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길’ 대신 막장에서 뜬 ‘초신성’
연합뉴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악인”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주인공이 누구냐고 물으니 이름을 대기보다 “유명한 배우는 아니다”는 답이 먼저 나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영화계 비수기라 불리는 2월에 개봉돼 500만 관객을 모았다.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영화였음에도 말이다. 이 영화는 <추격자>였고 당시만 해도 그리 유명하지 않았던 두 배우는 하정우와 김윤석이었다. <추격자>는 국내 최고의 스릴러로 손꼽힌다. 두 사람 모두 주목받았지만 그해 남우주연상은 대부분 김윤석이 차지했다. ‘젊은 피’ 하정우는 그렇게 김윤석의 그늘에 가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하정우는 이듬해 <국가대표>로 800만 관객을 모으며 홀로 섰고 김윤석과 다시 만난 <황해>에서는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최민식과 ‘맞짱’을 떴고, 지금은 한석규 류승범 전지현 등 쟁쟁한 배우들의 틈바구니에서 명실 공히 <베를린>(감독 류승완)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이제는 ‘대세’라 불리는 30대 중반의 배우, 그가 바로 하정우다.
# 하정우에게 ‘요행’은 없다
혹자는 하정우가 ‘운이 좋다’고 말한다. 좋은 작품과 감독을 만나 단기간에 성장했다는 착각이다. 그가 한 시대를 풍미한 중견 배우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점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그 행운을 버렸다. 본명 김성훈 대신 하정우라는 예명을 사용하며 ‘김용건의 아들’임을 애써 감췄다. 그리고 이제는 김용건이 ‘하정우의 아버지’라 불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때가 됐다.
2002년 데뷔 당시 하정우는 영화 <마들렌> <슈퍼스타 감사용>을 비롯해 드라마 <무인시대> <똑바로 살아라> 등에서 단역을 맡았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서야 하정우는 절친한 후배인 윤종빈 감독의 졸업작 <용서받지 못한 자>의 주연을 맡아 함께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으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철저하게 스스로 자신의 위상을 만들어간 셈이다.
그의 이런 집념과 노력은 <베를린>의 촬영 때도 빛났다. 북한 최고 공작원 ‘표종성’을 연기하기 위해 하정우는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는 “감독님과 자문 선생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실제 공작원으로 활동하신 분들도 만나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를 구축해나갔다. 관련 다큐멘터리도 찾아봤지만 자료가 많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만들어진 표종성을 보면 <범죄와의 전쟁> 속 하정우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살아 있네!’
# 하정우에게 ‘주류와 비주류’는 없다
영화는 예술이다. 과연 예술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눌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개념으로 본다면 영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 기준은 대규모 배급력의 유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영화도 제대로 된 배급 시스템에 들어가지 못하면 대중이 만날 기회조차 없기 때문이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는 비주류로 분류되길 꺼린다. 때문에 대중과 가까이 만나기 힘든 비주류 작품은 좀처럼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정우는 다르다. <추격자> <황해> <국가대표> <의뢰인> 등 탄탄한 배급력을 갖춘 영화 외에 <시간> <숨> <보트> <577 프로젝트> 주류에 속하기 어려운 다양한 영화에도 도전했다. 이 영화들은 하정우가 출연한 덕에 대중의 관심을 받는 반사이익을 누리기도 했다.
하정우가 이제 명실공히 영화계의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다.
스타들은 몸을 사린다. CF 한 편에 수억 원씩 챙기는 ‘비싼 몸’인 만큼 위험한 연기를 꺼리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하정우는 다르다. 그는 <베를린>을 촬영할 때도 고난도 액션 장면 대부분을 대역 없이 소화했다. 와이어에 거꾸로 매달려 펼치는 액션은 압권이다. 하정우는 “튼튼한 와이어는 믿지만 와이어를 잡는 사람들을 못 믿겠더라”며 빙그레 웃었다.
독일 베를린에서 촬영할 때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화약 파편을 맞은 손이 엉망이 됐지만 하정우는 힘든 내색 없이 촬영을 이어갔다. 해외 로케이션에서 ‘시간=돈’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하정우는 자신을 걱정하는 스태프를 격려하며 대수롭지 않게 간단한 치료를 받은 후 촬영을 재개했다. 정두홍 무술감독은 혀를 내둘렀다.
<베를린>의 개봉을 앞두고도 하정우는 “기존 액션과 달리 위험한 장면도 많았지만 큰 부상은 없었고 잔부상 정도만 입었다. 정두홍 무술감독을 신뢰했기 때문에 걱정은 없었다. 스태프의 고생이 많았다”고 공을 돌렸다.
# 하정우에게 ‘왜소함’은 없다
하정우는 참 큰 배우다. 그는 키도 크고 얼굴도 크다. 무엇보다 그는 배포가 크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간혹 배우치곤 큰 얼굴 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도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라고 시원하게 웃어넘긴다. 질문받는 사람보다 질문하는 사람이 더 민망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그의 큰 발이 공개돼 화제를 모았다. 하정우의 발 크기는 무려 295㎜. 큰 발 때문에 하정우는 <베를린>을 촬영하며 아찔한 경험을 했다. 그는 “자동차에 매달리는 액션 장면을 찍을 때 차 밑에 발을 올릴 수 있는 작은 받침이 있었다. 하지만 정두홍 감독의 발사이즈인 265㎜에 맞게 제작돼 발가락 끝만 걸치고 버텼다. 자동차가 코너를 돌 때 발이 쏠려 차체에 밟히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하정우에게 ‘거드름’은 없다
대중이 보는 모습이 스타의 전부는 아니다. 대중이 매체를 통해 만나는 스타의 모습은 잘 정돈된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때문에 그들의 됨됨이를 알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스태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하정우는 카메라의 앞과 뒤가 다르지 않은 배우다. 한 스태프는 그를 가리켜 “인간에 대한 도리를 아는 배우”라 말했다. 스태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는 하정우는 화려한 스타이기 전에 따뜻한 인간이다. 영화 개봉을 전후해 하정우와 직접 만난 여기자들의 그의 절대적인 팬들이 되는 이유도 이런 하정우의 됨됨이에 기인한다. 항상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려 하고 먼저 다가가려는 그를 누가 마다하겠는가. 게다가 가끔은 휴대폰 게임 애니팡 하트까지 날려주니 금상첨화라 할 수 있다.
하정우의 차기작으로 올 하반기에 공개될 <더 테러 라이브>.
‘올림픽 배우’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약 4년을 주기로 작품을 내놓는다는 의미다. 하나의 작품을 성공시킨 후 그 이미지를 내세워 CF를 주업으로 삼는 이들을 꼬집는 표현이다. 반면 하정우는 ‘학기별 배우’라 할 만하다. 1년에 꼬박꼬박 두 작품 정도 선보이기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베를린>에 이어 하반기에는 <더 테러 라이브>를 공개한다. 그 사이 감독 데뷔작인 <롤러코스터>도 개봉된다. 이르면 4월부터는 영화 <군도>와 <앙드레 김>의 촬영을 연이어 진행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친분이 있는 영화인들의 작품에 우정 출연하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하정우는 “다작은 집안 내력인 것 같다. 아버지 역시 20년 넘게 엄청나게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있다. 내게는 연기하는 것이 휴식이다. 연기할 때 가장 즐거우니 말이다. 버겁다는 생각이 들면 쉬겠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 하정우에게 ‘이미지 팔이’는 없다
포털 사이트에 하정우의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하정우 먹방’이 나온다.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준말이다. 하정우가 작품 속에서 워낙 음식을 맛있게 먹는 터라 붙은 수식어다. <황해>에서 하정우가 맛있게 먹은 컵라면과 핫바는 ‘황해 세트’라는 이름으로 출시됐고, <의뢰인>에서는 쌀국수를, <범죄와의전쟁>에서는 탕수육과 고량주를 맛깔나게 먹었다.
이쯤 되니 하정우에게는 음식 CF 출연 제안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대부분 연예인들이 CF 러브콜을 쌍수 들고 반기지만 정작 하정우는 손사래를 친다. 그는 “먹는 연기는 작품 속에서만 보여주고 싶다. 작품을 통해 얻은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싶진 않다”고 선을 그었다.
특정 CF를 통해 하정우의 먹는 모습이 희화화되면 또 다른 작품에서 그가 먹는 연기를 펼칠 때 관객의 몰입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을 잘 알고 있는 하정우는 CF 출연까지 마다하며 연기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천생 배우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맥주 천국 베를린서 금주한 까닭 고놈의 식스팩 때문에… 애주가로 소문난 하정우.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그곳에서 영화 관련 각종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때문에 맥주가 맛있기로 소문난 독일에서 촬영된 <베를린>은 하정우에게 천국과 같았을 법하다. 정작 하정우는 <베를린> 촬영 내내 입에 술 한 모금 대지 않았다. 하정우는 “베를린은 ‘금주의 도시’였다”며 “고난도 액션을 펼치는 요원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짧은 시간이지만 요원에 걸맞은 생활을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에서는 하정우의 탄탄한 상반신도 볼 수 있다. 이 한 장면을 위해서라도 맥주와 야식은 하정우가 피해야 할 요소였다. 술이 없는 하정우의 삶은 선배 배우 한석규가 채웠다. 한석규는 원래 술을 마시지 않는 터라 두 사람은 맨송맨송한 정신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하정우는 “낮 시간에 카페에 둘이 앉아 6시간씩 이야기꽃을 피웠다. 많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소재가 고갈될 정도였다. 이후에는 선배님이 독일의 역사와 로마와 골프, CF를 잘 고르는 법과 감독과 소통하는 법 등을 알려줘 많은 과목을 이수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
<베를린>에도 하정우 ‘먹방’ 있다 300만 돌파 ‘바게트 영상’ 공개 <베를린> 측에서 공개한 하정우의 ‘먹방’ 장면. <베를린>에서는 식탁에 마주앉은 표종성(하정우 분)과 련정희(전지현 분)가 깨작거리며 밥을 먹는 장면이 있을 뿐이다. 분명 그동안 보여준 하정우의 ‘먹방’과는 거리가 멀다. 류승완 감독 역시 하정우의 장기를 살린 먹는 장면을 촬영했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아 결국 편집했다. 류승완 감독은 “영화 초반부 하정우가 해킹을 하며 먹는 장면과 바게트를 우걱우걱 먹는 신도 있었다. 심각한 상황인데 하정우가 맛있게 잼까지 발라서 먹었다”고 편집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하정우의 팬들이 이 장면을 볼 수 있게 됐다. <베를린>의 흥행에 힘입어 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는 “이 장면이 편집된 것이 알려진 후 보고 싶다는 팬들의 요청이 쇄도했다. 300만 관객 돌파 시 이 영상을 공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 7일 <베를린> 측은 관객수 300만 돌파 기념으로 하정우가 바게트를 먹는 장면, 빵에 잼을 발라 먹는 장면, 아침 밥을 먹는 장면을 공개했다. 편집된 영상조차 살려 내는 인기, 이게 바로 대세 하정우의 힘이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