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무기간에 학교 다닌 것 자체가 의문, 구금 30일은 영창 처분 아닌 형사 사건”…국방부 “명백한 허위”

안규백 국방부 장관을 둘러싼 탈영 의혹에서 주목받은 서류는 ‘학적기록부’였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이 안 장관 인사청문회 당시 성균관대로부터 받은 자료였다. 안 장관의 군복무 기간은 1983년 11월 5일부터 1985년 8월 31일까지였다. 당시 방위병 복무기간은 14개월이었는데, 안 장관은 8개월 더 군복무를 했다.
한기호 의원은 이를 공개하며 “입대 당시 군복무 기간이 1983년 11월 5일부터 1985년 1월 4일까지로 돼 있으니 실제로 복학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면서 “(학적기록부 내용은) 학교를 제대로 안 다녔든가 군 복무를 제대로 안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장복무와 관련해 안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어머니가 부대원들에게 점심을 제공한 사건과 관련해 헌병인지 기무(보안)인지 수사를 받았고 조사 기간이 복무기간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그해(1985년) 6월에 ‘며칠 더 근무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방학 때 며칠 더 군부대에 복무를 하고 도장을 찍고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군복무 기간 중 학교를 다녔다는 증거로 꼽히는 안 장관 학적기록부는 ‘탈영 의혹’ 타임라인에서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대목이다. 안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최초 1985년 1월 4일 제대를 했다는 것을 확증을 받고, 그 이후에는 받은 바가 없다”면서 “학적기록이 나와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학적기록을 ‘탈영 의혹’ 규명을 위한 주요 알리바이로 내민 셈이다.

“지금까지 문제를 제기해온 1차 탈영의 경우 예비군 면대장의 묵인에 따른 사건이 군 방첩 및 수사기관 등에 감지된 케이스다. 신분상 방위병이 복무지에서 먼 거리 떨어져 있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사단급에서 묵인한, 발각되지 않은 2차 탈영의 정황이다. 2차 탈영에 당시엔 대놓고 학교를 다니며, 발각되지 않은 상태로 8월 31일 전역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소장은 “사단급 부대가 특정 방위병 미출근에 대해 눈을 감으면 관리를 하는 면대장 또한 눈을 감을 수밖에 없고, 헌병이나 보안대가 다시 수사를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전직 군 관계자는 “전북 소재 방위병이 복무 중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니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면서 “탈영이 사건화되면서 늘어난 7개월 복무기간과 관련해 주먹구구식 특혜를 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발각이 되지 않았고, 사건화되지 않았다면 그것이 병무행정의 착오일 것”이라면서 “사건화가 되지 않았다면 ‘2차 탈영’이라고 명확히 이야기하기도 어렵지만, ‘2차 탈영이 아니다’라고도 하기 애매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안 장관이 군복무할 당시 소속부대였던 제35보병사단에서 소집해제일이 예정된 것보다 늦어진 사례는 총 6건으로 이중 5건의 사유가 군무이탈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면서 “나머지 1명은 질병으로 인해 소집해제가 늘어났다”고 했다.

옛 병역법 시행령 제40조(방위병의 복무기간 등) 제1항은 ‘법 제25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방위병의 복무기간은 14개월로 한다’고 명시했다. 다만 전·공상이 아닌 병가일수는 제외한다는 전제다. 군무이탈, 징역, 금고, 구류 등 처분이나 질병이 아니라면 방위병의 복무일수가 늘어날 수 없다는 게 김 소장 주장이다.
김 소장은 “안 장관이 복무할 당시 병무청엔 재소집의 근거가 될 만한 법령이 아예 없었다”면서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재소집을 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했다.
김 소장은 “재소집한 사례가 없는데, 복무기간 중 학교를 다녔다면 안 장관의 복학 자체가 ‘재탈영’의 증거라는 것”이라면서 “소집해제 후 재소집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군인 신분으로 학교를 다닌 기간 자체가 명백한 재탈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소장은 “안 장관은 행정착오라고 주장하지만, 이건 행정착오가 아니다”라면서 “안 장관이 병적기록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도 ‘행정착오’를 병적기록으로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1985년 8월 31일까지 안 장관이 민간인 신분인 적은 없었을 것이다. 학교를 복학했다고 하면 안 장관에 대한 예비군 편성 기록이 존재하게 돼 있다. 소집해제자는 예비군 명부에 이름이 올라가기 때문”이라면서 “그 명부에 안 장관 이름이 없다면 안 장관은 민간인이 된 적이 없다는 의미다. 안 장관이 병적기록이 아니라 예비군 편입 자료만 제출해도 의혹은 해소될 수 있다”고 했다.
#“기소유예가 됐다면, 구금 30일을 행정 처분으로 볼 수 없어”
안규백 장관 병적기록엔 ‘구금 30일’이 기재돼 있다. 이에 대해 김영수 소장은 “안 장관은 군무이탈과 관련해 사단 헌병대 수사를 받은 것”이라면서 “군법회의법(현행 군사법원법)에 보면 헌병과 군검찰이 최대로 구금할 수 있는 일수가 30일”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안 장관의 경우 구금 이후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케이스로 볼 수 있다”면서 “구금 30일이라는 이력 자체가 군검찰로 송치된 정황 증거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안 장관이 방위병 복무 당시 약 7개월가량 군무이탈을 했다고 본다. 김 소장은 “군무이탈 사건은 결론이 세 가지로 요약된다”면서 “불기소, 기소, 기소유예”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해당 사건은 헌병(군사경찰)에서 조사를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군무이탈 혐의에 대해 헌병이 수사를 하게 되면 불기소를 하기는 어렵다”면서 주장을 이어갔다.
“7개월 군무 이탈이면 군형법 상 최소 3년 이상의 실형을 받는 것이 통상적이다. 이 정도 기간의 군무이탈이 발생했다면, 집행유예를 받을 수도 없다. 그러면 범죄 기록이 남게 되는데, 이 경우엔 학교도 다닐 수 없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바로 앞서 언급한 기소유예다. 안 장관이 군무이탈을 했음에도, 사건이 재판으로 넘겨지지 않은 셈이다.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었던 이면엔 당시 35사단 보안대장과 헌병대장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 소장은 “쉽게 말하면 사단에서 발생한 방위병 군무이탈 건은 보안대장과 헌병대장이 마음먹으면 봐줄 수 있었던 것이 당시 시대상”이라면서 “1980년대엔 군검찰이 보안대 소속 중사한테도 불려갈 정도로 보안대(방첩대) 힘이 강했다”고 했다. 김 소장은 “군검사가 힘이 없는 상황에서 보안대가 시키는 대로 하면, 기소를 해야 하는 사건에도 기소유예를 할 수 있었던 것이 1980년대”라고 했다.
김 소장은 안 장관의 ‘구금 30일’이 영창 처분이 아닌, 수사 단계에서의 구금이라는 취지로 주장했다. 김 소장은 “안 장관 케이스는 부대에서 영창처분을 받은 징계가 아니다”라며 “영창을 가는 것은 형사 사건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고, 징계에 따른 행정 처분이다. 그런데 기소유예가 됐다면, 해당 구금 30일을 행정 처분으로 볼 수 없다. 이것은 징계가 아니다. 군검찰로 넘어갔던 형사 사건”이라고 했다.
# 국방부 “1985년 1윌 4일 제대”…병무청 “자료 부존재”

7월 21일 정빛나 국방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헌병대 수사결과 보고서와 구금 인사명령, 군 판사의 체포영장 기록 등의 자료는 부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여러 의원실에서 실제로 요청한 자료의 존재 여부를 관련 기관에서 확인했고, 부존재한다는 회신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984~1985년 기간 중 병무청에서 육군 제35보병사단 소속의 방위병에 대해 소집해제 후 재소집 결정 통보를 한 사례가 있었는지’ 여부를 묻는 질의에 병무청은 “해당 자료는 부존재해 확인이 곤란하다”고 답변했다.

김영수 소장에게 ‘탈영 의혹 제기와 관련해 국방부 혹은 안규백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피고소·고발된 사실이 있는지’ 묻자 “현재까지(8월 5일 기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일요신문은 국방부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과 이메일을 남겼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