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없는 물류 마진에 제동…단체 교섭권 제도화 속 가맹점주 조직 ‘노조형’으로 진화할지도 주목
그동안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는 로열티(매출의 일정 비율)를 받는 미국형 모델 대신, 물류 마진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이른바 ‘물류 비즈니스’ 형태였다. 계약서에 이를 명시하지 않고 진행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판결로 인해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마진은 ‘법적 근거 없는 부당이득’으로 판단될 여지가 커졌다.

#대법원 “계약서 없이 물류에 마진 붙이면 안 돼”
대법원 3부는 이달 15일 한국피자헛 가맹점주 94명이 본사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차액가맹금과 관련된 명시적·묵시적 합의가 없었다”며 차액가맹금 215억 원을 돌려주라는 내용의 2심 판단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렇게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차액가맹금을 “가맹점주가 공급받은 상품·재료 대금 중 적정 도매가격을 초과해 지급한 금액”으로 규정했다. 가맹사업법상 가맹금에 해당하긴 하지만, 이를 받으려면 가맹본부와 점주 사이에 명시적이거나 최소한 구체적인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제 프랜차이즈 본사는 ‘계약서 등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물류 마진은 모두 돌려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미 치킨, 버거, 커피 등 주요 가맹사업 분야에서 약 20여 개 브랜드의 가맹점주들이 피자헛 2심 일부 승소 판결 이후 일제히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자칫하면 프랜차이즈 본사들은 수년 동안 챙겨온 마진을 모두 돌려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더 나아가 기존 가맹점주들과 새로운 계약서를 다시 작성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가 즉각 반발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15일 입장문을 통해 “업계의 오랜 관행이자 유통업계의 일반적인 상거래 관행을 뿌리째 뒤흔드는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반면 전국가맹점주협의회는 “이번 판결은 그동안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관례처럼 수취해 온 차액가맹금의 부당함을 확정한 결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가맹점주=을?’ 구조 깨질까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뿐 아니라, 제도적 변화 역시 ‘프랜차이즈 회사’에게 어려운 구조로 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는 지난해 말 통과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더욱 힘이 실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가맹점주 단체에 교섭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일정한 조건을 갖춘 가맹점주 단체를 정식으로 등록하면, 해당 단체에 실질적인 단체 교섭권이 부여된다. 이는 가맹점주들이 개별 점주가 아닌 ‘단체’로서 본사와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갖게 됨을 의미한다.

본사의 경영권 보장을 위해 ‘가맹사업 통일성이나 본질적 사항에 반하는 거래조건, 가맹본부의 경영 등에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는 제한하도록 법에 명시했다. 하지만 본사의 일방적 공지에 가맹점주가 따랐던 구조에서, 이제는 모든 정책 결정에 점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교섭의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통 마진을 챙기지 못하게 된 본사가 로열티 인상을 시도하려 해도, 단체 교섭에 막혀 이마저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김정민 가맹거래사는 “정보 공개서라는 제도가 있음에도 미국 등에서는 프랜차이즈 본사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정보를 공개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20페이지 수준에 그쳐 정보 제공이 제한적이었다”며 “이번 판결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 기조가 ‘가맹점주’에게 더 많은 정보와 권한을 주는 쪽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본사가 인테리어로 수억 원씩 남기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부분도 법이 바뀌면서 이제 인테리어 분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지난 20년 동안 가맹사업 관련 법제는 가맹점주의 권리 향상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가맹거래사 찾는 수요 늘어날까
이처럼 법적·제도적 환경이 급변하면서 프랜차이즈 업계의 눈은 일제히 ‘가맹거래사’에게 쏠리고 있다. 가맹거래사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자격을 부여받아 가맹사업의 법률 자문, 계약서 작성, 분쟁 조정을 전문으로 하는 국가공인 전문가다. 가맹거래사는 본사와 점주 사이에서 객관적인 수치를 바탕으로 로열티 체계 전환이나 비용 분담 비율을 조정하는 ‘전략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한다.
점주 단체가 ‘노조형’으로 진화하게 되면, 본사와 단체 모두 가맹거래사나 변호사를 대동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 감정적인 대립이 아닌, 법리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조정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투명한 로열티 제도를 정착시키고, 본사는 브랜드 가치 제고와 R&D에 집중하고, 점주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는 구조로 가야 한다는 신호”라며 “가맹거래사뿐 아니라 변호사들도 새로운 분쟁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경쟁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환한 객원기자 mast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