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만 먹곤 못살아! 메인메뉴 교체 중
신춘호 회장
‘신라면’으로 대표되는 국내 라면 업계 부동의 1위 농심에 변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그동안 보수적인 경영을 펼쳐 오던 농심이 최근 새로 벌이고 있는 사업을 보면 가히 공격적이라 할 만하다. 지난 12월 14일 재판 끝에 14년간 독점 유통해 오던 ‘삼다수’를 잃은 후 이 같은 변화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생수, 커피, 프리믹스(부침가루, 튀김가루 등 빵류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분말 제품)….
농심이 최근 두 달 새 새롭게 진출한 시장이다. 여기에 농심은 지난 11월 가정상비약 편의점 판매 허용 이슈를 파고들며 최근 종근당의 액상 소화제 ‘속청’과 신신제약의 ‘신신파스’ 유통도 맡아 제약 유통 사업까지 뛰어 들었다. 또 음료회사 웅진식품의 인수 후보로도 이름을 올리고 있는 농심이다. “올해 신춘호 회장님이 제시한 경영지침은 ‘도전’이다”는 농심그룹 측의 설명이 딱 들어맞는 행보다.
농심은 삼다수 유통권을 뺏긴 직후, 지난 2010년부터 중국 법인에서 자체 생산해 현지에서만 판매해 오던 백두산 화산 광천수 ‘백산수’를 국내에 긴급 투입했다. 삼다수 성공 노하우를 바탕으로 오는 2017년까지 매출 2000억 원을 올려 국내 생수 시장 1위로 올라선다는 게 농심의 계획이다.
농심은 최근 백산수 라디오 광고를 내보내는 등 공격적 마케팅에 본격 나서고 있지만, 신제품의 시장 안착이 녹록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농심이 지난 1998년 삼다수를 유통한 첫 해에 국내 생수 시장 1위로 키운 저력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롯데칠성음료도 백두산 광천수 ‘백두산 하늘샘’을 출시하는 등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심 본사. 일요신문 DB
농심그룹 측은 “제품 출시 전 시음 행사 때 향후 재구매 의사를 묻는 질문에 소비자의 50~60%가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며 “차별화 전략을 통해 틈새시장 공략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농심의 이 같은 유례없는 ‘광폭 행보’의 배경은 뭘까. 바로 주력인 라면 시장의 정체 때문이다. 내수 시장에서는 라면 사업이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라면 회사로서는 부인하고 싶겠지만, 라면 이외에도 다양한 간식거리가 많이 생겨나면서 지난 2005년께부터 국내 라면 시장은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비록 국내 라면 시장에서 70%에 육박하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농심이지만 시장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것은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와 관련해 농심도 몇 년 전부터는 매년 라면 매출액만을 발표할 뿐, 구체적인 판매 수량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종합식품회사’로 발돋움하려는 농심의 이면에는 이 같은 고민이 녹아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결국 농심은 새로운 유망 사업을 밀어주기 위해 그동안 농심을 든든하게 먹여 살려온 라면 사업을 줄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농심의 국내 6개 공장 가운데 직접 라면 스프를 생산하는 곳은 안성 공장뿐이다. 나머지 부산, 녹산(부산 ‘녹산 산업단지’ 내 공장), 구미, 아산, 안양의 5개 공장에서는 라면 면발만 생산한다. 안성에서 대량 생산된 스프가 ‘윙카(Wing Car)’라고 불리는 대형 배송 차에 실려 매일 전국 공장으로 배달되고, 해당 공장에서 포장이 이뤄지는 구조다.
농심은 건강 기능성 커피 ‘강글리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집중 육성 중이다.
농심 내부 관계자는 “최근 커피 출시 설명회에서 라면 스프를 만들던 안성 공장을 점진적으로 커피 공장 라인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들었다”고 말했다. 농심은 안성 공장 이외에도 ‘태경농산’이라는 계열사를 통해 라면 스프를 공급 받고 있다. 태경농산은 안성과 대구에 두 개의 공장을 갖고 있다. 라면 스프 공장을 커피 공장으로 한꺼번에 바꾸지 않는 이상, 기존 라면 생산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 구조다.
이 관계자는 이어 “농심의 이 같은 계획은 앞으로 10년 후 라면 시장이 지금과 같지 않은 반면 커피 시장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며 “점진적으로 건강을 이슈화해 커피 시장을 차지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업종 전환 프로젝트에 대해 농심 측은 공식적으로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한편 농심그룹은 이 같은 공격 경영을 바탕으로 올해 (주)농심 2조 8000억 원을 포함해 그룹 전체 매출 4조 8000억 원을 달성할 계획이라고 지난 1월 2일 발표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