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당국 작성 ‘러시아 마피아 활동 문건’ 단독 입수…장 회장, 합법 사업가 행세하며 도박·사채 관여 의혹
[편집자주]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고려인 사업가 '장 회장'과 수감 중인 옛 동업자 '박 안톤'(가명). 이들은 한때 식품사업을 함께한 평범한 동업자로 보였다. 이후 두 사람 관계는 틀어져 법적 소송전을 벌였다. 그런데 두 사람 관계를 되짚어가면 △러시아 마피아 유착 △총기 은닉 △범죄 피의자 밀항 △자금세탁 △현직 경찰관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 등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힘든 의혹과 사건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일요신문은 안톤의 진술과 통화 녹취 및 휴대전화 메시지, 금융 관련 자료, 사정당국 작성 문건 등을 토대로 ‘장 회장-박 안톤’ 두 사람 주변에서 2020년부터 벌어진 사건과 의혹 전말을 서울과 부산, 김해 등지에서 9개월 동안 추적했다.
[연재 순서][일요신문] 정부는 국내 러시아 마피아의 실체를 어디까지 파악하고 있을까. 일요신문은 사정당국이 작성한 ‘국내 러시아 마피아 활동 사항’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이 문건에는 국내 러시아 마피아 세력의 조직 변화와 주요 인물, 계보도가 담겨 있었다. 사정당국은 2020년 김해 고려인 집단 난투극 이후 재편된 국내 러시아 마피아 세력의 수괴로 ‘장 회장’을 지목했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①] 총기와 밀항, 그리고 돈세탁
[마피아의 심부름꾼 ②] 2020년 고려인 난투극, 사라진 한 사람
[마피아의 심부름꾼 ③] "술 상자에 돈 넣어 경찰에 바쳤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④] 난투극 도망자 밀항, 경찰관은 알고 있었다…녹취 속 그날 대화
[마피아의 심부름꾼 ⑤] 은행서 막힌 수십만 달러, 주인은 누구?
[마피아의 심부름꾼 ⑥] 고려인 성공신화 장 회장, 은둔하는 까닭
[마피아의 심부름꾼 ⑦] 대게 수입 독점 '대게왕' 검은돈 어디로…
[마피아의 심부름꾼 ⑧] 세계가 추적한 '대게왕' 한국만 몰랐다
[마피아의 심부름꾼 ⑨] “‘한국 수괴’ 장 회장은 비즈니스맨형 마피아”
#러시아 현지 마피아까지 국내 진출

사정당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2019년 이전 국내 러시아 마피아 세력은 경기 안산 중심의 ‘안산파’와 영·호남에 기반을 둔 ‘남부파’로 나뉘었다. 조직원들은 평소 생업에 종사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연락망을 통해 세력을 모았다. 사설 도박장 운영과 마약 판매, 구소련권 출신 상인을 상대로 한 보호비 갈취가 주요 수입원이었다.
2019년 초에는 러시아 모스크바 기반 범죄조직 ‘브라뜨’의 간부 ‘조로프’와 조직원들이 경남 김해와 부산에 들어왔다. 마약 수출책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기존 구소련권 범죄조직의 이권을 빼앗으며 영향력을 넓혔다. 부산과 김해, 양산 일대의 마약 판매책과 폭력배들을 집단폭행하거나 감금한 뒤 이권을 넘겨받거나 조직에 편입시켰다.
이와 관련해 당시 사정당국의 조사에 협조한 김해 거주 고려인은 브라뜨 조직원들이 기존 러시아 마약상과 폭력배를 폭행한 뒤 ‘죽고 싶지 않으면 형제가 되라’는 식으로 세력을 확장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브라뜨’는 러시아어로 형제를 뜻한다.
브라뜨 조직원들은 피해자들을 감금·폭행해 범죄 사실이 한동안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말 울산에서 마약상으로 활동하던 한 조직원의 여자친구가 경찰에 이들의 범죄 사실을 신고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조직원 10여 명이 검거되면서 러시아 현지 조직의 국내 세력 확장도 일시 중단된 것이다.
브라뜨는 한국 내 이권을 쉽게 포기하진 않았다. 2020년 브라뜨는 조직원 알렉산드르 밀레닌을 부산·김해 지역에 급파했다. 앞서 일요신문이 보도한 김해 고려인 집단 난투극의 핵심 인물, 별칭 ‘사샤’다. 한국으로 넘어온 밀레닌은 도박과 마약 판매 등 불법 이권사업에 관여하면서 김해와 부산, 대구, 광주 등 기존 남부파를 러시아 현지 조직과 연결된 세력으로 재편했다.
사정당국은 안산파를 국내에서 형성된 ‘자생 마피아 세력’으로, 밀레닌이 이끄는 남부파를 ‘러시아 파견 조직’으로 구분하고 밀레닌을 브라뜨의 한국 수괴이자 남부파의 두목으로 지목했다.
사실상 국내에서 가장 큰 러시아 마피아 세력이었던 두 조직은 2020년 6월 안산파가 남부파가 관리하는 김해 도박장을 급습하면서 크게 충돌했다. 안산파 37명과 남부파 27명 등 64명이 한 주차장에 모여 흉기와 야구방망이 등을 들고 난투극을 벌였다. 당시 경찰은 64명 중 밀레닌을 제외한 63명을 검거했다.
앞서 장 회장의 옛 동업자 박 안톤(가명)은 일요신문에 “밀레닌은 장 회장의 지시로 러시아로 밀항했다”고 제보했다. 사정당국도 밀레닌의 행방에 대해 ‘조직의 도움을 받아 유일하게 러시아 현지로 밀항, 현재 모스크바에 체류 중’으로 파악하고 이를 문건에 적시했다.
#김해 집단 난투극 뒤 조직 재편

사정당국은 2021년부터 올레크 칸이 자금을 대고, 그의 부하인 우즈베키스탄 전직 경찰관 루돌프 박이 안산파와 남부파의 통합 실무를 맡았다고 파악했다. 당시 러시아 당국의 수배를 피해 도피 중이던 칸은 러시아 내 자산까지 동결되자 해외에서 부정축적한 자산을 한국으로 빼돌려 부와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을 결성했다는 것이다. 다음은 문건에 담긴 고려인 협조자의 증언 내용이다.
“올레크 칸은 약 20년간 수산물을 수출하여 6000억 원의 재산을 이른바 ‘텍스 헤븐(조세피난처)’ 지역인 네덜란드 법인에 쌓아놓고 있는데, 러시아 수사기관의 수사망이 좁혀오고 재산을 환수당할 위기에 처하자 경남·부산 지역 부동산을 차명으로 매입하여 재산을 빼돌리고 있다.”문건에 따르면 올레크 칸은 2021년 말 자신이 신뢰하는 측근인 장 회장을 한국 마피아 세력의 수괴로 지명했다. 문건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러시아 마피아 올렉 강(올레크 칸) 일당 계보도’도 나온다. 계보도 최상단에는 두목인 올레크 칸이 자리한다. 그 아래에는 ‘한국 수괴’로 지목된 장 회장과 국내 부동산 매입 담당자, 올레크 칸의 아들 등 3명이 등장한다.
#기부 통해 건실한 사업가 이미지 구축

비즈니스맨형 마피아는 러시아 범죄학자 오브친스키가 나눈 현대 러시아 마피아의 다섯 유형 가운데 하나로, 외형상 합법적인 사업을 운영하면서 도박과 고리대출, 문서위조 등으로 범죄수익을 얻는 유형을 뜻한다. 이들이 조직을 운영하는 유일한 목적은 ‘막대한 부 축적’이다.
경찰관 출신인 루돌프 박은 2020년 김해 난투극을 통해 한국 경찰의 수사력을 경험한 뒤 ‘CCTV 사각지대에서만 활동’과 ‘한국 휴대전화 사용 금지’라는 두 가지 원칙을 지키며 활동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레크 칸 일당은 꾸준한 지역 기부를 통해 대외적으로 건실한 재외동포 사업가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도 힘썼던 것으로 보인다. 문건에 따르면 칸 일당은 경남 김해 소재 고아원 등에 정기적으로 성금과 선물을 기부했다. 심지어 ‘러시아 사법당국의 수사를 피해 도피 중인 상황에서도 부산 지역 매체에 코로나19 지원 성금으로 10만 달러를 기탁하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는 내용도 등장한다.
올레크 칸은 장 회장을 통해 각종 이권에도 개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사할린 출신의 고려인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장 회장은 김해에서 식품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당국은 장 회장이 겉으로 보기엔 건실한 사업가처럼 보이지만 “공장은 위장일 뿐, 실제로는 칸의 해외 자산을 차명으로 관리하기 위한 기지”라는 제보자의 증언도 확보했다.
사정당국은 장 회장이 온라인 포커 앱 ‘PP포커’와 연계된 불법 도박 및 고리 사채업에 관여했을 것으로 의심했다. 온라인 도박을 통해 외국인들을 끌어들인 뒤 돈을 잃은 사람들에게 불법 채권 추심을 하고 일부를 범죄 중간책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이다. 당국은 장 회장이 측근 명의로 계좌를 개설해 도박자금을 융통한 것으로도 추정했다.
한편 장 회장 측은 일요신문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러시아 마피아 유착, 총기 은닉, 밀항, 자금세탁, 경찰관 금품 전달 등 의혹에 대해 “금시초문”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장 회장이 운영 중인 회사 관계자는 옛 동업자인 박 안톤(가명)을 거론하며 “우리는 그 사람(안톤)과 어떤 방식으로든 엮이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최희주·김지영·주현웅·남경식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