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한 기훈이 어떻게 인간성을 회복하는지가 서사 중심 축…“K-콘텐츠 문 연 느낌, 닫히지 않게 노력해야죠”

‘오징어 게임 시리즈’에서 이정재가 연기한 성기훈은 456억 원의 상금을 걸고 서로 죽고 죽이는 서바이벌 게임 속 살아남은 최종 우승자 중 한 명이지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게임을 멈추기 위해 자진해서 다시 게임장 안으로 들어간다. 2024년 12월 공개된 시즌 2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참가자들과 함께 게임 주최 측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끝내 실패하고 절친인 정배(이서환 분)를 잃게 되는 결말을 맞았다. 삶의 목표도 목적도 잃어버린 채로 절망에 빠진 성기훈이 어떻게 다시 일어서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인간성을 회복하게 되는지가 6월 27일 공개된 ‘오징어 게임 시즌 3’ 서사의 중심축을 이룬다.
“시즌 3에서 기훈은 자기가 반란을 일으켜서 실패했는데 이로 인한 죄책감 등의 감정을 전부 탄창을 갖고 오지 않은 채 도망친 대호(강하늘 분)에게 전가해요. 그러면서 ‘내가 대호를 죽이는 건 정당한 거야’라며 살인의 정당성까지도 만들어 버리고는 다시 절망에 빠지게 되죠. 이런 굴곡을 겪으면서 기훈은 다시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마지막 선택으로 향합니다. 이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기훈은 그가 중심이었던 시즌 1과 달리 주변의 다른 캐릭터들을 충분히 지켜보고 이들을 엮어내는 관찰자이자 그물망 역할을 하기도 해요. 이런 측면을 유지하면서 기훈이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과 그 분기점을 어디에서부터 잡아갈지 세밀하게 나누려고 했죠.”

“그런 반응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지배적인지에 대해서는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저는 연기자로서 창작자의 생각을 최대한 실현시켜주는 것이 직업이기에 ‘왜 이런 설정을 만들었을까, 나는 이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기훈이 게임장 안에서 몸부림치며 뭔가 바꿔보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다 보니 어떤 혁명적이고 쿠데타적인 시도에까지 이르렀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민란’이란 느낌도 들었고요. 기훈의 이런 시도가 ‘민중봉기’라고 생각한다면 그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을까요?”
반란 실패 후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면서도 스스로의 죄책감에 짓눌려 절망에 빠져 있던 기훈을 일으켜 세운 것은 결국 또 다른 ‘인간’이었다. 대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해 죽인 뒤부터 조금씩 인간성을 잃어가던 기훈은 게임장 안에서 출산한 준희(조유리 분)와 그 아기를 위해 다시 일어서 다른 이들과 맞선다.

“보통 저희가 촬영할 때 스케줄을 정말 빡빡하게 잡는데 그날 촬영은 오로지 그것만을 위해서 하루 전체 스케줄을 다 빼놨어요. 특히 기훈이 떨어지기 직전의 장면은 정말 다양하게 많이 찍었죠. 여러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 기훈의 상황을 아주 디테일하게 조금만 바꿔서 찍어보기도 하고, 표현을 더 다양하게 하는 버전으로 찍기도 하고 그랬어요. 정말 온종일 그것만 찍고(웃음)! 저도 촬영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 신이었는데 감독님이 어떤 버전을 최종적으로 선택하실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그게 아마 제 마지막 촬영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제 다이어트도 그날로 끝났거든요(웃음).”
최후의 얼굴과 함께 성기훈이 유언처럼 남긴 “우리는 말이 아니야. 사람이야. 사람은…”이라는 대사도 시청자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말줄임표와 침묵으로 마무리 된 이 대사를 두고 이정재 역시 촬영 직전까지도 황동혁 감독에게서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감독님한테 계속 ‘도대체 뭐냐’고 물어봤는데 끝까지 얘길 안 해주시더라”며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시즌 3까지 공개된 뒤 93개국에서 시청 순위 1위에 오른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콘텐츠가 아닌,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2020년대 전 세계에 불어닥친 K-콘텐츠 열풍의 변화는 ‘오징어 게임’의 전후로 나눠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으로 보낸 5년 동안 새로운 한류의 주인공으로도 주목 받은 이정재 역시 이 같은 변화를 누구보다 선명하게 느끼고 있다고 했다. 숫자로 기록되는 성공의 객관적인 수치를 넘어서 측정할 수 없는 시대의 변화를 이끌어낸 ‘오징어 게임’은 이정재에게 있어 어떤 ‘분기점’으로 남게 될까.
“제가 이 질문을 해외에서 정말 많이 받는데요(웃음), 개인적으로는 정말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죠. 하지만 한편으로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오징어 게임’을 통해 다양한 한국 콘텐츠를 접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했거든요. 정말 갑자기 문이 열린 것처럼 엄청나게 많은 한국 작품들을 보게 된 거죠. 제가 바라는 건 제발 이 문이 다시 좁아지거나 닫히지 않게 다음 콘텐츠들을 좀 더 잘 만들어야 하겠다는 거예요. 저 개인이 더 성공하고 잘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이제 해외에 알려지게 된 좋은 한국 콘텐츠가 계속 꾸준히, 많이 알려지길 바랄 뿐입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