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프로그램 일환, 수익금 전액 빚 변제에 쓰여…‘성실한 채무자’ 돕기, 개인 파산 제도 새 계기

이날 특별한 라이브 방송엔 동시 접속자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전국적 관심을 끌었다. 댓글도 쏟아졌다. 판사들이 물건을 파는 것에 대해 신기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너희 처리할 사건 없냐” “한가한 모양이다” 등과 같은 부정적 댓글을 본 리우이 판사가 시무룩해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가오춘 법원 집행국 책임자이기도 한 리우이는 방송을 통해 “우리가 팔고 있는 게의 수익은 치우란의 채무를 갚는 데 쓰일 것”이라면서 “신뢰할 수 있는 채무자를 돕기 위한 판매”라고 설명했다. 2시간가량 라이브 방송에서 치우란이 준비한 게는 모두 팔렸다.
가오춘 법원은 2020년 6월 ‘개인 파산제도 시범 법원’으로 지정된 후 채무자들을 위한 여러 방안을 도입했다. 이번 생중계도 그 일환이다. 중국인민대학 법학원 교수 쉬양광은 “성실하지만 불행한 채무자들의 재기를 돕기 위한 것”이라면서 “사법이 더 이상 무자비하고 냉정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줬다”고 했다.
치우란 가족은 평범한 중산층 집안이었다. 2015년 5월경 치우란 어머니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람을 치었고, 26만 위안(5300만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그 후 치우란 가족은 게 양식을 시작했는데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교통사고 배상금까지 합하면 가계 부채는 80만 위안(1억 6000만 원)으로 불어났다.
치우란을 포함한 모든 가족은 빚을 갚기 위해 밤낮으로 일했다. 치우란과 남편은 낮엔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밤엔 야시장 노점을 열었다. 틈 날 때마다 치우란 부모가 하는 게 양식을 도왔다. 게를 파는 것도 치우란 부부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10여 년간 치우란 가족이 갚은 돈은 20만 위안에 불과했다.
리우이는 치우란 어머니 교통사고 배상을 집행하는 판사였다. 리우이는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매년 12월 28일 치우란이 나에게 연락해 돈을 입금했다고 알렸다”고 전했다. 그는 “2025년 6월 치우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낡은 노트 하나를 봤다. 거기엔 그동안 갚은 돈과 앞으로 갚아야 할 돈이 적혀 있었다.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치우란은 게 양식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면 채무를 다 갚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게는 잘 팔리지 않았고, 눈덩이처럼 커진 빚을 갚기엔 부족했다. 이 소식을 들은 리우이와 동료들은 치우란 가족에게 법원의 ‘유사 개인 파산’을 활용하라고 조언했고, 치우란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 제도는 채무자가 자산 청산과 금융 프로그램 등을 통해 부채를 한 번에 갚은 뒤, 이를 다시 은행에 상환하는 방안이다. 리우이는 “재정비 대출이라고도 한다. 채무자는 법원과 계약을 맺은 은행으로부터 낮은 이자에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사 개인 파산은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 채무자가 빚을 갚으려고 노력했다는 것도 인정돼야 한다. 대출의 상환 주기는 8년이고, 채무 불이행이 발생하면 법원은 회수 절차를 재개한다.
법원 집행부와 파산 관리인은 치우란 가족의 게 양식장을 방문해 사업 현황을 조사했다. 또 치우란 가족의 20명 채권자를 소집해 동의 여부를 물었다. 회의에선 치우란 가족의 수년간 상환 기록 등이 제시됐다. 채권자들은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이들은 “치우란은 정말 성실하고 열심히 살았다”고 입을 모았다.
리우이를 비롯한 판사들은 치우란 가족이 올해 양식한 게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했고, 라이브 방송을 통해 직접 팔기로 했다. 상급 법원에 보고했고, 승인을 받았다. 그동안 치우란 가족은 이 게를 도매상에게 넘기거나 노점에서 직접 팔았다. 라이브 방송은 3명의 판사와 따로 섭외한 전문 진행자가 참여했다.
판사들은 게를 파는 것 외에도 가오춘 법원의 개인 파산 제도에 대해서도 홍보했다. 리우이는 “이 제도는 아직 중국에선 초기 단계다. 성실하지만 불행한 채무자들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이 제도의 전제 조건은 채권자들의 동의다. 이들이 허락하면 치우란 가족처럼 재정비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라이브 방송과 마찬가지로 추첨 행사도 열렸다. 구호는 ‘공정’ ‘정의’ ‘치우란 응원’ 등이었다. 방송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다소 딱딱했던 판사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워졌고, 분위기도 가벼워졌다. 판사들은 게를 집어 들고 ‘먹방’도 했다. 2시간으로 예정되었던 시간이 접속자가 몰리면서 40분 연장됐다.
라이브 방송은 30만 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준비한 게는 모두 팔렸고, 5만 위안(1030만 원)의 수익을 거뒀다. 이는 법원의 계좌로 송금돼 차우란 가족의 빚을 갚는 데 쓰인다. 리우이는 “사실 방송 전에 친척들에게 몰래 주문을 부탁했다. 이들은 게의 품질이 매우 좋았다고 전해왔다”고 했다.
중국에선 개인 파산에 대한 명확한 법률과 규정이 없다. 리우이는 “개인 파산의 핵심은 채무 면제가 아니라 채무 관리와 재조정이다. 평생 빚에 시달리면 채무자는 살아가기 힘들다”고 했다. 리우이는 “신뢰할 수 있지만 불행한 채무자를 어떻게 식별하느냐가 관건”이라면서 “채무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 채권자 의견 수렴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가오춘 법원은 개인 파산 신청자 중 한 명이 과거 복권에 당첨되고도 이를 채무 변제에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탈락시킨 바 있다.
리우이는 “예전엔 사실 집행 판사는 채무를 추심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젠 피집행인의 탈출을 돕는 데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면서 “성실한 채무자가 포기하지 않도록 법원이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인민대학 법학원 교수 쉬양광은 “기존 법률 체계와의 연계, 악의적인 채무 회피 방지 등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