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낚싯대에 걸리면 피라미도 월척된다
전문직 종사자인 김 아무개 씨(40)의 경우 2005년부터 2억 원가량을 투자했지만 현재 잔고는 5000만 원이 채 안 된다. 이 기간 동안 주가지수는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증권사 관계자들은 “개인투자자들은 느긋하지 못하고 조급한 투기성 투자를 해서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즉, 지난해부터 주가는 크게 올랐지만 개인투자자들의 수익률은 마이너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재벌 2·3세는 다르다. 이들은 손대는 것은 십중팔구 수십~수백%의 수익률을 기록한다. 도대체 이들은 재복을 타고났단 말인가. 아니면 주가예측 능력이 있단 말인가. 재벌 2·3세가 ‘큰손’으로 등장하고 있는 코스닥시장에 들어가 보자.
9월 14일, 코스닥 상장사인 ‘자강’에 투자했거나 투자할 사람들은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본금 287억 원에, 그것마저도 잠식돼 감자를 하는 자강이 1000억 원 규모의 내의업체인 트라이브랜즈를 인수키로 한 것. 자강은 20 대 1로 무상감자를 실시할 예정인데 그렇게 하면 자본금은 15억 원가량으로 준다. 회사의 가치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트라이브랜즈를 갖고 있는 대한전선은 한술 더 떠 “자강이 트라이브랜즈를 인수할 자금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세인들은 곧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취임할 예정인 신형근 씨가 롯데가(家)의 일원이라는 것을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 씨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5촌 조카인 신동인 전 롯데쇼핑 사장의 아들로 자강의 뒤에는 바로 롯데그룹이 있다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친 것이다. 현재 자강은 서서히 주가가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주가 향방을 예단하긴 어렵지만 상승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신 씨처럼 코스닥시장은 최근 재벌 2·3세의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지분투자를 넘어 아예 인수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주자가 LG가인 구본호 씨다.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동생인 고 구정회 씨가 구 씨의 조부다. 따라서 구본무 LG 회장과 구본호 씨는 6촌 사이다. 구 씨의 아버지인 고 구자헌 씨는 범한판토스, 레드캡투어(옛 범한여행) 창업자이자 오너였다.
구 씨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M&A에 나서 지난해부터 차례로 미디어솔루션(레드캡투어로 사명변경), 액티패스(나노사업), 엠피씨(여행업)를 인수했다. 여행업이나 물류업이 아닌 봉강제조업을 영위하는 동일철강도 인수했다. 그런데 구 씨가 손대는 기업마다 주가는 폭등해왔다. 최근 인수한 동일철강의 경우 구 씨의 투자소식에 10만 원대의 주가가 100만 원대로 올라서 ‘황제주’가 됐다. 그는 지금까지 M&A를 통해 2000억 원에 육박하는 시세차익을 얻고 있다.
구씨의 ‘대박’ 배경에 대해 증권가에서는 ‘재벌 브랜드 가치’를 들고 있다. 재벌들이 지분투자를 하면 재벌 그룹의 하청업체가 되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다. 나중에는 재벌 계열사에 M&A될 수가 있어 그런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한다고 말하는 것. 재벌 2·3세들은 재벌의 ‘후광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구 씨 등장 이후 이런 프리미엄을 노리는 듯한 ‘후발주자’도 많이 등장했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철원 씨도 최근 코스닥시장에 입성하며 ‘후광효과’를 누리고 있다. 최씨는 SK그룹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의 둘째 동생인 최종관 전 SKC 고문의 장남으로 SK가 2세다.
최 씨는 대학 졸업과 함께 SK에 입사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상무직에 오르기도 했다. 2002년 물류회사인 마이트앤메인을 창업해 SK그룹의 물류사업을 기반으로 성장시켜온 최 씨는 지난 4월 코스닥 상장기업인 디질런트FEF를 인수해 마이트앤메인을 우회상장시켰다. SK가 사람이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회사의 주가는 두 배가량 상승했고 최 씨는 현재까지 수십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으로 GS그룹 계열사인 코스모의 허경수 회장도 반도체 장비업체인 에이로직스에 100억 원가량을 투자했고 허 씨가 투자한 이후 재벌의 후광효과로 허 회장 역시 100억 원가량의 시세차익을 보고 있다.
고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의 증손자인 장수일 장원영 장준영 씨와 손자·손녀인 장세일, 장옥빈 씨는 케이앤엔터테인먼트에 40억 원가량을 투자해 한 달도 채 안 돼 수십억 원의 평가차익을 올렸다. 이 회사에는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의 아들인 장현준 씨도 2억 원을 투자해 수억 원을 벌었다.
그렇다고 모두가 재벌 후광효과를 보는 것은 아니다.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 장선우 극동유화 이사 등은 코디너스에 투자했으나 큰 재미를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인 박중원 씨도 뉴월코프에 투자했으나 역시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적잖은 ‘실탄’에다 빵빵한 ‘브랜드’를 가진 이들은 빚을 내서 ‘몰빵’하는 여느 개미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만은 사실이다.
그룹 홍보실은 공식적으로 구 씨를 ‘LG가’가 아닌 ‘구씨 일가’로 표현해주길 요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연관성을 꼭 부인하기만도 어렵다. 현재 범한판토스, 레드캡투어의 홍보와 광고는 모 홍보대행사에서 맡고 있다. 이 홍보대행사의 사장은 이 아무개 씨로 LG그룹 홍보실 출신. 레드캡투어 사장은 심재혁 씨로 역시 LG텔레콤 등 LG그룹에서 근무했다. 구본호 씨의 최측근인 황선도 레드캡투어 감사도 LG그룹 출신이다.
황선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