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만원 주면 시험문제 빼내줄게”
▲ 충남경찰청 브리핑. 사진 충남경찰청 |
열정은 기본이요 실력까지 겸비한 ‘참교육자’도 장학사 선발 시험이란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무엇보다 끈끈한 인맥과 거액의 로비가 합격의 당락을 가르는 열쇠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사실은 충남도교육청의 교육전문직(장학사·교육연구사) 선발 과정에서 검은 거래가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한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항간의 떠도는 소문으로만 치부했던 것이 사실로 밝혀지자 교육계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뿐 장학사 선발을 둘러싼 비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일 충남도교육청 소속 장학사 노 아무개 씨(52)가 현직 교사로부터 금품을 받고 시험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충격적인 사실이긴 했으나 이때만 하더라도 상황을 심각하게 보는 이는 드물었다. 경찰 조사에서 노 씨는 “과거 기출 문제를 전해주고 인사 명목으로 돈을 받았을 뿐”이라며 항변했고 충남도교육청 역시 “추이를 지켜보겠다”며 관망하는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전주곡에 불과했다. 이틀 뒤 충남도교육청 소속 장학사이자 논란이 된 시험문제를 출제했던 박 아무개 씨(48)가 음독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박 씨는 경찰의 수사 물망에는 올랐으나 직접적인 조사를 받은 적은 없어 그의 선택은 의문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박 씨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지난 11일 숨져 경찰을 당혹케했다.
여기에 노 씨에게 금품을 제공한 현직 교사 김 아무개 씨(47)까지 구속되고 경찰의 수사 확대 방침이 발표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 확산됐다. 충남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지난해 7월 실시된 제24기 충남도교육청 장학사 선발 시험에서 논술문제 6문항과 면접문제 3문항이 노 씨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대가로 김 씨는 노 씨에게 현금 2000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며 “사건에 가담한 인물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윗선 개입이나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경찰이 단단히 두 손을 걷어붙인 데는 의심할 만한 정황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노 씨는 시험이 치러질 당시 출제위원도 아니었으며 문제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없는 위치였다.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사전에 문제를 빼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공교롭게도 당시 출제위원이었던 박 씨가 자살을 시도함에 따라 수사의 빌미를 제공하는 모양새가 됐다.
경남교육청 관계자 역시 “수명의 출제위원들이 외부와 단절된 채 문제를 내고 시험 당일 운반되기에 중간에서 빼내기란 쉽지 않다”며 “그 전에 누군가 출제위원과 소통하는 조력자가 있고 또 이 모든 것을 묵인해줄 고위관계자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점을 근거로 경찰은 이번 범죄가 조직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선 구속된 노 씨는 일개 ‘모집꾼’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년을 앞둔 이 아무개 교장(초등학교)은 “장학사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이 늘어났다. 결국 이 과정에서 돈이 오가게 되고 이런 식으로 장학사에 오른 이들 때문에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즉 뇌물로 장학사 자리를 따낸 이들이 선배를 자처하며 교사들에게 자신의 방법을 넌지시 알려주면서 돈을 바란다는 것이다.
이 씨는 “현직 장학사들의 은밀한 제안을 거절할 배짱 있는 교사들은 없다. 시험에서 떨어질 수 있는데 누가 거절을 하겠는가. 한 명당 수천만 원씩 받아 챙기면 해마다 수억씩 벌어들이는 꼴이다. 그 많은 돈을 장학사 혼자 가질 일은 만무하다”고 말했다.
현직 교사 박 아무개 씨(52)도 동료들의 장학사 준비과정에서 ‘못 볼 꼴’을 봤다고 고백했다. 박 씨는 “굳이 문제를 유출하지 않아도 장학사를 준비하는 교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장학사 출신 교장·교감들은 자신의 경력을 자랑하며 먼저 찾아와줄 것을 은근히 요구하기도 한다. 네가 나한테 성의를 표하면 정보를 전달해주고 ‘줄’을 대주겠다는 뜻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리가 만연한 것도 문제이나 더 심각한 점은 이러한 행위가 워낙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어 경찰 수사로도 제대로 뿌리 뽑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이번 사태에서도 장학사 노 씨는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만 주고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일명 ‘대포폰’까지 이용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경찰은 노 씨가 대포폰 3대를 마련해 유심칩 10개를 갈아 끼우며 출제위원과 시험에 응시한 교사 15명, 충남도교육청 관계자 등과 통화한 정황을 포착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관련자 20여 명을 추적하고 있다. 이들을 상대로 수사범위를 넓혀 비리를 낱낱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장학사에 목매는 이유
교장되는 초고속 지름길
출세와 돈. 현직 교사들이 장학사에 매달리는 이유다. 초등학교 교장 이 아무개 씨도 한때 장학사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곤 오지로 떠돌며 평가점수를 쌓아 정년 3년 전에야 교장이 됐다.
이 씨는 “일반 직장인들이 승진을 원하듯 교사도 똑같다. 평교사에서 교감, 교장이 되는 것을 승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해진 수순을 밟아 그 자리에 오르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반면 장학사가 되면 10여 년이나 빨리 교감, 교장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청 고위직에도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어 자연스레 인기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봉을 바라고 장학사를 꿈꾸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씨는 “몇몇 편안한 생활을 누리는 장학사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연봉을 억 단위로 받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장학사를 지낸 뒤 교감이나 교장을 맡으면 말이 달라진다”며 “현직에 있을 때보다는 퇴임 이후 연금의 문제라고 본다. 평교사로 정년을 마쳤느냐 교감, 교장으로 마쳤느냐에 따라 액수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에 다들 승진을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
교장되는 초고속 지름길
출세와 돈. 현직 교사들이 장학사에 매달리는 이유다. 초등학교 교장 이 아무개 씨도 한때 장학사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을 깨닫곤 오지로 떠돌며 평가점수를 쌓아 정년 3년 전에야 교장이 됐다.
이 씨는 “일반 직장인들이 승진을 원하듯 교사도 똑같다. 평교사에서 교감, 교장이 되는 것을 승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해진 수순을 밟아 그 자리에 오르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뿐더러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반면 장학사가 되면 10여 년이나 빨리 교감, 교장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청 고위직에도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어 자연스레 인기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연봉을 바라고 장학사를 꿈꾸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씨는 “몇몇 편안한 생활을 누리는 장학사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 그렇다고 연봉을 억 단위로 받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장학사를 지낸 뒤 교감이나 교장을 맡으면 말이 달라진다”며 “현직에 있을 때보다는 퇴임 이후 연금의 문제라고 본다. 평교사로 정년을 마쳤느냐 교감, 교장으로 마쳤느냐에 따라 액수가 크게 차이 나기 때문에 다들 승진을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