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산소에 있다’더니… ‘억’소리 나는 해외여행
[일요신문]
새해 벽두부터 국회의원들의 외유성 해외출장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해를 넘겨 예산안을 졸속 처리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 소속 9명이 그 장본인이다. 해외출장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고 비난여론이 들끓자 일부 의원은 부랴부랴 귀국길에 올라 사과를 표했지만 일부는 일정을 대부분 소화한 뒤에야 되돌아왔다. 이들 해외출장에 쓰인 비용은 총 1억 5000만 원, 한 사람당 약 1667만 원의 혈세가 쓰였다. 한 의원은 출국 직전 예산안과 관련해 전화를 건 기자에게 “아버지 산소에 있다”고 말하기도 했단다.
이번에 ‘신년맞이’ 외유에 나선 의원들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내 계수조정소위원회 소속 의원 9명(장윤석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과 예결위 간사인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 민주통합당 최재성 의원, 계수조정소위 위원인 새누리당 김재경, 권성동, 김성태 의원, 민주통합당 홍영표, 안규백, 민홍철 의원)이다. 이들은 지난 1일 오전 2013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기 직전까지 호텔에서 예산안을 최종 조정해 본회의에 넘긴 뒤 발 빠르게 해외출장길에 올랐다.
예산시스템 연구를 핑계로 외유에 나선 예결위 ‘9인방’은 다시 중남미팀과 아프리카팀으로 나눠진다. 중남미팀(새누리당 장윤석 권선동 김재경 의원과 민주통합당 안규백 민홍철 의원)은 지난 1일부터 10박 11일 일정으로 미국 LA를 경유해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파나마 3개국을 둘러보는 여정을 짰다. 예산안 처리 당일 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다음날(2일) 오후, 아프리카팀(새누리당 김학용 김성태 의원과 민주통합당 최재성 홍영표 의원)이 출발했다. 케냐, 짐바브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둘러보고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경유해 귀국하는 10박 11일 일정이다. 원래는 ‘아·태평양팀’도 있었다. 예결위 소속 또 다른 의원 4명은 오는 20일경 해외 출장길에 오를 예정이었지만 여론을 의식해 계획을 잠정 보류한 상태다.
외유에 나선 계수조정소위는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수권 소위원회로 활동기간이 불과 1주일 남짓에 불과하다. 일한 날보다 해외출장 일정이 더 길었던 셈이다. 그마저도 호텔을 옮겨 다니며 총 342조에 달하는 한 해 예산을 밀실에서 야합 처리, 이 과정에서 속기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1월 3월 <매일경제>는 “출장을 떠난 예결위 국회의원들의 각 지역구 예산 증액 상황을 추적한 결과, 39개 사업에 총 1175억 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당초 정부안은 657억 5200만 원이었지만 조용히 517억 8500만 원이 증액된 셈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장윤석 예결위원장은 지난 6일 급거 귀국했다. 장 위원장은 “미리 잡힌 일정에 중남미 국가와 의원 교류를 확대하자는 취지인데 외유성으로만 몰아가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같은 날 케냐에 있던 민주통합당 최재성·홍영표 의원도 급히 귀국했다. 최재성 의원은 “예결위가 끝나면 여야가 함께 외국에 나가는 게 관례이기 때문에 안갈 수 없었다”라며 “일정 담당자에게 100% 공식일정을 요구했다. 다만 해당국의 박물관을 방문하는 일정까지는 허용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박물관 관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교활동을 벌였다는 주장이다.
특히 최재성 의원은 부인과 함께 외유에 나선 것이 알려지면서 집중포화의 대상이 됐다. 공교롭게도 최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의 부부동반 출장을 문제 삼은 바 있다. 당시 최 의원은 “김 총재는 여섯 차례 부부동반 해외 출장에 6000만 원을 썼다. 그중 다섯 차례는 배우자를 공식 요청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이틀 뒤인 8일에는 아프리카로 떠났던 김학용·김성태 두 의원이 함께 들어왔다. 반면 중남미팀 4명은 10일 오후에나 귀국했다. “현지에서 표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게 이유다. 귀국 후 이들은 하나같이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실 관계자는 “원래 일정보다 이틀 당겨서 돌아온 것”이라며 “권 의원은 인사청문회 간사를 맡아 이제부터 바쁘게 활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김재경 의원실 측은 “일찍 귀국하려고 했는데 표가 잘 구해지지 않았다”며 “지금 손님이 오셔서… 나중에 전화해 달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민주통합당 역시 사정은 피차일반. 이중 외유에 나섰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에 잘못 걸린 케이스로 이해해 달라”라며 “우리(보좌관)들도 해외에 못 나간 지 2년이나 됐다”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은 국정감사를 앞둔 7월·8월, 예산 심의가 끝난 뒤인 1월·2월에 집중된다. 잘만 하면 1년에 2번은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 소속 한 보좌관은 “이번 달은 여야 의원 30명 동남아 해외출장도 예정돼 있었는데 일이 커지면서 취소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 이 외에도 교육과학위·국토해양위·외교통상위에 소속된 여야 의원들이 상임위 차원에서 1월 해외 순방 일정을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국회의원들이 ‘자유롭게’ 해외출장을 갈 수 있는 근본 원인은 ‘외유성 출장’에 대한 기준과 함께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출장 목적은 그야말로 ‘쓰기 나름’이고 가끔은 가고 싶은 나라를 먼저 정한 뒤 거기에 맞게 목적을 끼워 넣는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회사무처 직원은“해외출장 때마다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한두 명씩 수행원으로 따라붙는다. 사전 예약부터 시작해 현지 일정을 조율하고 출장 후 제출하는 활동보고서 역시 국회사무처 직원들이 작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나마 국회사무처 직원들은 7~8년에 한 번씩 나가는 수준”이라며 “국회의원들 해외출장 수행은 고된 일이라 내 돈이 안 든다고 해도 사양하고 싶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김상혁 간사는 “지난 2004년부터 2005년까지 국회의원 해외출장에 관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당 부분 관광성 외유가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이를 지적한 바 있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라며 “경실련에서는 이번 예결위 외유와 관련해 정보공개청구를 해 놓은 상황이다. 활동보고서, 회계처리장부 등을 확인한 후 ‘정상적 외교활동’이 아닌 ‘외유성 해외출장’임이 밝혀질 경우 보다 강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의장·부의장도 출타중
1월 임시국회 열긴 여나
국회의장단 역시 외유성 해외출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지난 13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태국과 베트남·미얀마 등 3개국을 방문한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의장단 해외 순방은 외교적으로 중요한 일이고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것은 국가적인 결례를 범하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병석 국회부의장 역시 지난 9일 새누리당 김희국·이완영, 민주통합당 홍의락 의원과 함께 ‘자원·녹색산업 협력 증진’을 위해 일주일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대만 등 3개국 방문길에 오른 상태다. 의장단 해외출장은 다른 의원들의 경우에 비해 눈총을 덜 받긴 하지만 세부 일정과 소요 예산 등을 한 번도 속시원하게 공개한 적이 없다.
여야에서는 겉으로는 1월 임시 국회를 열어 산적한 민생 현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당장 임시 국회를 열 경우 의원들 머릿수를 채울 수 있을지 염려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각 정당 관계자들은 ‘어느 의원이 해외에 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개별적으로는 해외에 나간 의원들을 조용히 불러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편 예결위가 늑장 처리한 2013년도 예산안에 국회의원 연금 자원인 헌정회 육성법 관련 예산 128억 7600만 원이 그대로 포함된 것도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은 더해지고 있다. 이미 대선 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한 마음 한 뜻’으로 국회의원연금 폐지를 외친 바 있다.
현재 국회에서 오는 25일 임시국회 개원을 목표로 세부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1월 임시국회는 국회의원 연금법 이외에도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과 국무총리·국무위원 인사청문회, 부동산 취득세 감면 연장을 비롯한 민생법안이 한 가득이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인 이동흡 전 대법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21일과 22일 양일간 열기로 합의한 상태지만 당장 헌법재판소장 공백사태(21일 이후)는 피할 길이 없다.
외유성 해외출장에 국회의원 연금까지 알뜰하게 챙긴 국회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
1월 임시국회 열긴 여나
이병석 국회부의장 역시 지난 9일 새누리당 김희국·이완영, 민주통합당 홍의락 의원과 함께 ‘자원·녹색산업 협력 증진’을 위해 일주일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대만 등 3개국 방문길에 오른 상태다. 의장단 해외출장은 다른 의원들의 경우에 비해 눈총을 덜 받긴 하지만 세부 일정과 소요 예산 등을 한 번도 속시원하게 공개한 적이 없다.
여야에서는 겉으로는 1월 임시 국회를 열어 산적한 민생 현안을 처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당장 임시 국회를 열 경우 의원들 머릿수를 채울 수 있을지 염려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각 정당 관계자들은 ‘어느 의원이 해외에 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개별적으로는 해외에 나간 의원들을 조용히 불러들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한편 예결위가 늑장 처리한 2013년도 예산안에 국회의원 연금 자원인 헌정회 육성법 관련 예산 128억 7600만 원이 그대로 포함된 것도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은 더해지고 있다. 이미 대선 때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한 마음 한 뜻’으로 국회의원연금 폐지를 외친 바 있다.
현재 국회에서 오는 25일 임시국회 개원을 목표로 세부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한다. 1월 임시국회는 국회의원 연금법 이외에도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안과 국무총리·국무위원 인사청문회, 부동산 취득세 감면 연장을 비롯한 민생법안이 한 가득이다.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인 이동흡 전 대법관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21일과 22일 양일간 열기로 합의한 상태지만 당장 헌법재판소장 공백사태(21일 이후)는 피할 길이 없다.
외유성 해외출장에 국회의원 연금까지 알뜰하게 챙긴 국회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