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수 모티브 남기철 여러 기사들 조합…어린 이창호, 연구생 도장깨기는 허구
‘승부’는 1990년대 한국 바둑계를 뒤흔든 두 전설, 조훈현과 이창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조용하지만 치열한 바둑의 세계를 배경으로, 스승과 제자가 벌이는 심리적 대결과 인간적 갈등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이병헌과 유아인의 열연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개봉 직후부터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는 조훈현(이병헌 분)이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이후 그는 천재적 재능을 지닌 어린 이창호(유아인 분)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함께 생활하며 바둑을 가르친다. 하지만 서로 다른 바둑 스타일은 갈등을 불러오고, 결국 제자 이창호는 스승을 넘어서기 위한 운명의 대국에 나선다.
바둑을 잘 모르는 관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인물 간의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 연출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과거 두 기사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팬들은 “그 시절 열기와 감동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며 추억에 젖었다.
영화 ‘승부’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극적인 재미를 위해 다양한 각색이 이루어졌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영화 제작 허가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조훈현 9단은 비교적 쉽게 동의했지만, 이창호 9단의 동의를 얻는 데는 난항을 겪었다. 시나리오를 검토한 이창호 9단이 자신의 실제 모습이 지나치게 왜곡되었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이 나온다.
영화 제작사와 한국기원까지 나서 설득했지만, 이창호 9단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 제작은 1년간 지지부진했다. 결국 조훈현 9단이 “창호야, 나도 하기로 했어”라는 말로 설득에 성공했고, 이 말 한마디로 영화 제작이 본격화될 수 있었다.

제작진은 처음 서봉수 9단에게도 협조를 요청했으나, 정중히 거절당했다는 후문이다. 이는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이 오랜 기간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며, 반상 안팎에서 경쟁해 온 역사적 배경을 떠올려보면 자연스러워 보인다. 두 사람 사이에서 위로나 조언 같은 상호 교류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이는 당시 바둑계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김형주 감독도 이후 “남기철 사범은 여러 기사들을 조합해 창조한 인물”이라고 밝히며, 현실의 반영이 아닌 영화적 장치임을 인정했다.
영화 속 내용과 실제 사실 관계에서도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첫 대결을 극적으로 묘사하며 마치 처음으로 결승전에서 맞붙어 조훈현 9단이 패한 것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세 번의 실패 끝에 네 번째 만에 스승에게서 승리를 얻어낸 것이다.
첫 사제간 타이틀전은 1988년 제28기 최고위전이었다. 당시 이창호는 13세의 나이로 도전했지만, 조훈현이 3-1로 타이틀을 방어하며 승리했다. 이후 패왕전, 국수전에서도 이창호는 연이어 패배했다.

영화에는 극적인 연출을 위한 과장된 장면들도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이창호가 연구생 형들을 다면기로 모두 이겨버리는 ‘도장 깨기’ 장면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실제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며, 전적으로 재미를 위한 감독의 상상력이 만든 허구다.
또한 사제간에 바둑 스타일로 갈등을 빚거나, 패배 후 바둑돌을 엎는 장면 역시 실제 바둑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사제간 지도 대국 역시 영화에서는 자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단 두 번에 불과했고 대부분 복기를 통해 교육이 이루어졌다.
영화 ‘승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되, 영화적 재미와 감동을 더하기 위해 다양한 각색을 시도한 작품이다. 물론 이러한 각색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 이면에 있는 실제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본다면 더욱 풍성한 감상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유경춘 객원기자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