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수능은 끝냈으나 아직 고등학생 신분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원청소년 회관에서 특강을 했다. 특강이 끝나고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보는 순서가 있다고 해서 특강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낭만적 사랑의 신화’로 잡았다.
그런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를 안내하는 직원이었다. 그는 이제 딸 쌍둥이를 얻어 아이 재미가 쏠쏠한 젊은 아빠였는데, 그가 재미있는 말을 한다. 나중에 자기의 딸들은 대학에 보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 목숨을 거니 중·고등교육이 경직될 수밖에 없다. 수원만 해도 좋은 대안학교가 있고, 앞으로는 더욱 많아질 것이니, 경쟁 지향적이기보다 자연 지향적이고 인성 지향적인 대안 학교에 보내서, 학교 다닐 때 행복한 아이들로 키우고 싶단다. 쓸 데 없이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고, 매일매일 충분히 잠을 자지 못하게 고문하고, 노는 것도 잊게 만들면서 성적에만 연연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단다. 신선했다.
내 친구 중에는 아이 학교 때문에 강남을 고집하면서 영어 학원, 국어 학원, 논술학원, 과학 학원을 보내느라 아무 데도 못가고, 아이가 학원에서 학원으로 건너갈 때 운전해주는 것이 일인 친구도 있다. 엄마도 못할 일이지만, 중학생인 딸이 어느 날 그러더란다. 엄마, 학원 다니지 않으면 안 돼? 왜? 내가 너무 불행해. 이렇게 공부만 하며 살아야 되는 건지.
아이 간식 챙기고, 시간 챙기고, 돈 챙기는 엄마도 지극 정성이지만, 그에 부응해야 하는 아이도 그 지극 정성만큼 불행했던 것이다. 수입 대부분을 자녀의 사교육에 쓰는 학부모들, ‘공부’라는 대단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일이 면제되는 아이들, 그것이 정상일까?
중학교를 들어가면 가족모임에서 아이들이 빠지기 시작한다. 시험 때라고 제사에 빠지고,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할아버지 할머니 생일날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돈이라도 줄 수 없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라면 명절 때도 손자손녀를 보지 못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는 굉장히 빠르게 변했다. 너무도 변해서 80년대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적 가족모델을 연구했던 사회학자들이 있었다는 얘기가 아득하기만 하다.
왜 그렇게 대학에 목맬까? 배움은 학교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니, 학교가 배움을 장악하면 학교도 죽은 것이고 사람도 죽은 것이다. 모든 장악은 권력이고 폭력이므로. 학교에서 인정받기 위해 가족도 잃고 어른도 잃고 우정도 잃어야만 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공부 좀 못하면 어떤가. 세상이 온통 배울 것이라 믿고 가족에, 어른들에, 친구들에, 자연에 귀 기울이며 관계 맺는 능력을 배우고 키워갈 줄 아는 인간들이 많아질 때 그 때에만 사람이 희망이라 믿는다, 아니면 사람이 벽이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