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가는 ‘만수’ 도망가는 ‘람보’
▲ 1월 27일 열린 올스타전에 앞서 매직팀 문경은 감독(오른쪽)과 드림팀 유재학 감독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KBL |
# ‘만수’ 유재학, 지고도 문경은을 놀라게 하다
SK는 그동안 프로야구 LG 트윈스를 연상케 하는 팀이었다. 스타 군단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도 성적은 늘 하위권에 머물렀다. 올 시즌은 다르다. 초반부터 압도적인 선두 행진을 달렸다. 2012-2013시즌 첫 30경기에서 무려 25승을 수확했다. 모비스는 시즌 개막을 앞두고 우승후보 0순위로 평가받았다. 양동근, 함지훈의 쌍두마차에 득점기계 문태영과 신인드래프트 1순위 가드 김시래가 가세했다. 팬들은 그들을 ‘판타스틱 4(Fantastic Four)’라 불렀다. SK는 그런 모비스를 2위로 몰아냈다. 맞대결 전적에서도 3승1패로 앞선다.
지금까지 펼쳐진 두 팀의 전쟁에서는 분명 SK가 우위에 있다. 하지만 세세하게 살펴보면 SK가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전투에서는 만 가지 수를 가졌다고 해서 ‘만수’로 불리는 유재학 감독이 오히려 한 수 위였다.
지난해 12월 20일에 벌어진 두 팀의 3라운드 맞대결. 모비스는 종료 27초를 남겨두고 56-60으로 뒤졌다. 모비스에게는 반칙작전이 필요했다. 반칙으로 끊고 자유투를 주더라도 공격 기회를 더 가져야만 역전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농구 통산 최초로 400승 고지를 밟은 유재학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파울작전 없이 정상적으로 경기를 마무리했고. 결국 58-64로 졌다. 상식을 파괴한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정규리그에서 3승3패가 되면 득실차를 계산해야 한다. 점수를 덜 주기 위해 반칙작전을 하지 않았다. 반칙작전으로는 이기기 힘든 상황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그는 패배 직전의 위기에서 더 먼 곳을 내다봤다.
이 소식을 접한 문경은 감독은 “난 순간의 성적과 경기가 중요한데, 유재학 감독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역시 플레이오프를 많이 치러본 감독은 다르다”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 1월 9일 두 팀의 시즌 4번째 대결이 펼쳐졌다. SK가 71-70으로 승리했다. 하지만 모비스는 경기 내내 올 시즌 SK가 자랑하는 3-2(앞선 수비가 3명, 뒷선에 2명) 형태의 변형 지역방어를 철저히 무너뜨렸다. 유재학 감독은 “모든 게 잘 됐다. 선수층 차이 때문에 졌다. SK는 선수들을 쉬게 해주면서 기용했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며 패배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문경은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연세대 선배이자 한때 자신의 스승이었던 유재학 감독에게 한 시즌 3번째 승리를 거둔 순간 “오늘 승리로 이제 우승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겸손을 떠나서 우승에 모든 목표를 두고 가야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대선배를 향해 발톱을 드러낸 것이다.
# 칼을 꺼낸 유재학, 질 수 없는 문경은
SK와 모비스는 정규리그 두 차례 맞대결을 남겨두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판이 펼쳐질 것이다. 모비스는 지난 28일 리그의 판도를 뒤흔들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LG가 보유한 정상급 외국인센터 로드 벤슨을 출혈 없이 영입했다. 벤슨보다 기량이 뒤처지는 커티스 위더스에 미래의 신인드래프트 지명권 한 장을 줬다. LG는 6강 포기설 논란이 불거졌고, 모비스는 전력을 크게 보강하며 SK와 진검승부를 펼칠 모든 준비를 마쳤다.
벤슨은 KBL 3년차의 베테랑으로 외국인선수 가운데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센터로 평가받는다. 지난 2시즌 동안 동부에서 활약했고 올 시즌 LG에서 경기당 13.4점, 10.3리바운드, 1.3블록슛을 기록하며 제 몫을 했다. 리카르도 라틀리프에 벤슨이 가세한 모비스의 외국인선수진은 10개 구단 최강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유일한 약점이었던 높이를 메웠다.
유재학 감독은 그동안 말로 문경은 감독을 압박해왔다. “그동안 SK의 지역방어를 어려워한 적은 없었다”, “우리가 SK에 고전하는 이유는 가동 인원이 적기 때문이다”, “SK보다 전자랜드가 더 무섭다” 등등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통산 400승 감독의 말 한마디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진한 무게감을 갖는다.
그리고 벤슨 영입으로 약점을 채우면서 SK에 정면으로 맞설 동력을 얻었다. 이제 문경은 감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시선이 쏠린다. 둘의 인연은 남다르다. 문경은의 연세대 재학 당시 코치가 유재학이었고 프로에서도 감독과 선수로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코트에서 양보는 없다. 문경은 감독은 팀이 초반부터 선두로 나설 때도 “우리는 강팀이다”는 말을 아껴왔다. 선배 사령탑들 앞에서 최대한 겸손함을 유지하려 했다. 그 가운데에 유재학 감독이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은 다르다. 현역 시절 남달랐던 경쟁심, 그 발톱은 이제 스승을 향하고 있다.
박세운 CBS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