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 ‘깜짝선물’도 위원들 ‘떡고물’도 없다
▲ 지난 10일 오전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김용준 인수위원장 주재로 전체회의가 열렸다. 인수위사진기자단 |
지난 1월 6일 제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삼청동 금융연수원에 현판을 걸고 공식 출범했다. 이로써 18대 인수위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이 예정된 2월 25일까지 ‘50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현재 인수위는 출범이 다소 늦어지면서 “인수위에서의 1시간을 1년과 같이”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봇대를 뽑겠다”며 규제완화를 강조했다면 박 당선인은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며 민생안정에 방점을 찍는다. 이번 인수위는 실무 위주 인선을 강조하면서 규모가 다소 줄었다. 김용준 위원장과 진영 부위원장을 비롯해 24명의 인수위원들과 전문위원·실무위원 88명을 포함해 총 114명이다. 지난 17대 인수위는 파견 공무원 78명을 포함해 모두 147명에 달했다. 인수위의 권력화와 논공행상을 막고 차기 정부의 ‘로드맵’이라는 인수위 취지를 살리자는 의도로 읽힌다. 인수위 활동을 통한 ‘단물’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면서 내부에서는 ‘싱거워졌다’는 푸념도 들린다.
“작아지고 조용해졌다.”
18대 인수위를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선이다. 지난 17대 인수위 부위원장이었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 6일 인수위 워크샵에서 “과거 인수위가 정치인 중심으로 꾸려졌고 인수위가 곧 권력기관이자 ‘출세의 사다리’로 인식된 측면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 17대 인수위에서 전문위원으로 활약했던 위원 상당수가 정부 요직을 차지했고 장·차관급으로 성장한 파견공무원들도 많았다.
하지만 이번 인수위에서는 과거와 같은 ‘콩고물’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일단 인수위 안에서 명함을 주고받는 광경이 사라졌다. 내부 입단속도 철저하다. 김용준 위원장은 첫 번째 전체회의에서 “인수위 활동 기간은 물론 활동 이후에도 직무와 관련해 알게 된 비밀을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김 위원장을 비롯한 인수위원들은 출퇴근과 점심을 먹는 사이사이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인수위와 관련해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지난 17대 인수위에서는 아침 7시 30분부터 업무를 시작해 ‘얼리 버드’, 주말 없이 일한다는 의미에서 ‘노 할리데이(No Holiday)’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반면 이번 18대 인수위는 중요한 결정이 제3의 장소에서 몰래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이트 아울(Night Owl·올빼미형 인간을 일컫는 말)’, 전문성과 실용성이 지나치게 강조돼 새로운 정책과 신선한 내용이 실종됐다는 의미에서 ‘노 서프라이즈(No Suprise)’라 할 만하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이에 대해 “당선인이 가장 우려하고 또 경계하는 것이 인수위의 권력화다. 과거 인수위가 화제를 모은 인수위원들의 활동에 집중됐다면 이번 인수위는 대선 때 공약을 현실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라며 “인수위가 출세 사다리보다는 일종의 거푸집 형태에서 그칠 것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9일 <일요신문>이 입수한 ‘18대 인수위 운영 개요(안)’에 따르면 인수위 주요활동 일정은 크게 ▲정책기조 설정 ▲정부조직 개편 ▲주요직위 인선▲취임행사 준비 4가지로 이뤄져 있다. 이는 17대 인수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는 구성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책기조 설정과 관련해서는 1월 16일까지 부처별 업무보고를 마친 후 2월 15일까지 국정과제를 확정하고 취임식 이전 최종 보고서를 발간하기로 예정돼 있다. 이와 연계해 설날(2월 10일)을 전후로 차기 정부의 명칭도 확정지을 예정이다. 지난 17대 인수위에서는 차기정부 명칭을 만장일치로 ‘이명박 정부’로 결정하면서 “심플하지만 상징성이 부족하고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11일부터는 각 부처별 업무보고도 시작됐다. 사정당국에서는 과연 어느 정부부처가 첫 테이프를 끊을지 관심사였는데 국방부와 중소기업청, 보건복지부 등이 선정됐다. 이는 대선 기간 내내 안보와 경제민주화, 그리고 선별적 복지를 강조한 박근혜 당선인의 생각과 연장선상에 있다.
인수위 내부에서 화제를 모은 것은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별도로 업무보고를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가 뒤늦게 일정이 잡힌 것이었다. 인수위 내부 정보를 미리 알고 투자 등의 목적으로 잘못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인수위 안팎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H 투자증권 한 관계자는 “지난 인수위 때 내부 정보를 활용해 테마주 등에 투자해 이득을 본 경우가 왕왕 있었다고 하더라. 금융권에서 인수위를 드나들며 정보를 얻는 일을 사전 차단하려는 생각이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정부개편도 착착 진행 중이다. 현재 15부2처18청에서 18부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당선인이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해양수산부 부활, ICT 전담 부서(과거 정보통신부) 신설을 대선 때 공약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박근혜 당선인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미래창조과학부 신설로 인해 교육과학기술부가 어떻게 쪼개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후문이다. 인수위 한 파견공무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직개편안은 민주통합당과도 상당 부분 생각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 인수위 때와 같은 극심한 갈등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요직위 인선에도 국민들의 눈과 귀가 쏠린다. 국무총리를 비롯해 감사원장·국가정보원장·검찰총장·국세청장·경찰청장 등이 대상이다. 특히 차기 국무총리 인선과 관련해서는 ‘호남총리론’이 줄기차게 거론되며 호남 인사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있지만 인수위 측에서는 ‘능력총리론’으로 여론의 흐름을 바꾸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박선규 대변인은 지난 10일 브리핑을 통해 “특정지역을 염두에 두고 인선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에 관계없이 능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 적재적소에 일할 수 있도록 배치하겠다는 것이 당선인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밝혔다. 앞서의 인수위 파견공무원 역시 “결국 국정운영 능력을 검증받은 인물이 중용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라고 짧게 언급했다.
2월 25일로 예정된 취임식 행사 준비는 별도의 취임준비위원회(김진선 위원장)에서 이뤄진다. 취임준비위 부위원장에는 유정복 의원이 내정된 상태다. 친박계 핵심 의원이라 그의 ‘암약’에 기자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취임식이 끝나면 백서를 발간하는 것으로 인수위 활동은 마무리된다. 지난 인수위에서는 7개 국어로 발간된 백서에 여러 군데 오기가 발견되면서 망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