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차관인데 모텔로 와!
다산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민원전화를 받는 모습.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사랑합니다 고객님. 행복하세요 고객님.”
일일 평균 3만 5000여 건의 상담문의가 쏟아지고 있는 다산콜센터. 520여 명의 상담원은 하루 3교대로 24시간 교통과 문화행사, 민원 등 서울에 관한 모든 것을 안내해주고 있다.
한 명의 상담원이 하루에 받는 전화는 평균 100여 통. 평범하게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묻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고객들도 있지만, 욕설을 하거나 성희롱 발언을 서슴지 않는 악성민원인들도 있다. 이들로 인해 상처받은 상담원들의 고충은 이미 많이 지적돼왔다.
상담원 A 씨는 밤 12시경 술에 취한 남자의 민원 전화를 받았다. 남성은 다짜고짜 “내가 고위급 행정부의 차관인데 지금 B 모텔로 가고 있는데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A 씨는 황당했지만 친절하게 대응을 했다. 그러자 남성은 “XX년 오라면 오면 되지 무슨 말이 많느냐”며 “너 같은 놈은 내가 찾아가서 죽이겠다”는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했다고 한다.
A 씨는 “민원인들의 폭언과 욕설을 듣고 스트레스를 받아 화장실에서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허위신고를 일삼으며 고성과 욕설을 퍼부은 악성민원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상담원 B 씨는 “민원인의 무리한 억지, 욕설에도 상담원들은 참고 대응해야 한다. 우리가 먼저 끊을 수도 없다. 서울시 홈페이지에 친절하지 않다는 민원인의 글이 올라오면 경위가 어찌됐든 바로 사유서를 써야 한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다산콜센터 상담원을 상대로 한 성희롱, 폭언·욕설·협박 등의 악성민원전화는 모두 2만여 건. 한명의 상담원이 한 달 평균 18.8회 욕설과 폭언에 노출되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계속적인 경고에도 개선 여지가 보이지 않는 악성민원인에 대해 사회적 경종을 울리기 위해 고소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 지난해 9월 서울시는 유 아무개 씨를 비롯한 악성민원인 4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러나 다산콜센터 상담원들은 이러한 법적 조치만으론 처우가 개선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희망연대노동조합 다산콜센터지부의 한 관계자는 “악성민원인에 대한 법적 조치도 중요하지만, 욕설과 성희롱에 상처받은 상담원의 심리 치유를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상담원 B 씨는 “폭언, 욕설에 시달리고도 마음을 추스르고 안정을 취할 시간도 없다. 바로 다음 민원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상담원들은 보통 한 시간 동안 30통의 전화를 응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고충 속에서도 상담원들은 자신들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민들을 만날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다산콜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는 혼자 사는 노인 분들에게 문안 전화를 하는 ‘안심콜서비스’. 다산콜센터 상담원 C 씨는 “매주 2~3번씩 안부 전화를 드리고 있는 할머니가 있는데 어느 날 전화를 드리니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날씨도 덥고 입맛이 없다고 하셨다. 할머니에게 드시고 싶은 반찬이 있는지 물으니 뜻밖에 멸치볶음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멸치볶음을 만들어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단출한 밥상에 멸치볶음 하나만 올라갔을 뿐이지만 할머니는 너무나도 맛있게 밥을 드셨다. 그 때의 뿌듯함을 잊을 수 없어 요즘도 가끔 반찬을 해서 할머니를 찾아간다”고 말했다.
또한 D 씨는 퇴근을 앞두고 한 통의 민원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한 남성은 서울시립직업전문학교 전화번호를 물었다. 35세인 아들이 아직 취직을 못하고 있어 걱정이 됐던 것. D 씨는 서울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립직업전문학교에 대한 안내와 함께 상담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아들의 취업을 위해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다니셨던 아버지는 D 씨에게 연신 “고맙다”고 했다. D 씨는 “작은 정보 하나에도 기뻐하고 고마움을 표시하시는 고객들을 볼 때마다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다산콜 위탁업체 상담원 성폭력 사건 진상 “백허그에 가슴 만져” “친한 동료끼리 장난” 성폭력 사건은 지난해 8월 다산콜센터 위탁업체 수련회에서 발생했다. 상담원으로 일하는 A 씨(여)는 술을 마시다 혼자 방에 들어와 잠을 자고 있다 당시 부팀장이었던 B 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B 씨는 A 씨에게 다가가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만지는 등 강제추행을 하며 “남자는 다 똑같다” “네가 가슴만 더 컸으면 좋겠다” 등의 성희롱 발언을 했다. A 씨는 성추행 사실에 대해 위탁업체에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B 씨의 강제추행 사실은 입소문을 통해 회사 내에 퍼졌다. 하지만 위탁업체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A 씨와 B 씨가 같은 팀에서 계속 근무를 하도록 방치했고, B 씨는 오히려 부팀장에서 교육강사로 승진까지 했다.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 말 퇴사하는 한 상담원이 위탁업체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A 씨에 대한 성추행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말하면서다. A 씨도 성추행 사실을 털어놓으며 업체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2차 가해뿐이었다. 대리인을 통해 사건을 조사받겠다는 A 씨에게 위탁업체는 수차례 연락해 “정확한 사건 경위를 알려고 하니 직접 진술서를 보내라”고 압박했다. “직접 진술서를 보내지 않으면 사규 방침에 따른다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통보하기까지 했다. 한편 가해자로 지목된 B 씨는 “성희롱을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친한 동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장난 정도였다”며 성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위탁업체의 한 관계자도 “공식적으로 본사에 이 사건이 회부된 것은 1월 초”라며 “사건을 미루며 A 씨와 B 씨를 같은 팀에서 근무하도록 방치한 게 아니라 회사에서는 객관적 판단을 위해 양쪽 당사자들의 진술을 직접 들어보려고 하는 중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희망연대노동조합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업체 측은 “지난 12일 B 씨를 다산콜센터의 다른 층으로 옮기며 A 씨와 물리적으로 분리를 시켜놓은 상태다. 양측의 진술을 확보한 만큼 빠른 시일 내에 진상을 규명해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고 해명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