가 상승률이 75% 이상이면 이상급등종목지정이 예고된다. 최근 5일간 주가상승률이 75% 이상이 이틀간 계속되면 이상급등종목으로 지정된다. 또 최근 20일간 주가지수 상승률의 4배 이상일 경우에도 이상급등종목으로 지정된다.
흔히 말하는 ‘줄 상한가’, ‘점 상한가’ 종목을 이상급등종목으로 지정, 상승세가 한풀 꺾인다. ‘작전주’라는 꼬리표가 붙으면서 금융당국의 시선이 집중되기 때문에 투자자들도 조심한다.
그러나 루보는 주가가 50배나 오르는 동안 상한가를 기록한 날이 몇 차례 안 된다. 하락한 날도 손에 꼽을 정도다.
4월 10일부터 4월 16일까지 루보의 마지막 상승 5일간의 행적을 보자.
10일 10.19%, 11일 9.25%, 12일 10.98%, 13일 0.93%, 16일 5.01% 각각 올랐다. 3만 6300원에서 5만 1400원이 됐다. 이 기간 상승률은 41.59%. 이상급등종목지정 요건인 5일간 75%를 넘기지 않았다.
증권선물거래소 측은 “루보의 경우 주가가 급등하다가 이상급등종목에 지정될 때쯤 되면 멈춘 뒤 다시 올라 현 시장 규정 상으로는 조회공시 외 달리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었다”고 털어 놨다. 금감원 관계자도 “단기 급등이 아니라 눈에 띄지 않게 5% 안팎으로 수개월 동안 주가를 끌어올린 면에서는 지켜보는 사람도 놀랄 정도”라며 혀를 찼다.
이상급등종목으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금액의 두 배 이상 주식을 살 수 있었다.
올해 초까지도 대부분 증권사에서 설정한 루보 주식에 대한 종목증거금률은 40%였다. 일반적으로 증거금 40% 종목이면 이 증거금으로 100% 금액에 해당하는 주식을 살 수 있어서 보유자금의 2.5배를 투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금융감독 당국은 뒤늦게 이 같은 허점 보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단기 급등(5일간 75% 이상 상승)에만 적용하는 이상급등 종목 지정 요건을 ‘지속적인 주가 상승’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조회 공시 요구를 받은 이상급등 종목이 급등 사유가 없다고 답변해도 주가가 계속 급등하면 다시 공시를 요구하기로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금융감독 당국의 뒤늦은 대처에 개미투자자들은 또다시 지옥을 맛봐야 했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