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발 폭풍에 ‘박의 미래’ 흔들흔들
▲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 ||
미래에셋생명보험의 노사갈등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8월 임금협상을 하면서부터다. 당시 사측은 임금동결, 회사 이익연동식 임금인상제도 도입, 3년 임금 일괄타결 등의 협상안을 제시했다. 9% 인금인상안을 내놨던 노조는 반발했다. 이후 사측은 노조와 교섭 도중 비조합원에게만 3% 인상한 임금을 지급하는 등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런 갈등 과정에서 조합원 수는 급속도로 준 반면 비정규직은 늘어났고 교섭권은 상급단체인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위원장 정용건·연맹)으로 넘어갔다.
연맹은 2007년 시무식을 여의도 미래에셋증권 본사에서 투쟁선포식으로 대체하고 전국생명보험산업노조, 민주노총 서울본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함께 미래에셋생명대책위원회(위원장 이두헌 연맹 부위원장·대책위)를 세우고 미래에셋 불매운동, 특별근로감독 요청 등 총공세에 나섰다. 갈등이 증폭되면서 폭로전으로 이어졌다. 그 서막은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및 로비 의혹’이 장식했다.
지난 4월 5일 연맹과 대책위는 윤진홍 미래에셋생명 대표이사와 아무개 팀장을 분식회계와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연맹은 이날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에셋생명은 2006년 상반기(4~9월) 결산에서 30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자 사망보험금을 50억 원 축소 계상하여 마치 20억 원의 흑자를 실현한 것으로 조작했다”면서 “이후에도 분식회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보험소비자 및 투자자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연맹은 또 미래에셋생명이 속칭 ‘카드깡’과 상품권 대량 구입 등의 방법을 통해 5~6년 전부터 1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 관리하면서 기관 관계자에게 뇌물을 제공해왔다고 밝혔다. 이 비자금사건은 내부고발로 자체감사 중이었는데 윤 사장이 이를 중지시키고 제보자를 퇴사시켰다는 주장이다.
이 사건은 검찰에 고발되기 전인 지난 3월 금감원의 정기감사를 받았는데 무혐의로 처리됐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기본적으로 ‘분식’이 성립이 안 되는 사안으로 정상적 회계처리였다. 허위사실 공표에 대한 법리적 검토를 하고 있다. 검찰 조사는 현재 사안별로 받고 있다”고 밝혔다. 대책위에 따르면 검찰은 고발인 조사를 끝내고 피고발인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비자금 의혹 사건으로 설전을 벌이는 사이 ‘휴면보험금 횡령사건’이 터졌다. 고객지원부 김 아무개 차장이 지난 2002년부터 5년간 9개 휴면보험 계좌를 조작해 5억 6000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지난 5월 7일 뒤늦게 밝혀진 것. 김 차장은 주로 전산시스템이 쉬는 일요일 휴면계좌를 ‘부활’시킨 뒤 피보험자를 자기 가족 명의로 조작하는 방식으로 일을 꾸며오다 감사에서 적발됐다.
▲ 지난 5월 14일 서울 마포 미래에셋생명 사옥 앞에서 미래에셋생명대책위원회 등이 ‘미래에셋생명 휴면보험금 횡령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그때까지만 해도 ‘생명’에서만 타오르던 불길은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수익률 불법 조작’마저 터지면서 계열사로 번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000년 초 설정한 벤처펀드가 투자한 나래컴퍼니가 부도나자 2005년 이 펀드를 청산하며 사무수탁을 맡고 있던 한국사무수탁에 주식을 취득가격에 떠넘겼고 이 같은 사실이 금감원에 적발돼 파문을 일으킨 것. 미래에셋은 그 대가로 한국사무수탁의 사무수탁 보수를 올려줬고 이 업체 계열사에 광고대행 업무를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통해 미래에셋은 벤처펀드 투자자들의 손실을 보전해주고 펀드수익률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는 간접투자재산 운용 관련 손실보전 금지행위 위반에 해당한다. 이런 불법행위에 대해 미래에셋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처벌은 ‘경고’.
이에 대해 연맹과 대책위, 투기자본감시센터 등은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 사건의 불똥은 박현주 회장 본인에게까지 튈 듯하다. 대책위가 박 회장에 대한 고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 이두헌 대책위원장은 지난 21일 기자와 만나 “박현주 회장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이사로 있었다. 조만간 국제변호사를 동원해 박현주 회장을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지금까지 제보로 확보한 비리 파일이 수없이 많다. 앞서 밝혀진 것들보다 더 심각한 것도 있다”며 확전 태세에 들어갔다.
대책위는 한 사업장의 노사문제를 계속 확대하는 이유에 대해 “생명보험회사의 공공성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래에셋생명이 자산운용사의 하위구조로 전락, 고객의 자산을 위험자산에 투자해 ‘껍데기’만 남고 있다는 것. 실제로 미래에셋생명은 변액보험, 펀드마케팅 등 업계의 관행을 과감하게 깨며 눈부신 외형적 성장을 해왔다. 지난 3월에는 미래에셋맵스자산운용이 설립한 부동산펀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보험료 수익은 줄어들었고 영업이익도 미래에셋 인수 직전인 2004년엔 432억 원 흑자였지만 2005년 308억 원 적자, 2006년 3분기 말(12월 31일)까지 231억 원 적자를 기록 중이다.
한편 회사 측은 “노조에서 비정규직을 늘렸다고 하지만 정규직과 똑같은 근무조건이며 작년에 500명을 뽑았고 나간 사람도 없다. 임단협에서 시작된 사안이 상급단체 등이 끼어들면서 전선이 확대되고 본말이 전도됐다. 상대방이 저렇게 나오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지난 22일 홍콩 출국을 앞두고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면서 “퇴임 후에는 글로벌 장학생 프로그램에 매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책위가 주장하는 생명보험사의 공공성과 박 회장이 말하는 사회적 책임. 언뜻 비슷한 말인 듯하지만 현실에선 너무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