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기 영업이익, 지난해 연간 수치 웃돌며 주목…TSMC·하이닉스에 테슬라까지 참전 ‘각축전’

삼성전자는 지난 4월 7일 올해 1분기 매출 약 133조 원과 영업이익 약 57조 2000억 원의 잠정실적을 발표했다. 1개 분기 이익이 2025년 연간 영업이익인 43조 6000억 원도 웃도는 수준이다. 전사 매출 규모만 놓고 보면 엔비디아와 비교될 만큼 외형이 커졌다. 엔비디아 올해 1분기 매출 전망은 789억 달러(약 115조 원)다. 다만 삼성전자는 스마트폰과 가전, 디스플레이를 포함한 종합 전자기업이고 엔비디아는 AI 칩 중심 기업이어서 단순 매출 비교로 우열을 가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번 호실적의 배경으로 고부가 메모리 반도체 판매 확대와 가격 상승이 꼽힌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HBM과 서버용 D램, 기업용 SSD 수요를 밀어 올렸고 HBM 비중이 커지면서 범용 D램 공급이 줄어 가격이 뛰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동일한 생산 캐파에서 HBM용 적층 D램 비중이 커지면 범용 D램 공급은 줄 수밖에 없고 공급이 줄면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며 “HBM의 공급 확대와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이 동시에 실적을 끌어올린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AI 반도체 수요가 아직 시작 단계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엔비디아가 지난해 4분기 매출 681억 달러(약 100조 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에도 역대급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연간 매출 177조 원, 순이익 80조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한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는 올해에도 매출이 30%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BM 부문에서 삼성전자와 경쟁하는 SK하이닉스도 AI 메모리 호황의 핵심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SK하이닉스는 2025년 연간 매출 97조 1467억 원과 영업이익 47조 2063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이익 면에서 삼성전자를 넘어섰다. 삼성전자가 HBM과 범용 메모리 가격 상승 수혜를 누리는 동안 SK하이닉스 역시 HBM 중심의 AI 메모리 수요 확대에 힘입어 실적을 크게 끌어올린 셈이다.
HBM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HBM은 복수의 D램을 수직 적층하고 가장 밑에 있는 베이스 다이와 함께 연결해야 하는 복잡한 구조여서 설계와 수율 확보 난도가 높다. 이병훈 포항공대 교수는 “적층 기술은 하이닉스가 강점이 있지만 베이스 다이 쪽은 삼성 측이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HBM4의 경우 후발주자인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납품이 먼저 확정되면서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 AI 칩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HBM의 고객사 확보 경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규모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2025년 세계 반도체 매출이 7917억 달러로 전년보다 25.6% 늘어난 데 이어 올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매출이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도 2026년 시장 규모가 9750억 달러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테슬라는 지난 3월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 로봇공학, AI, 우주 데이터센터용 칩을 자체 생산하기 위해 첨단 칩 공장을 짓는 ‘테라팹’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반도체 공급업체들의 최선의 생산 시나리오로도 향후 자사 수요를 거의 충족하지 못한다며 자체 생산 필요성을 강조했다. 테라팹의 목표는 연간 1테라와트(TW) 규모의 컴퓨팅 파워를 지원하는 전용 칩 생산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삼성전자에 중장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종환 교수는 “자체 생산을 통해 공급망 병목현상을 해소하겠다는 움직임인데 실제로 수율을 잡고 양산에 성공하게 된다면 상당히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테슬라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뒤따를 테니 미리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AI 반도체는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군사적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 모두 자국의 고부가가치 반도체 생산라인 확대와 경쟁력 확보를 더 중요하게 보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미국은 ‘칩스법(CHIPS and Science Act)’을 바탕으로 생산기지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SIA는 2032년까지 미국 반도체 제조 능력이 전세계 1위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연합(EU)도 ‘유로 칩스법(European Chips Act)’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메모리 호황이 이어지더라도 미국과 유럽의 생산기지 확대 경쟁을 외면할 수 없는 셈이다.
파운드리 부문에서 경쟁하는 TSMC와 삼성전자의 격차도 여전히 뚜렷하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가 70.4%, 삼성전자가 7.1%다. AI 반도체 경쟁에서 이 격차가 중요한 이유는 고성능 메모리만으로는 칩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시키는 단계에서는 HBM이 핵심이지만 학습된 내용을 실제로 연산하고 추론하는 단계에서는 GPU·ASIC 같은 로직 반도체가 필요하다. 이 로직 반도체를 첨단 공정을 통해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바로 파운드리 경쟁력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여기서 두 개의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 하나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2나노 같은 첨단 공정의 수율과 품질 신뢰를 높이는 일이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2나노 공정 수율은 극비라 외부에서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엑시노스를 갤럭시에 탑재한 만큼 어느 정도 안정화 단계에는 들어선 것으로 본다”며 “다만 발열 문제는 여전히 쉽게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HBM 수율 경쟁이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 공급 기대감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후발주자인 만큼 SK하이닉스와의 경쟁에서 양산 수율과 고객 확대 속도를 입증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황기지만 경계심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반도체업계 다른 관계자는 “이럴 때가 가장 위험할 때다. 장사가 잘되면 정신없이 만들어서 팔기에 바쁜 나머지 개발에 쓸 자원이 없어진다”며 “벌써 연구진들 사이에서 웨이퍼가 없어 실험을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후발 주자들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방심하지 말고 초격차를 더 벌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호 고려대 휴먼인스파이어드 AI연구원 연구교수는 “경쟁사가 축적해온 노하우는 쉽게 가져올 수 없고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도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며 “당분간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지금처럼 투자 여력이 있고 과감하게 쏟아부을 수 있는 상황은 삼성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