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대규모 복지정책 ‘페론주의’ 여론 양극화 극심…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 장기집권 후 경제 혼돈

국회 회의록 시스템 검색 결과 1948년 5월 제헌 국회부터 2016년 5월 제19대 국회까지 68년간 베네수엘라는 단 11번 언급됐다. 같은 기간 아르헨티나는 21번, 포퓰리즘은 41번 언급됐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회에서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는 연일 호명됐다. 제20대 국회(2016년 6월~2020년 5월)에서 베네수엘라는 335번, 아르헨티나는 310번 언급됐다. 제20대 국회에서 포퓰리즘은 633번 언급됐다. 평균 2~3일에 한 번 포퓰리즘이라는 단어가 국회에서 사용된 셈이다.
일례로 2018년 9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무성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는 좌파 사회주의 정책과 포퓰리즘을 펼치고 있다”며 “오늘의 포퓰리즘은 내일의 눈물이며 포퓰리즘으로 일관했던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그리스의 불행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로 대표되는 중남미 포퓰리즘은 제22대 국회에서 다시 소환됐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영향이었다. 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 총선 공약이었던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 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1호 당론 법안으로 추진했다. 김종양 국민의힘 의원은 2024년 7월 18일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민주당에서 이재명 대표 공약인 민생회복지원금만 지급되면 민생이 회복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며 “베네수엘라라든지 아르헨티나라든지 그 잘살던 나라들이 망했다. 망했던 근원은 이재명 대표 식의 나눠주기식, 현금 살포식 포퓰리즘 정책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24년 8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민생회복지원금 법안 반대 토론자로 나선 김상욱 당시 국민의힘 의원은 “포퓰리즘 법안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정치인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품격”이라며 “우리는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가 민주적 방법으로 포퓰리즘에 빠져 독재로 또 국가 부도로 이어지고 그 후에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가 겪은 경제 위기 원인이 단순히 복지 포퓰리즘 정책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 특파원으로 4년간 베네수엘라에 머물렀던 윌리엄 노이만은 2022년 발간한 책에서 포퓰리즘 정책 외에도 석유 가격 폭락, 미국 제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베네수엘라 경제가 파탄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중남미 국가 경제를 연구하는 미국 경제학자 마크 와이스브롯은 아르헨티나가 1990년대 초 국제통화기금(IMF) 권고로 미국 달러에 자국 통화 페소를 일대일로 고정한 환율 제도를 도입하면서 외환 부족으로 경제가 붕괴했다고 2008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주장했다.
복지 포퓰리즘은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경제 파탄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었더라도 여러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또한 두 나라는 포퓰리즘 정권 이후 정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사회 갈등과 분열이 계속됐다. 아르헨티나는 포퓰리즘 반작용으로 지난 2023년 극우 정권이 탄생하면서 또 다른 혼란에 빠졌다. 베네수엘라는 차베스 후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2024년 3연임에 성공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권력 유지를 위해 야권과 시민 사회를 탄압해 국제적 논란을 빚고 있다.

페론 대통령이 펼친 대규모 복지 정책은 ‘페론주의’(Peronism)로 불린다. 페론주의는 좌파 포퓰리즘의 대표 사례로 손꼽힌다. 페론주의는 현재까지도 아르헨티나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페론주의 찬성과 반대로 아르헨티나 여론은 양극화됐다.
페론 대통령은 원래 군인이었다. 1943년 군사 쿠데타에 가담해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노동자 친화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페론 대통령은 1946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무상 복지 확대,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 대규모 복지 정책을 펼쳤다. 페론 대통령 집권 초기 아르헨티나 경제는 성장했다. 하지만 1950년대 들어 경제가 악화하면서 페론 대통령 지지도는 떨어졌다. 결국 1955년 9월 군사 쿠데타가 발생해 페론 대통령은 축출됐다.
페론주의에 반대하는 정권이 들어서도 아르헨티나 경제 위기는 반복됐다. 그때마다 페론주의를 계승한 세력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키르치네르는 페론주의 계승을 기치로 내걸어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연이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키르치네르 정권은 빈곤층에 매달 현금 지원, 무상 주택 공급 확대 등 복지를 대폭 확대했다.
2023년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는 극우 성향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당선됐다. 밀레이 대통령은 포퓰리즘을 척결하겠다며 전기톱을 들고 유세를 펼쳤다. 거친 입담으로 숱한 논란을 일으키는 괴짜 정치인이었던 밀레이 대통령의 당선은 페론주의에 대한 강한 반작용으로 해석됐다.

그동안 누려온 복지에 익숙한 시민들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공립대학 예산 삭감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2024년 4월과 10월 벌어졌다. 연금 축소 정책에 반발하는 시위도 반복되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12일 열린 시위가 격렬했다. 경찰과 무력 충돌한 시위대 100여 명이 체포됐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에 맞은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시위대를 “좌파 정치 세력이 돈을 주고 고용한 용병”이라고 주장하면서 경찰의 강경 진압에 대해 “흠잡을 데 없는 일을 했다”고 치켜세웠다.
밀레이 정부는 사법부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3월 12일 시위 중 체포된 인원 대부분을 법원이 석방하자 밀레이 정부는 해당 판사를 직무 유기 등 혐의로 고발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지난 2월 야당 동의 없이 대법관을 임명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는 1980년대 초까지 고도성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국제 유가가 급락하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군인이었던 우고 차베스는 부패 정권을 쓰러뜨리겠다며 1992년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차베스는 쿠데타에 실패해 수감된 뒤 1994년 특별사면됐다. 차베스는 정당을 만들어 정치 활동에 나섰고 1998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차베스 대통령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대규모 복지 정책을 펼쳤다. 차베스 대통령 집권 이후 빈곤율과 유아 사망률은 감소했다. 하지만 석유산업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는 흔들렸다.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석유산업 재투자에 사용되지 않으면서 원유 생산량이 감소한 탓이었다. 차베스 정권의 각종 국유화 정책 때문에 외국 기업은 하나둘 베네수엘라를 빠져나갔다.
차베스 대통령은 2013년 사망할 때까지 정권을 유지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등 개헌을 반복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사의 방송 허가권 갱신을 불허하는 등 언론을 탄압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마두로 정권이 이어지면서 베네수엘라 사회 혼란은 극심해지고 있다. 마두로 대통령은 2024년 7월 대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 여론조사, 출구조사와 전혀 다른 결과라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됐다. 극우 성향 베네수엘라 야당은 마두로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할 때마다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오히려 야권이 부정선거를 시도했다면서 “선거관리위원회 개표 시스템 해킹 시도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