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아마의 동거는 ‘자충의 묘수’
▲ 허동수 회장. |
허 이사장의 대바협 회장 취임을 바둑계는 ‘한 지붕 두 가족’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쨌거나 모양새는 기묘하다. 반세기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국 바둑의 총본산 한국기원은 재단법인, 바둑의 체육화로 등장한 대바협은 사단법인. 역사와 전통에서는 한국기원이 단연 큰집이지만, 바둑이 체육이라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대바협이 대표기관이 되는 것이고 산하에 프로연맹과 아마연맹을 거느리는 그런 구조가 떠오른다. 말하자면 프로연맹이 한국기원이다.
그런데 지금 산하단체인 프로연맹의 이사장이 상급기관인 대바협의 회장을 겸하게 된 것. 업어치나 메치나 그게 그거고, 그럴 수도 있는 것이라고 넘어가면 그만이겠다. “그래서 양쪽이 다 잘 되면 좋은 일 아니냐, 그렇게 하려고 회의하고 뽑고 그랬겠지”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지만.
이번 일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두 단체를 한 사람이 통솔하면 사람과 돈을 더욱 능률적으로 배치-배분할 수 있고, 의사 결정도 빨라져 바둑계 사업추진에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찬성하지 않는 쪽도 있는데, 거기서는 별 말은 없다. 찬성의 명분은 쉽고 간단하지만, 반대의 논리는 어렵고 애매하기 때문이다. 한국기원과 대바협, 두 단체가 선의로 경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고, 바둑계의 대표는 대바협이 갖고 한국기원은 태권도의 국기원 같은 역할을 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는데, 꼭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한 지붕 두 가족을 대놓고 반대할 근거가 막상 잘 안 보이는 것.
다만, 이런 건 있겠다. 한 단체의 리더를 뽑는데, 바둑계 전체의 행정 구도가 바뀌는 마당에, 사전 조율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선거운동 같은 것도 없고, 토론 같은 게 있었다는 얘기도 들리지 않는 가운데 입후보자가 한 사람, 단독출마에 투표자는 불과 15명이고, 거기서 만장일치라는 것. 이건 어디 내놓고 알리기에는 좀 부끄러운 일 아닌가?
신임 허동수 회장은 투표 직전 정견을 밝히는 자리에서 “출마를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바둑계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조그만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고 전제한 후 “바둑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적 인프라 확충이 핵심과제라고 생각하며 바둑에 애정을 가진 능력 있는 분을 초청하고, 인재를 발굴 개발하여 바둑계를 이끌어갈 인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한편 대한바둑협회와 한국기원이 유기적으로 연계해서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필요하다면 토대까지 근본적으로 바꾸고 개선하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허 회장은 또 당선 후 곧바로 대의원총회의 의사진행을 맡아 “협회의 현황 파악과 의견 수렴을 위한 ‘발전-개혁위원회’를 구성해 현안 과제에 대한 종합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대해 본다.
이광구 객원기자
제8기 원익배 십단전 (흑 목진석 9단, 백 이세돌 9단) 센돌의 헛패 소개하는 기보는 1월 22일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제8기 원익배 십단전 본선 16강 진출전, 이세돌 9단 대 목진석 9단의 바둑이다. 목 9단이 흑이다. <1도> 우하귀 백3이 재미있다. 현재는 흑 우세의 국면. 이세돌 9단이 형세가 여의치 않다고 보고 비틀어 간 것. 계속해서 <2도> 흑1로 따내고 백2로 팻감을 쓰자, 흑은 듣지 않고 3으로 끊어 버렸다. 십단전은 제한시간 10분에 40초 초읽기 3회의 초속기인데, 백2는 속기가 빚은 착각, 헛패였다. <1도> 백3으로 <3도>처럼 백로 이으면 물론 선수. 흑은 로 지켜야 한다. 그런데 백도 공배가 채워져 뒷맛이 아주 고약한 것. 가령 흑1 같은 것이 선수여서 3으로 끊는 수가 있다. <2도> 흑3 다음 <4도> 백1, 3으로 흑 대마를 추궁하는 것은? 이 9단도 이걸 보고 팻감을 쓴 것인데, 안 된다고 한다. 흑4로 먹여치는 수가 있어 백이 거꾸로 잡힌다는 것. 백7로 흑4 자리에 이으면 흑A로 장문. <5도>는 실전진행. 백은 3 이하로 키워버리며 흑 대마 공략을 노렸으나 흑12, 14로 완생 태세. 우변에 패 맛이 있어 계속해서…. <6도> 백1, 3에서 5로 패를 키웠고, 패의 대가로 멀쩡하던 좌상귀 흑을 잡는 전과를 올렸으나 흑도 우변 백돌을 크게 잡은 데다가 상변 4에서 22, 24로 여기를 선수로 돌파한 전리품이 있어 우세를 지켰다. 목 9단의 불계승. <5도> 백3, 5 때 흑6으로 <7도>처럼 1로 젖혀 잡다가는 걸려든다. 백2가 선수로 놓이면 <4도>와 같은 장문이 안 되는 것. 목 9단의 수읽기는 동료들이 알아주는 그것. 동료들은 기재나 천재성을 논할 때 “이창호 이세돌을 빼고 말하자면 목진석과 조한승이 단연 쌍벽”이라고 입을 모은다. 목진석은 목표를 정하면 집요하게 달라붙어 성취하는 천재, 조한승은 슬렁슬렁 평소 공부보다는 실전 대국으로 공부를 삼는 부드러운 천재인데, “목진석은 이창호에게 많이 막혔고, 조한승은 입단 동기 이세돌에게 조금 가려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 목진석은 1980년생, 조한승은 82년생. 이창호는 75년생, 이세돌은 83년생. 목진석은 어렸을 때 그 시절의 거봉 가운데 한 사람, 녜웨이핑을 꺾어 ‘괴동’ ‘우주소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올 시즌, 아니 올해가 아니더라도 언제가 영광의 재현이 가능할 것인지. 이광구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