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부진 뒤에 미래에셋 있다?
▲ 삼성전자의 주가 하락에 미래에셋이 한몫했다는 소문이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주총. | ||
‘건국 이래 최고의 활황’이라는 국내 주식 시장에서 삼성전자 주가는 소외됐다. 지난달 삼성전자의 주가는 한때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55만 원마저 깨지면서 시가총액이 8년 만에 전체 시장의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2006년 1월 31일 74만 3000원까지 올라갔고, 그 뒤 국내 주식시장이 본격적인 상승추세를 지속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변화’에 대해 일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에서 이상한 이야기들이 들린다는 점이다. 한 증권사 영업관련 부서 관계자는 “요즘 기관에서 삼성전자를 사고 그동안 강세를 보였던 조선주 등을 팔고 있다”며 “만약 이로 인해 시장의 흐름이 바뀌면 모 자산운용사와 그 추종자들은 크게 고생할 것”이라며 알쏭달쏭한 얘기를 꺼냈다.
이 관계자가 말하는 ‘모 자산운용사’란 미래에셋을 말한다. 그리고 ‘크게 고생할 것’이란 얘기는 “삼성전자를 왕따 시킨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뜻이다. 다소 엉뚱하게 들리는 이 얘기에는 삼성전자로 인해 희비가 갈린 증권업계의 속사정이 숨어있다.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한 몇몇 증권사들은 ‘삼성그룹주 펀드’를 설정해 운용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삼성계열 종목들 위주로 운용되는 펀드들이다. 그런데 이 펀드들의 성적표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펀드에 편입된 종목들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전자 주가가 약세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펀드평가사인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특정그룹주 펀드가운데 최고 수익률을 낸 한국증권의 ‘한국삼성그룹적립식 주식 1Class’ 펀드의 수익률은 36.9%였다. 그리 나쁜 성적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펀드들과 비교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기간 중소형주 펀드 가운데 수익률이 가장 좋은 ‘동양 중소형고배당 주식1’ 펀드의 수익률은 69.94%. 삼성그룹주 펀드의 2배에 달한다.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를 믿었던 펀드운용사들과 고객들은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데 이들이 삼성전자 주가가 좋지 못한 책임을 미래에셋에 돌리는 까닭은 무엇일까. 미래에셋이 계속해서 삼성전자 주식을 내다팔아 주가를 짓눌렀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미래에셋이 신규 자산주를 발굴한다며 다른 종목들은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서는 반면, 펀드 환매 요구가 들어오면 삼성전자를 내다 팔아 그 돈을 환매자금으로 돌려준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다보니 미래에셋 수익률은 좋아지는 데 반해 삼성전자 주가는 맥을 못 추고, 결국 삼성관련 펀드 수익률도 엉망이 됐다”고 전했다.
이 얘기가 어디까지 진실인지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삼성전자 주식은 미래에셋이 아니더라도 최근 몇 달간 외국인의 집중매도 대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삼성그룹조차 삼성전자의 주가가 왜 약세인지 원인 분석에 나섰다는 얘기가 들리는 걸 보면 삼성도 의아해하고 있는 듯하다. 재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 전략기획실은 최근 삼성전자 주가와 관련해 보고서를 작성해 그룹 고위층에 전달했다고 한다. 그는 “보고서 내용 중에 미래에셋의 삼성전자 주식 집중 매도를 언급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삼성전자와 미래에셋을 둘러싼 다른 괴담도 돌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은행과 미래에셋 간의 갈등설’이다. 그동안 은행들이 미래에셋의 펀드를 적극적으로 판매해줘서 크게 컸는데 이 은행들이 작년부터 미래에셋 대신 자기 은행 계열 운용사의 상품을 적극적으로 팔기 시작해 미래에셋이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얘기는 미래에셋의 보복성 매매로까지 과장돼 있다. “은행들 때문에 고생했던 미래에셋이 은행계열 자산운용사들이 많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를 의도적으로 내다팔았다”는 것이다.
황당하게만 들리는 이 얘기는 그러나 실제로 미래에셋이 자산주와 조선주 등을 적극적으로 편입해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반대로 은행계열 자산운용사 등은 수익률이 크게 악화되면서 한때 ‘실제상황’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특히 일부 은행계 운용사의 주식운용 본부장이 문책성 인사로 교체되는 경우가 생기면서 얘기는 갈수록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자산운용업계는 ‘미래에셋파’와 ‘반 미래에셋파’로 갈라져 있다”는 얘기마저 들리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운용사들은 시장의 흐름이 바뀌기를 기다리며 칼을 갈고 있다. 이들 중에는 미래에셋이 갖고 있는 종목들의 상승세가 꺾이면 물량 공세를 펼쳐 주가를 더 떨어뜨려 버리겠다는 생각마저 갖고 있는 사람들도 일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런 얘기가 국내 주식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해석도 있다. 금융자본이 제조업 자본보다 확실히 우위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