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헛다리’ 안에선 ‘엇박자’
▲ 롯데쇼핑 등 롯데의 주요 계열사들이 실적부진을 보이자 재계 일각에서 신동빈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문이 일고 있다. | ||
롯데쇼핑은 한국 롯데의 핵심계열사이자 ‘유통제국’이라는 닉네임을 안겨다준 회사다. 하지만 최근 실적은 그리 좋지만은 않다. 지난해 롯데쇼핑은 약 689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것은 2006년 당기순이익(약 7400억 원)보다 510억 원가량 줄어든 것. 신 부회장이 롯데쇼핑 경영에 본격적으로 관여한 것이 2007년부터라는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의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론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라이벌인 신세계에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는 뼈아파 보인다. 그동안 롯데쇼핑 내부에선 신세계를 ‘한 수 아래’로 접어두는 게 당연시됐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신세계는 사상 처음으로 총매출액 9조 5000억 원가량을 기록하며 롯데쇼핑을 1000억 원 이상 앞질렀다. 이를 두고 당시 롯데쇼핑에서는 “유통부문에서는 총매출액보다 영업이익으로 순위를 매기는 것이 맞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영업이익에서는 롯데쇼핑이 신세계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롯데쇼핑은 지난해에 약 7566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데 그쳐 7657억 원가량을 기록한 신세계에 밀렸다. 롯데쇼핑이 총매출액은 물론 영업이익마저 신세계에 밀리자 업계에서는 “순위가 바뀌는 것 아니냐”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롯데쇼핑 관계자는 “일시적인 부진”이라며 “그동안 쌓아온 유통망을 감안하면 1위 자리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처럼 롯데쇼핑의 실적이 부진하자 그룹 일각에서는 신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고 한다. 사실 이러한 말은 신 부회장이 그룹 부회장에 오른 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롯데닷컴이나 코리아세븐 등이 부진했을 때도 나온 적이 있었다.
롯데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도대체 신 부회장이 롯데에 와서 한 것이 뭔지 모르겠다”고 말문을 연 뒤 “새로운 사업 할 생각 말고 있는 것이나 제대로 지켰으면 좋겠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이 인사는 롯데홈쇼핑을 거론하며 “신 부회장이 경영수업을 더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2006년 롯데쇼핑은 신 부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홈쇼핑을 인수해 롯데홈쇼핑을 출범시켰다. 하지만 지난해 롯데홈쇼핑의 실적을 보면 매출액 2420억 원, 영업이익 463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다(<일요신문> 828호 상세 보도).
신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주식시장의 평가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현재 롯데쇼핑의 주가는 31만 원(4월 2일 종가 기준). 지난 2006년 2월 상장한 이후 최저수준이다. 반면 신세계는 58만 9000원을 기록했다. 증권업 관계자는 롯데쇼핑 주식이 이처럼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경영진들이 신뢰할 만한 업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신격호 회장도 롯데쇼핑의 부진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신 부회장의 누나 신영자 부사장을 다시 롯데쇼핑으로 불러들인 것. 신 부사장은 오늘날 롯데쇼핑을 일군 주역 중 하나로 꼽히지만 지난 2006년 신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할 때 등기이사 명단에서 빠지며 사실상 롯데쇼핑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지난 3월 초 다시 등기이사에 복귀한 것이다. 회사 측에선 “큰 의미는 없다”라고 설명하지만 신 회장이 롯데쇼핑의 구원투수 역할을 신 부사장에게 맡긴 것으로 해석되는 만큼 향후 신 부회장의 후계구도에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이에 신 부회장은 그간의 실적부진을 만회하려는듯 새로운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해에 세워질 예정인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도 그중 하나인데 다분히 신세계의 명품 아울렛 ‘신세계첼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내에서조차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신 부회장이 워낙 의욕을 보이며 다그치고 있어 추진은 하고 있지만 수익성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없다는 얘기다.
▲ 롯데쇼핑. | ||
신 부회장은 금융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지난 1월 대한화재를 인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4월 1일에는 대한화재의 이름을 바꿔 롯데손해보험을 출범시켰으나 재계의 시선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몇몇 인사들은 “금융은 경영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도 어려워하는 분야”라며 “유통에서도 부진했던 신 부회장이 상당한 난항을 겪을 것”이라며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엔 계열사끼리의 불협화음도 들리고 있는데 여기에도 “신 부회장의 책임이 작지 않다”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 3월 영등포 교정시설 신축사업에서 입찰을 따낸 SK건설 컨소시엄에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그런데 이 사업에는 계열사인 롯데건설도 참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사업에 그룹 계열사가 경쟁을 했던 것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뒤늦게 의향서를 제출해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서도 “사실 롯데쇼핑과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근본 원인은 “신 부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있다”는 게 재계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계열사 간 사업의 교통정리와 원활한 의사소통은 최고경영자의 몫인데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한편 신 부회장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그룹 외부의 분위기도 좋지않다. 우선 국세청에서 지난해 신격호 회장이 그룹 계열사에 2000억 원을 무상증여한 것에 대해 자체조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국세청은 “개별기업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지만 (무상증여에 대해서) 검토는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또한 지난해 무산됐다가 올해 다시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2롯데월드 건설도 서울시가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어 신 부회장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듯하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