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수문장’ 경제 물꼬도 그의 손에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술자리가 끝날 무렵, 곽 교수가 기자들에게 “딱 1시간만 노래 부르고 가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기자들은 혹시 노래방 시설이 갖춰진 단란주점에서 자리를 갖자는 의미인 줄 알고 따라나섰지만 이게 웬걸, 곽 교수가 기자들을 이끌고 간 곳은 ‘순수한 의미’의 노래방이었다. 이후 곽 교수는 랩이 곁들인 최신 히트곡들을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부르며 젊은 기자들로부터 ‘교수 같지 않은 교수’라는 평을 얻게 된다.
1960년생, 48세. 고려대 경제학과 80학번인 곽승준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브레인’이다. 미국 밴더빌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곽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환경경제학’을 전공한 소장파 학자다.
‘환경경제학’이라는 그의 전공은 한반도 대운하 건설에 따른 환경파괴 논란으로부터 이명박 당선인을 엄호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 당선인의 경제 관련 주요 공약인 금산분리 완화나 산업은행 민영화, ‘온 렌딩(on-lending·정부의 민간 위탁을 통한 간접 지원 방식)’ 정책, 중소기업 진흥책, 일자리 창출 방안 등이 모두 곽 교수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거나 곽 교수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경제 공약이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실세 중의 실세’로 불리는 인물이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곽 교수가 맡고 있는 정식 직책은 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이다. 인수위의 컨트롤 타워라 할 수 있는 기획조정분과는 맹형규 의원이 간사를 맡고 있고 경선과 대선 당시 당 대변인을 맡았던 박형준 의원 및 곽 교수가 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사실상 이 당선인의 ‘속내’를 인수위에 전달해주는 인물이 곽 교수인 것이다.
당선인 비서실 보좌역을 맡고 있는 정두언 의원, 당선인 대변인인 주호영 의원, 박형준 의원이 국회의원으로서 ‘이명박 측근 3인방’을 형성하고 있다면 곽 교수는 인수위 사회교육문화 분과 위원인 김대식 동서대 교수, 국제전략연구원장인 류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와 함께 ‘교수 출신 측근 3인방’으로 꼽히고 있다. 김대식 교수가 자체 추산 회원수 460만 명을 자랑하는 ‘선진국민연대’를 이끌며 이 당선인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총괄했다면 류 교수는 한반도 대운하 구상의 뼈대를 가다듬고 주요 연설문을 총괄하며 이 당선인의 ‘이론적 스승’ 역할을 했다.
이에 비해 곽 교수는 정책브레인을 넘어 중대 현안 발생 시 이 당선인이 흉금을 털어놓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측근으로 꼽힌다.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열리는 인수위 전체회의에 박형준 의원과 곽 교수가 가끔 불참하거나 늦을 때가 있다. 이 경우 십중팔구는 곽 교수와 박 의원이 당선인과 함께 주요 현안에 대해 숙의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곽 교수의 부친은 이 당선인의 ‘친정’이라 할 수 있는 현대건설 출신이다. 이 당선인과 곽 교수의 부친이 한 회사에서 오랫동안 함께 근무한 터라 곽 교수의 성장과정까지 이 당선인이 잘 알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이 당선인이 서울시장을 맡기 이전부터 곽 교수는 이 당선인과 친분을 맺어오고 있었다. 이 당선인이 곽 교수를 얼만큼 편안하게 생각하는지는 곽 교수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곽 교수에게 “네가 쓰는 돈은 네 아버지께 달라고 해라”라는 농담을 건넬 정도라는 것.
이 당선인은 서울시장 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난 2006년 초, 측근들에게 “내년 말 대선에 도전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내린다. 당시 이 당선인 주변에서 이 ‘지시’를 직접 받고 대선 공약의 뼈대를 만들기 시작한 인물이 바로 곽 교수와 정두언 의원이다. 정 의원이 주로 정무적 판단과 제언을 이 당선인에게 제시하면서 이 당선인의 ‘정치적 외양’을 가꿨다면 곽 교수는 정책을 가다듬으며 이 당선인의 ‘내실’을 키워준 것.
이후 이재오 의원이 계보 소속 의원들을 이끌고 이 당선인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했고 2006년 북핵실험 파문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이 당선인의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보이기 시작, 결국 청와대행에 성공하게 된다. 거꾸로 말하면 정두언 의원과 함께 오늘날 이명박 대통령을 만든 핵심 인물이 바로 곽 교수란 얘기다. 이명박 당선인을 대신해 이주호 의원을 ‘삼고초려’로 찾아가, 결국 이 당선인의 교육공약을 성안시킨 사람도 곽 교수라는 게 정가의 정설이다. 또한 임태희 비서실장, 주호영 대변인, 정두언 의원, 박형준 의원, 박영준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 등과 함께 곽 교수도 총리 인선, 조각 작업에 참여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엄청난 실세임에도 그다지 ‘적’이 없다는 것도 곽 교수의 장점이다. 이는 곽 교수의 타고난 친화력 및 격의 없는 태도에 기인한 면이 크다. 곽 교수는 대선 직전인 2007년 11월까지 무려 6년간 고려대 학보사 주간 교수를 지냈다. 곽 교수 스스로도 기자들에게 자기를 소개할 때 다른 경력보다 “그 어렵다는 학보사 주간을 6년 동안 지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한다. 그만큼 스스로 젊은 마인드를 가지려 노력해왔고 젊은 층의 생각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앞서 말한 ‘노래방’ 일화에서 볼 수 있듯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 중에서 가장 젊은 사고방식을 가진 인물을 꼽으라면 곽 교수를 꼽는 기자들이 적지 않다. 이 때문에 곽 교수에게 ‘교수’ 대신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기자들도 많다.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는 일부 측근 교수들과 달리 곽 교수는 정치에는 뜻이 없음을 명백히 밝혀왔다.
이 때문에 4월 총선보다는 입각 또는 청와대행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나이가 아직 젊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 당선인의 신임이 워낙 두터워 결국은 청와대 경제수석이나 국정기획수석 등에 중용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역대 정부 초기 ‘최측근’으로 불리던 실세들이 결국은 각종 물의를 일으켰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곽 교수 역시 자신에게 쏟아질 세간의 관심과 ‘유혹’을 얼마만큼 잘 견디느냐에 따라 경제 살리기의 일등공신이 될 수도, 아니면 정반대의 길을 걸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