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 전 세계대회 ‘첫키스’ 실패
스웨 5단(왼쪽)과 원성진 9단. 스웨는 세계대회 우승으로 9단으로 승단했다.
승패는 병가의 상사라 언제든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번 3번기는 관전하는 동안 내내 좀 안타까웠고, 끝난 후에도, 일본식 표현을 빌리자면 ‘잔념(殘念)의 보(譜)’라고나 할까,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원성진의 평소 모습이 아닌 것 같았고,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1국에서는 스웨의 대마를 잡으러갔다. 원펀치다워 보였다. 그러나 수읽기에 착오가 있었고, 스웨의 대마는 백의 공격부대 진영을 궤멸시켰다. 백으로서는 공격하다가 역습을 당해 무너진 단명국이었다.
2국은 중원 전투에서 대마가 분리되자 이후에는 줄곧 수세에 몰리다가 그대로 밀려 버린 내용이었다. 우세한 국면을 승리로 연결시키는 스웨의 완급조절이 돋보였다. 모처럼 인터넷에 등장해 2국을 해설했던 조훈현 9단은 스웨에 대해 “특별히 이 부분이 강하다, 그런 건 잘 모르겠는데,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고 빈틈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텔레비전 바둑방송을 통해서도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조훈현 9단의 해설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정말 좋은 세월이다.
한편 1~2국을 지켜본 검토실에서는 “스웨가 중국의 ‘90후 세대’ 중에서도 앞에서 달리고 있는 신진강호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불리한 상황에서 실마리를 찾는 힘도 좋고, 유리한 국면에서 서두르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하는 침착함은 발군”이라고 스웨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다. 곧 입대해야 하는 원 9단에 대해서는 비난은 1이었고 위로가 9였다. “평소와 같은 집중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후에 본인은 입대문제는 영향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건 승부사로서 그런 걸 패인으로 꼽을 수는 없는 일이니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 하는 것일 테고, 왜 영향이 없었겠는가. 바둑은 고도의 정신 승부, 요즘말로 하면 멘탈 게임이어서 조금만 신경이 흩어져도 안 된다. 약간이나마 정서불안, 그런 게 있었을 것이고, 원 9단의 패인으로는 그게 제일 컸을 것”라고 입을 모았다.
그나저나 생각할수록 LG배와 삼성화재배는 중복이라는 느낌이다. BC카드배까지 포함하면 비슷한 규모, 비슷한 방식의 대회가 세 개나 된다. BC카드배는 이번 시즌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니 두고 볼 일이다. 일본은 요즘 상대가 안 된다고 낮추어보고 있지만, 그래도 자국 내에서 자기들끼리는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일본의 3대 기전은 세계대회보다 규모가 더 크다. 중국은 자잘한 지역 대회, 이벤트성 대회는 많지만 변변한 세계대회는 없다. 대신 중국리그가 크다. 갑조-을조가 있어 중국 전역의 프로기사를 망라하고, 한국의 톱클래스도 받아들이고 있다. 실속이 있다.
그래서 우리도 삼성화재배나 LG배, 둘 중 하나는 국내기전으로 전환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대회도 좋지만 그보다는 국내기전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아닌가. 입단자를 더 많이 뽑으라고 아우성인데, 국내 기전을 키우고, 국내 바둑 시장을 넓히면 그런 쪽에도 도움이 될 것 아닌가. 중국하고는 그만큼 겨루어 보았으면 된 것 같다. 만날 이기고 지고 하는 게 이제 더 이상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중국 시장을 얘기하곤 하는데, 글쎄. LG배나 삼성화재배 규모 정도를 예컨대 한국리그에 투자한다면 여러 가지 숙제가 동시에 해결되고 바둑계 전체가 크게 활성화할 것 같은데, 안 그럴까.
이광구 객원기자
‘밀당’에 당했다 LG배 세계 기왕전 결승 2국 흑 - 원성진 9단, 백 - 스웨 5단 <2도>는 실전진행. 흑은 1로 뛰었고 백은 2, 4를 선수한 후 6, 8로 여기를 나가 끊었다. 여기서 조 9단이 “흑1은 실착 같다”고 지적했다. 백2~8이 아니라 당장 <3도> 백1, 3으로 차단해도 흑이 좋을 게 없어 보인다는 것. 계속해서 흑은 <4도> 1로 몰고 3으로 잡아야 했는데, 백4, 6부터 국면의 흐름은 흑이 부담스러운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5도> 흑1, 3에서 9, 11로 밀어붙이는 장면에서는 흑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게 아니었던 것. 우선 흑5, 7의 곳 단점을 선수로 해소하는 것이긴 하지만 일단 실리로는 큰 손해였고, 흑13이 불가피해 백14를 당하는 순간 흑 전체가 엷어졌다는 것. 흑15로 연결을 꾀하려는 순간 <6도> 백1, 3으로 흑은 위·아래가 끊겼다. 백1, 3은 적군의 수이기는 하지만, 정말 산뜻해 보인다. 이제 흑은 하변 대마가 미생이고, 상변도 백A로 움직이면 이쪽 대마도 미생. 이후 원 9단은 용전분투했는데, 스웨는 적절히 밀고 당기면서 반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2도> 흑1로는 여기를 뛸 것이 아니라 변의 백 석 점을 잡아야 했다는 것이 조 9단의 설명이었다. 조 9단이 보여 준 것이 <7도>. 흑1을 하나 활용하고 3으로 잡는다는 것. 백4에는 어떻게 대응할까? 흑5로 몰아 놓고 7로 끼운다는 것. 흑1은, 흑7 다음 백A, 흑B에서 백C로 몰 때를 대비한 축머리인 것. <6도> 흑1 때 백이 <8도>처럼 2로 변의 석 점을 살려가는 것은 모험이라고 한다. 흑3으로 좌상변이 갈라지면 국면은 일순 어지러워진다. 아수라장이 될 조짐이다. 이광구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