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태 계속된다면 해체해도 상관 없어…정치인 낙하산 오는 순간 중립은 불가능”

국정원이 갖은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국정원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 작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국정원을 개혁하겠다며 국내 정보 수집 업무를 금지하는 등 권한을 대폭 줄였다. 국정원이 식물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도 국정원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국정원이 정보기관으로서 위상을 재정립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 걸까. 일요신문은 김연창 전 국정원 정보판단실장(1급)을 만나 국정원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물었다. 김 전 실장은 1979년 중앙정보부(현 국정원)에 입사해 2008년까지 국정원에서 30년 가까이 일했다. 2011년부터 2018년까지 대구시 경제부시장을 지냈다.
김 전 실장 인터뷰는 두 차례에 걸쳐 총 4시간가량 진행됐다. 첫 번째 인터뷰는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김 전 실장은 1955년생이다. 70대에 접어든 나이가 무색하게 인터뷰 내내 눈빛이 형형했다. 발언도 거침없었다. 비판 강도는 높았다. 그저 날 선 말은 아니었다.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김 전 실장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국정원의 현재 모습을 어떻게 보나.
“국정원이 지금 뭘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만나본 전직 간부들도 100% 동의한다. 지금 상태가 계속된다면 국정원을 해체해도 상관없을 정도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을 휘저었다. 전임 국정원장을 구속시키고 간부들도 정치재판으로 내몰았다. 대공수사권과 국내 정보 수집도 폐지했다. 두 가지를 빼면 국정원 존재 이유는 없어진다. 국가안보를 유지하는 정보기관을 무너뜨린 거다.”
―국정원장이 외부 인사로 임명되다 보니 정치적 외풍에 더 시달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정치인이 낙하산으로 오는 순간 국정원은 중립적으로 갈 수 없다. 국정원은 상명하복이 강하다. 검찰총장, 경찰청장은 외부에서 임명하지 않는다. 국정원장은 왜 정치인이 하는 건가. 국정원도 검찰, 경찰처럼 내부 전문 인력에게 맡겨야 한다. 정치적 외풍에 따라 국정원이 좌지우지되는 악습과 완전히 절연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나름 노력 했는데 이명박 정부 때 원세훈 국정원장이 오면서 또 흔들렸다.”
―경찰로 넘어간 대공수사권을 국정원이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하나.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없앤 건 간첩을 잡지 말라는 거다. 대공수사권은 일반 국민과 전혀 무관하다. 오로지 간첩과 북한 추종자에게만 적용된다. 국정원에서 대공수사를 담당한 사람은 대학 졸업하고 국정원에 들어가서 퇴직할 때까지 평생 대공수사만 했다. 국정원에선 30년 동안 간첩 한 명만 잡아도 된다. 그런데 경찰은 순환보직이 원칙이다. 인사 평가를 잘 받으려면 단기 성과도 내야 한다. 경찰에서 누가 대공수사를 맡으려 하겠나. 북한의 위협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적어도 한 기관은 간첩을 지켜봐야 한다.”
―과거 국정원의 국내 정보 수집을 통한 폐해들이 드러난 바 있다. 그럼에도 국정원이 다시 국내 정보 수집을 해야 한다고 보나.
“이제 국내 정보와 해외 정보를 분리할 수 없다. 작은 텀블러조차 생산 과정에서 여러 나라를 거친다. 국내와 해외를 분리하는 순간 죽은 정보다. 국가 정보기관의 업무 영역은 한계가 없어야 한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알아야 하는 정보는 다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단, 절대로 특정 대통령에게 충성해선 안 된다. 국민이 어떤 대통령을 선택하더라도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보좌해야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12·3 계엄 같은 엉터리 짓을 한 것도 국내 정보가 없어서 상황을 오판했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대공수사권과 국내 정보 수집 기능을 악용해서 국내 정치에 개입하고 민간인을 사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일부 요원의 일탈 케이스다. 국정원의 근본이 아니었다. 국정원 요원 대부분은 정치와 아무 상관 없이 자긍심을 갖고 국가를 위해 일했다. 정권의 개노릇을 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기능과 업무를 정확하게 규정하고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무소불위니 월권이니 하는 쓸데없는 시비를 방지할 수 있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일이 최우선이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북한의 위협을 잊고 살아간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일본과 미국과 달리 우리는 별로 신경을 안 쓴다. 북한에 대응하는 정보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헌법 정신을 수호하는 일도 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토대로 강한 대한민국 만드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대한민국 가치를 지키는 조직은 필요하다.”
―국정원이 지켜야 할 대한민국의 가치는 무엇인가.
“사회적 논의를 해야 한다. 대한민국 핵심 가치를 연구할 조직도 필요하다. 지금은 의견이 극과 극이다.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생각 차이가 크다. 독일 헌법보호청이 좋은 모델이다. 독일은 국민이 지켜야 할 원칙 10가지를 어릴 때부터 교육한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원은 어떻게 평가하나.
“윤석열 정부 때처럼 내부 갈등이 노출되지 않는 건 바람직하다. 이종석 원장이 특보를 국정원 내부에서 발탁한 것도 탁월한 선택이다. 그러나 지난 정부와 관련된 사람을 숙청하는 등 진정한 통합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편을 갈라 내부 싸움을 하는 행태는 이제 정말 끝내야 한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