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숨 고르는 대신 순환매…‘삼전닉스’ 다시 상승 주도…증시 전반 유동성 확산 가능성도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8월 14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2.42% 오른 6977.94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는 이날까지 4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준영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코스피가 저점을 단계적으로 높이면서 바닥을 확인하는 안정화 과정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코스피의 변동성도 완화되는 모습이다. 최근 코스피의 전 거래일 대비 종가 등락률은 8월 10일 0.65%, 11일 0.73%, 12일 3.68%, 13일 3.56%를 기록했다. 하루 등락률이 최대 3%대로 낮아진 셈이다.
지난 7월과 비교하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당시 코스피의 하루 평균 등락폭은 종가 기준 5.38%에 달했다. 전체 22거래일 가운데 절반인 11거래일에서 등락폭이 5%를 웃돌았다. 특히 7월 31일에는 17.91% 급등했고 28일에는 13.84% 상승했다. 13일에는 10.90% 급락하는 등 한 달 동안 세 차례나 10%가 넘는 등락률을 기록했다. 18%에 육박한 31일 상승률은 코스피 역사상 처음이었다.
지수가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시장의 공포심리도 크게 높아졌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코스피200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VKOSPI는 지난 6월 29일 96.94까지 치솟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코스피 변동성이 커진 배경 가운데 하나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높은 의존도가 꼽힌다. 지난 13일 종가 기준 두 회사가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9%에 달했다. 두 종목의 움직임만으로도 지수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구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고점을 찍은 뒤 조정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6월 19일 장중 37만 4500원까지 올랐지만 8월 14일 종가는 27만 4500원으로 낮아졌다. SK하이닉스도 6월 25일 298만 7000원까지 상승한 뒤 급등락을 거듭했고, 8월 14일에는 고점보다 47.3% 낮은 164만 5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두 종목의 조정과 함께 시장 거래 규모도 감소했다. 코스피 거래량은 6월 102억 9033만 주에서 7월 95억 1254만 주로 줄었다. 같은 기간 거래대금은 1057조 2898억 원에서 811조 2596억 원으로 감소했다. 7월 거래일이 6월보다 하루 적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시장의 거래 열기가 식은 모습이다.
시장 과열이 진정되면서 변동성 지표도 고점에서 크게 내려왔다. VKOSPI는 14일 55.31을 기록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6월 말 고점과 비교하면 상당 폭 낮아졌다.
눈에 띄는 점은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외의 종목에서 상승세가 확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도체 대형주와 다른 성격의 실적주에도 매수세가 유입됐다. 2분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한 두산에너빌리티는 7월 31일 6만 7100원이던 주가가 8월 13일 8만 900원까지 상승했다.
AI 관련 종목 가운데서는 삼성전기가 강세를 보였다. 모건스탠리가 12일 삼성전기를 최선호주로 선정하고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13일 주가는 기존 143만 2000원에서 150만 3000원으로 12.58% 급등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됐던 자금이 실적 개선 가능성이 있는 다른 종목이나 조선·전력 등으로 이동하는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최서환 리서치알음 대표는 “반도체주의 최근 반등은 앞선 낙폭에 따른 기술적 회복 성격이다”라면서 “다른 업종으로 유동성이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종민 삼성증권 연구원도 “코스피의 종목 집중도가 이전보다 완화되고 있다”면서 “대형주가 쉬어가는 동안 코스닥을 비롯한 다른 종목으로 상승 온기가 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반도체를 대신할 새로운 주도주가 등장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신중한 시각을 나타냈다.
반도체의 역할이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상승을 이끌었던 근거가 단순한 기대가 아니라 실적 개선이었다는 점에서 이익 성장세가 유지될 경우 다시 두 종목으로 자금이 몰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내 증시에서 기존 주도주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삼성전기 등 AI 밸류체인 종목의 반등이 코스피의 기술적 강세 흐름을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향후 반도체주가 다시 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전과 다른 재료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나온다. 상반기에는 반도체 업체들의 이익 성장성이 시장의 주요 관심사였다면 최근에는 벌어들인 이익을 주주와 어떻게 나눌지가 새로운 평가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차이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 흐름에서도 나타났다. 지난 11일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4.13% 상승한 반면 SK하이닉스는 0.35% 오르는 데 그쳤다. 시장에서는 두 회사의 주주환원에 대한 기대 차이가 주가 흐름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삼성전자는 향후 100조~200조 원 규모의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이 시장에서 거론되는 반면 SK하이닉스는 구체적인 주주환원 방향이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도체 업체들의 실적뿐 아니라 주주환원 정책이 향후 주가를 결정하는 변수로 부상한 셈이다.
결국 코스피 앞에는 크게 세 가지 경로가 놓여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조정이 이어지면서 다른 업종으로 순환매가 확산되는 경우, 반도체가 다시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오는 경우, 반도체와 그동안 상승에서 소외됐던 종목이 함께 오르며 시장 전체가 균형을 찾아가는 경우다.
시장에서는 세 번째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조정 과정에서 가격 부담이 낮아진 종목을 중심으로 순환매가 반복됐다”면서 “향후 반도체에만 자금이 집중되기보다 시장 전반으로 유동성이 확산되면서 종목별 옥석 가리기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박호민 기자 donky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