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한국 바둑의 대들보 박정환 9단(33)이 세계 바둑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며 ‘신한은행 세계 기선전’의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2011년 후지쓰배 우승 후 14년 6개월간 정상을 사수하고 있는 박정환 9단은 조훈현 9단을 제치고 ‘메이저 최장기 우승’ 신기록을 세웠다. 사진=한국기원 제공2월 27일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제1회 신한은행 세계 기선전 결승 3번기 최종국에서 한국 랭킹 2위 박정환 9단은 중국의 신예 강자 왕싱하오 9단(22)을 상대로 230수 만에 백 불계승을 거두고 종합 전적 2 대 1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로써 박정환은 연간 개최 대회 중 세계 최고 수준인 4억 원의 우승 상금을 획득했다.
이날 대국은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대혈투였다. 초반 흑을 쥔 왕싱하오 9단이 미세한 우위를 점했으나, 박정환 9단이 승부수를 던지면서 국면은 걷잡을 수 없는 혼전으로 치달았다. 인공지능(AI)조차 승률 계산에 혼란을 겪을 만큼 복잡한 대마 싸움이 벌어졌고, 두 기사의 치열한 수싸움 속에 팽팽한 균형이 유지됐다. 승부의 추가 기울기 시작한 것은 종반이었다. 박정환 9단이 상대의 빈틈을 정확히 찌른 176수가 결정적인 승착이 되었고, 끝내 왕싱하오 9단은 박 9단의 정교한 대응을 넘어서지 못하고 항서를 썼다.
대국 직후 복기 모습. 박정환이 종합전적 2-1로 왕싱하오를 꺾고 세계 기선전 초대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한국기원 제공이번 우승은 박정환 개인에게도, 한국 바둑사에도 매우 뜻깊은 기록을 남겼다. 통산 6번째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을 달성한 박정환은 2011년 후지쓰배 첫 우승 이후 무려 14년 6개월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이 보유했던 종전 메이저 최장기 우승 기록(13년 4개월)을 갈아치웠다. 특히 33세의 나이로 11살 어린 중국의 차세대 에이스를 제압했다는 점에서 노장의 저력과 변치 않는 기량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랫동안 랭킹 2위에 머물며 느꼈던 한계를 이번 우승으로 단번에 씻어낸 박정환은 다시 한번 1인자 반열로 올라설 발판을 마련했다.
우승 직후 박정환은 “2021년 우승 이후 계속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었는데, 오늘 우승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며 “상금보다 초대 챔피언이라는 명예가 더 소중하고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는 소회를 전했다. 또한 “이번 우승을 계기로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시상식에서는 한국의 미를 강조한 이색적인 풍경이 펼쳐져 이목을 끌었다. 박정환 9단은 전통 의상인 두루마기와 숭례문 문양이 새겨진 은제 갓을 착용하고 등장해 세계 바둑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한은행이 후원한 이번 대회는 세계 최대 규모의 우승 상금과 독특한 ‘K-시상식’ 문화를 선보이며 박정환 9단의 우승과 함께 화려한 막을 내렸다. 준우승을 차지한 왕싱하오 9단에게는 1억 원의 상금이 수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