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 안동 오지마을 생가 지금은 밭으로 변해…화재로 소실된 김 후보 영천 생가 “과거 마을에서 제일 큰 집”
일요신문은 지난 5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고향을 다녀왔다. 이 후보 고향은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김 후보는 경북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 두 후보가 태어난 곳은 같은 경상북도지만 차도로 120여km, 자동차로 2시간 20여 분 소요되는 거리에 떨어져 있다.
방문해보니, 두 후보 생가는 흔적조차 없었다. 덩그러니 터만 남았다. 이 후보 생가는 평범한 밭으로 바뀐 지 오래였고 김 후보 생가는 잡초로 뒤덮인 나대지였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치열해지면서, 이재명-김문수 두 후보 생가 터엔 그들 당선을 진심으로 염원하는 ‘찐팬들’ 발길도 이어지고 있었다.
마을 주민 왕래나 지지자들 방문이 끊어졌을 때, 생가 터는 고요했다. 간간이 울리는 새소리가 아니면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고’라는 시조 구절이 연상됐다. 그곳에서 태어난 ‘인걸들’은 6·3 대선 승리를 위해 전국 타향을 분주히 누비고 있었다. 과연 누가 금의환향해 자신의 뿌리, 생가 터로 돌아올까.

이재명 후보가 지난 20대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2021년 7월 1일. 이 후보 첫 일정은 고향 안동 방문이었다. 이 후보는 안동에서 1964년 12월 태어나 13세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경기 성남으로 이주해 새 터전을 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동엔 현재 이 후보 조부모와 부모 선영이 있다. 이 후보는 예전에 “제가 삶을 정리할 때 저 역시 여기에 묻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마을은 화전민이 떠난 후 형성된 마을로 전해졌다. 이 후보는 5남 4녀로 태어났지만 누나 둘이 세상을 뜨면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이곳에서 자랐다.
이 후보 생가 마을은 여느 한적하고 고요한 산골 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마을엔 현재 40여 가구, 주민 80여 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보가 태어난 곳은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670번지. 이곳은 이미 오래전 평범한 밭으로 바뀌었다. 사람 사는 집이 있었다고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나마 이 밭 아래쪽에 ‘제20대 대통령 후보 이재명 생가터’라는 푯말이 서 있어 이 밭의 숨은 내력을 알 수 있게 한다.
가난했던 이 후보는 이 마을에서 차도로 6km가량 떨어진 월곡초등학교 삼계분교장까지 걸어서 통학했다고 한다. 도보로 왕복 두 시간이 넘는 장거리다. 이 후보의 초등학교 10년 선배인 이 마을 주민은 “이번 대선에서도 여기는 (경상도) 다른 데 하고는 다르다”며 “아무래도 고향 사람 찍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번엔 (당선) 되지 않겠느냐”며 이 후보 당선을 기대하는 밝은 표정이었다.
지난 20대 대선 투표일엔 마을회관에 주민들이 모여 함께 개표방송을 지켜봤다. 오는 6월 3일 개표방송도 함께 볼 거라 했다.

5월 21일 이 후보 생가터를 방문한 ‘성지순례객’도 있었다. 경북 봉화에 있는 청량산 등반을 마친 일행 3명이 생가 마을을 방문했다. 경북 경주에 사는 이들은 “대통령 후보 생가 터를 구경하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일행 중 70대 후반 남성은 “이 후보는 억강부약(강한 자를 억누르고 약한 자를 도와줌)할 것으로 기대돼서 이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생가 터 방문객에 대해 그리 불편해 하거나 꺼리지 않았다. 생가 터 바로 위쪽에 사는 주민은 방문객들에게 되레 의자를 내주고 커피를 타주고 심지어 술잔을 권하기도 했다. 이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오고 있어, 주민과 방문객 모두 이 후보 당선을 떼어놓은 당상처럼 여기는 분위기였다.
한 마을 주민은 이날 처음 만난 생가 터 방문객들에게 선뜻 “(이 후보가 6월 3일) 대통령에 당선되면 바로 그 다음날 (여기로) 넘어 오이소. 그때 소주나 한잔 합시다”라고 권하기도 했다.

김문수 후보 고향은 경북 영천군 임고면 황강동(현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 275번지 일대 3필지)이다. 1951년 9월 경주김씨 집성촌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김 후보 집안은 유교적 가풍이 엄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무원이던 김 후보 아버지는 월급 등 가진 돈이 있으면 문중 일에 썼다고 한다. 김 후보 부모 묘소는 임고면 고천리 운주산 자락에 모셔져 있다.

전통마을에선 옛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마을 어귀 황강못 가장자리엔 남강 김취려가 수학하던 남강정사가 고즈넉하게 터를 잡고 있다. 김 후보 생가 터 바로 옆엔 경북 문화재자료373호 경주김씨 지사공 종택이 유서 깊은 마을 내력을 짐작케 한다.
김 후보 역시 경주김씨 가문 출신. 마을 주민에 따르면, 김 후보는 황강리에서 태어나 4~5세 때까지 자랐다. 자동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영천 시내로 나가 영천초등학교(52회 졸업)를 다녔다. 이후 대구에 있는 경북중(현 경운중)과 경북고를 나와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이처럼 김 후보가 영천에 머문 시절은 초등학생 때까지였다. 그럼에도 김 후보 애향심은 깊어 보인다. 경기도지사 시절에도 그 이후에도 간간이 고향을 방문했다. 어떤 땐 황강리에서 하룻밤 묵기도 했다.
김 후보는 예전에 영천에서 특강하며 “어린 시절이 눈에 생생하다. 임고면 황강리에서 자라 영천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등 고향 영천에서의 추억은 잊히지 않는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기자가 방문한 황강리경로당 실내엔 ‘국회의원 김문수’가 기증한 벽시계가 걸려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김 후보는 경기 부천시 소사구에서 1996년 7월부터 2008년 5월까지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70대 초반인 마을 주민은 “김문수 후보님은 네댓 살에 영천 시내로 나갔다. 후보님에 대해 아는 분들도 많이 돌아가셔서 후보님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마을에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김 후보 집안을 아직 기억하는 몇몇 주민을 만날 수 있었다. 경로당에서 만난 80대 후반 어르신은 “(김 후보가) 어렸을 때 (영천시로) 나갔는데 어른(김 후보 아버지)하고 큰형이 여기 오래 살았다”며 “(김 후보) 아버지는 인물도 좋고 점잖았다. 그 집 사람들은 다 똑똑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그 집은 우리처럼 농사도 안 지었다. 기와집이 서너 채로 컸고 부자로 살았다”며 “그러다 그 집이 불에 타 버렸다”고 전했다.

기자가 김 후보 생가 터 앞에서 만난 또 다른 80대 주민은 “내가 60년 전쯤 결혼한 다음 이 마을에 왔기 때문에 김문수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으나 생가의 내력에 대해선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집(김 후보 생가)엔 큰채(안채의 경북 방언)와 사랑채, 일꾼들 먹고 자는 방이 있었다. 나중에 (김 후보의) 조카 식구가 살았는데 30년 전쯤 불이 나서 그 조카는 죽었고 조카의 애들은 서울로 이사 갔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나중에 (김 후보) 집안사람이 여기에 2~3년 정도 콩을 심기도 했는데 도시로 나가버렸다”고 전했다.
김 후보 생가 터를 알려주는 별도의 표지판이나 푯말은 없다. 다만 생가 터 옆에 있는 전력사용량 측정기에 김 후보 지지자로 추정되는 김 아무개 씨가 5월 20일 검정 매직으로 적어 놓은 ‘김문수 후보 생가터임’이 유일한 표식이다.
60대 주민 박경현 씨는 “당(국민의힘)이 워낙 인심을 잃으니까 그게 김문수 후보님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며 “기자 분이니까, 제발 (국민의힘에) 큰일 앞두고 같은 식구끼리 싸우지 말라고 좀 써 달라. 자기들끼리 싸우니까 부산도 민주당으로 다 넘어가지 않았느냐”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했다.
안동·영천=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