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주소 이어 이용자 대상 우회접속법까지 안내…“불법 도박 광고 수익부터 차단해야”

A 씨를 뉴토끼 운영자로 지목하며 국내 송환을 요구해 온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 등 관련 단체는 이번 송환을 환영했다. 업계에서도 A 씨의 송환이 불법 유통망에 상당한 타격을 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뉴토끼를 비롯한 불법 웹툰 사이트들은 버젓이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대체 주소’부터 ‘미러 사이트’까지…더 깊어진 ‘토끼굴’

문제는 긴급차단이 특정 주소로 향하는 국내 접속만 제한할 뿐 사이트의 서버나 콘텐츠 자체를 삭제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서버와 데이터가 남아 있으면 운영자는 다른 도메인을 연결해 서비스를 다시 열 수 있다.
그간 뉴토끼 등 불법 웹툰 사이트는 도메인을 변경하는 방법으로 단속을 피해왔다. ‘newtoki1’, ‘newtoki2’처럼 브랜드명 뒤 숫자만 바꾸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뉴토끼라는 이름과 무관한 문자열로 된 주소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차단 목록을 벗어나는 데다 주소만 봐서는 어떤 사이트인지 알아보기 어렵게 해 정부의 모니터링에 포착되는 시점을 늦춘 것이다. 이렇게 바뀐 주소는 텔레그램을 통해 이용자들에게 수시로 공지됐다.
원본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콘텐츠를 별도 주소에 복제한 ‘미러 사이트’도 활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정 주소가 차단되더라도 다른 복제 사이트를 통해 서비스를 이어갈 수 있도록 접속 경로를 여러 갈래로 만들어 둔 것이다. 실제로 긴급차단 이후에도 일부 미러 사이트는 곧바로 차단되지 않았다.
이와 함께 콘텐츠 전송 네트워크(CDN)를 이용해 원본 서버를 감추는 방식도 사용하고 있다. CDN은 이용자와 가까운 서버에서 콘텐츠를 대신 전달해 접속 속도를 높이고 트래픽을 분산하는 기술이다. 불법 사이트가 CDN을 서버 앞 단에 두면 외부에는 원본 서버 대신 CDN 서버의 인터넷 주소가 노출된다. 이 때문에 실제 서버 위치를 추적하거나 IP 단위로 차단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이용자 끌어들인 ‘WARP’…긴급차단도 속수무책
그런데 최근 뉴토끼가 이용자들에게 안내한 ‘WARP’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새로운 주소를 알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해당 주소마저 접속되지 않을 때 이용자가 직접 자신의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사용할 수 있는 우회접속 수단까지 제시한 것이다.
국내 ISP는 불법 사이트를 차단할 때 접속 과정에서 드러나는 DNS와 SNI 정보를 활용한다. DNS는 이용자가 입력한 도메인을 실제 서버 주소로 연결하고, SNI는 HTTPS 연결 초기에 접속하려는 사이트를 알려준다. ISP는 이 정보를 차단 목록과 대조해 연결을 막는다.
그런데 WARP 기능을 켜면 이용자의 인터넷 통신이 암호화된 통로를 거쳐 글로벌 인터넷 인프라 업체인 클라우드플레어의 네트워크로 전달된다. 국내 통신망을 이용하는 것은 같지만 통신사 입장에서는 이용자가 클라우드플레어에 접속한 것까지만 보이고, 그 뒤 실제로 어느 사이트에 들어갔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환승센터까지만 승객을 태운 버스 기사가 그 승객이 이후 어느 노선으로 갈아탔는지 알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이용자가 직접 설정하는 WARP 앞에선 긴급차단 제도도 힘을 쓰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준재 한국디지털콘텐츠창작자협회 AI 리서치 엔지니어는 “뉴토끼가 이용자들에게 ‘1.1.1.1 WARP’ 사용법을 안내한 상황에서는 현재의 DNS·SNI 기반 긴급차단도 사실상 무력화된다”며 “이런 방법은 기존 VPN과 달리 속도 저하나 불편도 거의 없다. 긴급차단 제도만으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의 대응이 새로운 우회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지난 6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불법웹툰·불법도박 광고망·긴급차단 실효성 점검 토론회’에서 김 엔지니어가 WARP 기술과 이를 이용한 차단 우회 사례를 알고 있는지 묻자 문체부 관계자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 했다.
이날 문체부 관계자는 불법 웹툰 사이트 대응 방안과 관련해 “불법 사이트 자동 탐지 기능과 대체 사이트 감시·채증 기술을 강화하고 있다”며 “국내로 송환한 범죄 혐의자 A 씨에 대해선 그간의 범죄 혐의를 철저히 밝혀 상응하는 법적 처분을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밤토끼에서 뉴토끼로…잡힐수록 진화하는 기술

그러나 공백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루마루 폐쇄 뒤에는 기존 운영진과 별개의 인물이 사이트의 인지도를 이용해 ‘마루마루2’를 만들었다. 운영자가 검거돼도 무료 콘텐츠를 찾는 이용자와 광고 수요가 남아 있으면 다른 운영자가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단속이 이어지는 동안 불법 사이트의 차단 회피 방식도 고도화됐다. 밤토끼와 마루마루 등 1세대 사이트가 해외 서버와 대체 도메인, 링크 사이트와 저장 서버의 분리 등을 활용했다면, 뉴토끼로 대표되는 2세대는 기존 수법에 미러 사이트와 실시간 주소 배포, 이용자 대상 우회접속 안내까지 더했다. 단속을 받을 때마다 새로운 회피 수단을 덧붙여온 셈이다.
#잡아도 잡아도 생기는 불법 웹툰…“핵심은 돈줄 끊는 것”

이원상 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불법 웹툰 사이트들은 이미 개인이 아닌 회사 단위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수장 한 명을 검거한다고 전체가 멈추지는 않는다. 콘텐츠와 서버, 광고, 자금 관리가 나뉜 조직 형태로 움직이는 만큼 지능화된 조직범죄 생태계로 이어지는 관문으로 봐야 한다”며 “민사상 저작권 분쟁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형사범죄로 보고 수사와 범죄수익 환수까지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법 사이트가 반복해서 되살아나는 배경에는 강력한 경제적 유인이 자리 잡고 있다. 무료 콘텐츠로 이용자를 끌어모아 불법 도박·카지노 광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불법 웹툰 사이트 차단과 재개설의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시민단체 도박없는학교의 조호연 교장은 “사이트 하나가 폐쇄돼도 후발 주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불법 웹툰 시장의 생태계다. 핵심은 돈의 흐름을 쫓아 돈줄을 끊는 것”이라며 “운영자를 검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법 도박 광고 수익이 유입되는 구조 자체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