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차별, 연이은 불행을 ‘반란’을 통해 극복한 김동연의 고백과 비전

상고 졸업 반 시절 은행에 붙었지만, 그곳에서도 고졸 출신이란 꼬리표가 붙었다. 은행원으로 일하며 야간대학을 다녔다. 밥 먹을 시간이 없어 야간대학 1교시 쉬는 시간에 짜장면과 우동을 싸게 파는 집에서 늘 식사를 했다.
은행 기업분석부 시절 부장이 과장과 대리를 모아놓고 그가 만든 기업 신용조사서를 보여주며 “너희는 고졸만도 못하냐?”라고 타박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냥 칭찬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됐지만 자부심은 곧 열등감으로 바뀌었다. “학교는 어디 나왔냐”는 물음에 대답을 하고 나가는데 뒤통수에 “요새는 별 희한한 학교 나온 애들도 시험에 붙어서 여기까지 오네”라는 얘기가 들려 불에 덴 듯 얼굴이 달아올랐다. 백조 무리에 끼인 오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기획원에는 온통 명문대 출신이었고 충북 음성 출신의 청년은 예산의 주력이었던 영남 라인도, 기획의 주력이었던 호남 라인도 아니었다. 일로는 능력과 성과를 보여줬지만 주류 라인에 속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차별을 늘 느꼈다.

하지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워싱턴에 있는 미주개발은행에서 근무하던 큰 스물다섯 아들이 백혈병에 걸렸다. 큰아들은 2년 1개월을 투병했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전혀 다른 차원의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엄하게 대하기보다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할 걸, 더 많이 칭찬해 줄 걸, 너무 공부에 스트레스 받지 마라 그만하면 됐다. 일류 대학 안 나오면 어떠냐 성적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 이런 이야기들을 아껴준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는 사회적 이동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부와 사회적 지위가 대물림되며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어진 현실. 부모의 소득이나 교육 수준이 교육, 경험, 직업 격차를 유발하고 결국에 자녀의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불평등을 해결하는 데 역점을 뒀다. 예산실장 때 교육희망 사다리 사업을 만들었고 차관이 돼서도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그의 두 번째 반란이다.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데 주저함이 없는 기득권, 진영의 양극단으로 갈라진 정치, 역사상 가장 똑똑하지만 부모보다 가난한 최소의 세대가 될 위기에 놓인 청년들, 세계 최하위의 출산율, 최고 수준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 이 현실을 완전히 뒤집는 반란을 그는 꿈꾸고 있다.

특히 인간 김동연의 일대기와 그가 공직 생활을 통해 그토록 희구하던 사회적 불평등의 해결, 계층 간 사다리를 놓는 작업의 설계와 실행, 성과 등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울러 후반부에는 그가 정치를 하게 된 이유, 자신의 마지막 비전인 국민의 삶을 바꾸는 정치와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저자인 김동연은 “유쾌한 반란은 이미 시작됐다. 싸움만 하는 정치와 한 번 잡은 걸 놓을 줄 모르는 기득권, 무기력하게 소멸로 향하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이자 절규다”라며 “나는 무허가 판잣집 소년가장에서 출발해 사회로부터 이루 말할 수 없는 혜택을 받아 누렸다. 마땅히 헌신하며 돌려주어야 한다. 기꺼이 그 유쾌한 반란에 앞장서겠다. 새 시대를 여는 유쾌한 반란에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고 있다.
김창의 경인본부 기자 ilyo2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