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자본의 피도 눈물도 없는 사냥 시작된다
지난 19일 SC제일은행을 소유하고 있는 피터 샌즈 영국 스탠다드차타드그룹 회장이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증권사 인수 의향을 묻는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그만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2009년 2월)을 앞두고 금융업계, 특히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인수·합병(M&A) 논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소장 김선웅 변호사)가 최근 ‘자본시장통합법과 금융회사의 M&A 가능성과 방향’이라는 연구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는 ‘M&A 가능성이 높은 조건을 갖춘 증권회사’를 구체적으로 거론해 눈길을 끈다.
‘금융회사 M&A 가능성’ 연구보고서를 낸 김선웅 소장은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인해 자본시장은 업종간 M&A를 통해 겸업화·대형화 추세로 갈 것”이라면서 “실제 M&A가 진행될 수 있는 회사들은 어느 곳인가 하는 관심이 있지만 매물에 관해서는 루머 수준의 추상적인 얘기만 나왔다. 구체적인 M&A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보고서를 냈다”고 밝혔다.
금융회사 중 M&A 대상이 될 수 있는 업종은 특히 증권회사라는 것이 보고서의 분석이다. 자본금과 일정한 인력만 있으면 설립할 수 있는 자산운용회사와는 달리 증권사를 인수하면 매매결제시스템, 은행에 필적하는 영업망, 자산운용을 위해 필요한 리서치조직, 거기에 지급결제기능까지 단번에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는 외국계와 온라인전용을 제외하고 28개 증권사가 있다. 보고서는 이 중 인수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증권사의 기준을 ‘지배주주의 지분이 상대적으로 적고 다른 금융계열사가 없는 곳, 특히 다른 증권회사나 금융회사의 인수·합병에 필요한 자기자본을 증가시킬 만한 자금력이 없는 곳’으로 삼았다.
이런 기준을 바탕으로 은행이나 금융지주회사에 속한 증권회사들과 재벌그룹 또는 금융그룹에 속한 증권사는 M&A 대상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이렇게 해서 도출된 증권사는 모두 10곳. 대신 현대 서울 신영 부국 신흥 SK 한양 브릿지 유화가 물망에 올랐다. 가장 눈길을 끄는 증권사는 역시 대형 증권사인 대신증권과 현대증권이다.
보고서는 대신증권의 지배주주 지분율을 6.66%(2006년 9월 기준)로 분석했다. 대신증권의 특징은 ‘지배주주 지분율이 매우 낮을뿐더러 지배주주의 승계도 불확실하다’며 ‘적대적 M&A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대신증권은 지난 1975년 ‘망해 가던’ 증보증권을 양재봉 명예회장이 인수, ‘큰 대 믿을 신’이라는 이미지로 크게 키웠다. 2001년 양 명예회장 차남 양회문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지만 2004년 폐암으로 타계하면서 가정주부였던 양 회장 부인 이어룡 현 회장이 대신을 이끌고 있다. 개인 최대주주인 이 회장 장남 양홍석 대신투신운용 상무 지분은 5.55%(지난 6월 현재)에 불과하다.
대신증권 측은 M&A 가능성에 대해 “최대주주가 경영권 유지에 확고한 의지가 있고 공식적인 우호지분이 29%에 달할 정도로 적대적 M&A에 대한 대응방안도 있다”면서 “지금껏 금융기관에 대한 적대적 M&A는 없었다. 그 보고서에 대해 할 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창업 2세의 불의의 사망, 가정주부였던 미망인의 총수 등극 등 대신증권 이어룡 회장과 비슷한 역정을 겪은 더 유명한 증권사가 있다. 바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현대증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 지배)이다.
보고서는 현대증권의 지배주주 지분율을 16.41%로 분석했다. 현대증권의 특징은 ‘현대그룹에 속하지만 지배주주가 추가 자본을 확충할 여력이 불확실하다’면서 ‘과거 계열회사에 의한 적대적 M&A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증권 측은 “우선 보고서의 지분율 분석이 잘못됐다. 현재 최대주주인 현대상선의 지분율이 20%가 넘는다”면서 “또 지분 분산이 잘돼있기 때문에 20% 이상이면 적대적 M&A에 노출될 우려는 별로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현대증권 측은 “최근의 증자 결정(11월 15일 완료)으로 우호지분은 더 늘어날 것이다”고 보탰다.
보고서는 대신증권과 현대증권에 대한 적대적 M&A 가능성에 대해 또다른 부연설명을 하고 있다. 현대증권같이 모회사인 현대상선의 경영권분쟁에 증권사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 ‘상장회사가 적대적 M&A 상황에 처할 경우 의결권 위임을 받고 정보를 취득하는 데 증권회사만큼 좋은 조직도 없다’는 이유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껏 현대증권 측은 매각(우호적 M&A)설을 강력하게 부인해왔다.
보고서는 소액주주나 직원들은 M&A를 원한다고 관측한다. 회사의 성장과 가치 증가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액주주나 직원들이 M&A를 주도할 수는 없는 법. 다만 대신증권이나 현대증권처럼 지배주주 지분율이 낮고 영업조직이 좋은 증권회사의 경우 우호적 M&A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적대적 M&A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SK증권(지배주주 지분율 35.15%)은 재벌그룹 계열 증권사임에도 ‘리스트’에 올라 눈길을 끈다. 보고서는 ‘원래 SK그룹에서 매각을 추진하고 있었고 모회사의 지주회사 전환으로 인해서 계열분리가 예정돼 있다’면서 ‘SK그룹에 속하지만 금융계열사는 증권회사가 유일하다. 다만 지배주주의 의도가 변수’라고 분석했다.
흥미로운 점은 SK증권 처리 문제는 SK가 최태원-최신원·창원 사촌형제의 ‘분가’와도 맞물려 있다는 점. 우선 SK증권의 지배주주는 SK네트웍스(22.43%)와 최신원 회장의 SKC(12.26%)로 최태원 회장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SK그룹이 SK증권을 독립계열사로 유지하거나 매각하지 않는다면 SK㈜와 지분 관계가 없는 곳으로 넘길 수 있다. SK케미칼에 넘기면 최창원 부회장 계열이 되고 SKC&C에 넘기면 최태원 회장 품안에 들어가는 구도다. 몸값이 높아지고 활용도가 높은 증권사를 어떻게 할지 증권업계는 물론 재계의 관심도 높은 이유다.
한편 보고서는 ‘지배주주들이 증권회사를 지배하면서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증권사의 M&A가 쉽게 이뤄지기는 힘들다’면서 ‘복합화·대형화 압력에도 기존의 지위를 위지하기 위해 규모를 적게 가져가면서도 생존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 외에 M&A 가능성 높은 조건 갖춘 증권사
(자료=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증권사 | 지배주주 지분율 | 내 용 |
서울증권 | 25.06% 2006년 9월 현재 | 건설회사인 지배주주가 2006년 경영권 분쟁과정에서 지분 인수한 후 지분 확대. 잦은 지배주주 교체. 선물회사와 자산운용사 보유. |
신영증권 | 21.65% | 개인지배주주가 30년 이상 보유. 지배주주의 자본 확충 여력 불확실. 자사주가 많아 경영권 방어 가능성 있음. 자산운용사 보유. |
부국증권 | 23.78% | 개인대주주가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음. 자기주가 많아 경영권 방어 가능성 있음. 자산운용사 보유. |
신흥증권 | 30.51% | 개인지배주주가 40년 이상 보유. 지배주주의 자본 확충 여력 불확실. 다른 금융계열사 없음. |
한양증권 | 40.47% | 지배주주가 학교재단이고 50년간 보유. 지배주주의 추가 자본 확충 여력 불확실. 다른 금융계열사 없음. |
브릿지증권 | 55.90% | 지배주주의 자본 확충 여력 불확실.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탈 보유. |
유화증권 | 64.52% | 지배주주가 40년 이상 보유. 지배주주의 추가 자본 확충 여력 불확실. 다른 금융계열사 없음. |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