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드라마 주역으로 사랑받고 유머 열풍까지…아동·청소년 후원에 헌신, 허리디스크 수술 후 재활 치료 중 영면

1939년 인천에서 태어난 최불암은 서울 중앙고등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당초 배우보다 연출가를 꿈꿨으나 1959년 극단 실험극회에서 연극 '햄릿' 무대에 오른 것을 계기로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1965년 국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며 연기력을 다졌고 1967년에는 서울중앙방송(현 KBS) 특채 6기 탤런트로 선발되면서 본격적으로 안방극장에 발을 들였다.
최불암을 널리 알린 작품은 1971년 첫 방송된 MBC 드라마 '수사반장'이었다. 박영한 반장을 맡은 그는 원칙과 신념을 지키는 강직한 수사관의 모습과 함께 인간적인 고뇌와 따뜻함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89년까지 약 18년간 방송된 이 작품은 한국형 수사드라마의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으며, 동시에 최불암에게는 '영원한 수사반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남겼다.
1980년 시작된 MBC 드라마 '전원일기'도 최불암의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환점이다. 그는 양촌리 대가족의 가장인 김 회장을 맡아 2002년 종영까지 22년 동안 출연했다.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부터 농촌 공동체의 일상까지 폭넓게 다룬 이 작품에서 최불암은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다정한 가장의 모습을 보여주며 지금까지도 그를 수식하는 '국민 아버지'라는 호칭까지 얻었다.

최불암 역시 이러한 유행을 유쾌하게 받아들였다. 1998년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최불암 시리즈'를 활용한 코미디에 직접 출연하는가 하면, 유머집 출간에 대한 출판사 세 곳의 요청도 흔쾌히 허락했다. 2008년 한 팬미팅에서는 학생들이 입시 부담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간을 허락했다고 설명했다.
대표작 외에도 최불암은 '제1공화국'(1981), '제2공화국'(1989)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기했고, '여명의 눈동자'(1991), '그대 그리고 나'(1997), '영웅시대'(2004), '궁'(2006), '식객'(2008) 등 시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했다. 스크린에서도 '영자의 전성시대'(1975), '최후의 증인'(1980), '길소뜸'(1985),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등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수상 경력 역시 폭넓다. 1969년 연극 '환절기'로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고 1973년 '수사반장'으로 한국방송대상 남자연기상, 1979년 영화 '달려라 만석아'로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며 오랜 세월 한국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한때 정치권에서 활동한 이력도 있다. 1992년 통일국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제14대 국회에 입성해 4년간 의정활동을 펼쳤으며 1996년 정계를 떠난 뒤에는 배우 활동에 집중하는 한편 방송 진행자로도 영역을 넓혔다. 1999년부터 KBS '좋은나라 운동본부'에 출연했고 2011년에는 그의 대표 방송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의 첫 진행자로 나서 전국 각지의 음식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2011년 첫 방송부터 2025년까지 14년 동안 '한국인의 밥상'을 지킨 그는 지난해 한국방송대상 진행자상을 수상했다.

물론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8년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로 25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해 화제를 모았고, 2024년에는 MBC '수사반장 1958' 첫 회에 특별출연해 노년의 박영한 반장을 다시 연기했다. 1971년 처음 맡았던 배역으로 50여 년 만에 시청자들과 재회한 이 작품은 고인의 마지막 드라마 출연작으로 남았다.
2025년 허리디스크 수술 이후 건강 회복에 전념하면서 공개 활동도 크게 줄었다. 올해 5월 MBC는 그의 연기 인생을 조명하는 2부작 다큐멘터리 '파하, 최불암입니다'를 방송했다. 당초 제작진은 최불암의 직접 출연을 위해 촬영 일정을 조율했으나, 재활 치료에 집중하고 싶다는 가족의 요청에 따라 출연이 불발됐다고 밝혔다. 지난 6월에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입원 중인 고인을 병문안했으며, 별세 전인 10월 20일에는 염수정 추기경이 최불암의 병실을 찾아 병자성사를 집전했다. 병자성사는 중병이나 노쇠로 고통받는 신자에게 위로와 평화를 기원하는 천주교 의식으로 고인은 2018년 염 추기경에게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자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으며 10월 30일 오전 10시부터 조문객을 맞았다. 최불암의 장례는 5일장이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장으로 거행된다. 황영기 초록우산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이수성·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이 장례위원으로 참여한다. 발인은 11월 2일 오전 7시로,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열리는 장례미사는 염수정 추기경이 직접 집전할 예정이다. 장지는 경기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이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