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권 사채 수사 뒤 간이사업자·허위 계약서 활용 ‘작업대출’ 등장…내구제·대리입금 등 우회 수법 확산

이재명 대통령은 이 같은 변종 불법사금융에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상품권 거래를 “명백한 이자제한법 위반이자 처벌 대상”이라고 지적하며 “실제 빌린 돈에 연간 60% 이상의 이자를 붙인다면 원금조차 안 갚아도 된다”고 밝혔다. 현행 대부업법에 따르면 연 20%를 넘는 이자를 받는 행위와 제3자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는 방식의 추심은 모두 불법이다.
대통령 발언 이후 관련 수사가 본격화됐다. 5월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는 지난달 서울 동대문구 한 모텔에서 30대 여성 A 씨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관련해 상품권 예판을 빙자한 불법사금융 수사에 착수했다.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도 네이버 상품권 카페를 중심으로 활동한 업자들과 운영 구조를 수사 중이며, 현재 120곳 이상이 수사선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힘입어 상품권 예판을 통한 거래가 최근 들어 움츠러드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업자들을 고소하겠다는 움직임이 확산하는가 하면, 회원 수 5000여 명 규모의 네이버 카페가 폐쇄되는 등 관련 커뮤니티 3곳이 운영을 중단했다. 텔레그램 등 해외 메신저에서 활동하던 업자들이 잇따라 잠적했다는 후기 글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상품권 예판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취약계층이 더 위험한 변종 불법사금융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불법사채 피해자 커뮤니티 운영진은 “예판 이용자 상당수는 일정한 수입이나 상환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고 생활고나 도박 등의 이유로 소액 급전을 반복적으로 찾는다”며 “상품권 예판이 막히면 결국 다른 변종 사채가 그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로 B 씨는 최근 한 온라인 대출업자에게 급전 대출을 문의했다가 “B 씨 명의로 간이 사업자를 개설하면 제휴 업체와 계약을 맺은 뒤 계약서를 담보로 대출을 진행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가짜 사업자를 만든 뒤 사업자 대출을 받게 하는 이른바 ‘작업대출’의 변형 수법으로 보고 있다. 업자들이 사업자 등록과 허위 계약서·견적서 등을 마련한 뒤 이를 근거로 대출이나 결제를 진행하고, 실제 채무 부담은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구조다.
이와 유사한 방식인 ‘내구제 대출’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내구제 대출은 ‘나를 스스로 구제하는 대출’이라는 뜻으로 본인 명의로 휴대전화 등을 개통한 뒤 이를 업자에게 넘기고 일부 현금을 받는 수법이다. 피해자는 기기값과 통신요금, 소액결제 대금 등을 떠안게 되는데, 개통된 휴대전화나 유심이 보이스피싱 등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도 잇따른다. 청소년층 사이에서는 게임 아이템이나 공연 티켓 값을 대신 결제해준 뒤 고율 수수료를 요구하는 ‘대리 입금’도 확산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변종 불법사금융 수법에 대한 단속 강화와 더 구체적인 처벌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상품권 예판이나 내구제 대출처럼 실물 거래 형태를 띠는 신종 수법은 피해자들조차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업자들이 해외 플랫폼을 이용하고 소액 위주로 계약을 쪼개는 특성을 고려해 더 세밀한 단속·처벌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법사금융 이용자의 상환능력을 높일 수 있는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수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법사금융 근절 정책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불법사금융 이용자들의 과다 채무와 연체, 신용도 하락, 제도권 금융 이용의 어려움은 소득이 개선돼 상환능력이 제고되지 않는 이상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법사금융에 내몰린 이용자들이 안정적으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도록 고용 지원과 연계하는 등 제도를 설계해 관련 수요를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승구 기자 win9@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