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안풍…우군일까 적군일까
박기춘 원내대표와 문희상 비대위원장 등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작은 사진은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밝힌 안철수 전 교수가 12일 노원구 상계1동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를 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의 귀국과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를 보는 민주통합당의 속내는 복잡·미묘하다. 민주당은 당장 노원병에 후보를 내야 하는지부터 내부 갈등을 빚고 있다. 후보를 양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후보를 내고 당당히 경쟁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안 전 교수를 우군으로 볼 것이냐, 경쟁자이자 적군으로 볼 것이냐도 골칫거리다. 민주당은 장기적으로 안 전 교수가 신당을 만든다면 민주당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놓고 갈수록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안철수 신당’에 현역 의원이나 내년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이 이탈하면, 국회의원 127명을 보유한 정통 제1 야당과 고작 의원 2명(안 전 교수 당선을 전제로)의 안철수 신당에 잡아먹혀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긴장감마저 조성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안철수 신당에 대비하는 태도의 차이로도 이어진다. 특히 안 전 교수의 귀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민주당 친노 주류들이 대선 과정에 안 전 교수 측이 ‘미래 대통령’ 약속을 요구했다고 폭로해 진실 게임까지 벌어지고 있다.
여론조사 기관 모노리서치가 지난 13일 노원병 주민 8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안 전 교수는 42.8%의 지지를 기록했다. 이어 ‘새누리당 후보’는 31.2%로 2위를 차지했다. ‘민주당 후보’는 11.8%, ‘진보정의당 후보’는 4.8%, ‘통합진보당 후보’는 1.9%에 그쳤다. 야권에서 모든 정당이 후보를 낸다 해도 안 전 교수가 당선된다는 결과다. 민주당으로서는 속이 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민주당에서는 노원병에 아예 후보를 내지 말자는 ‘무(無)공천론’이 서서히 힘을 얻어가는 분위기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 등 지도부는 안 전 교수의 출마결심이 알려진 직후에는 “원칙적으로는 소속 의원이 127명이나 되는 제1 야당이 후보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당내 이견도 크고,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 후보를 내 봐야 승리하지도 못하면서 안 전 교수 측의 기분만 상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3일 문 위원장과 4선 이상 중진 의원 오찬에서는 노원병에 후보를 내지 말자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0여 명이 참석한 이날 오찬에서 후보를 내야 한다는 원칙론을 편 사람은 2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비주류 쪽 ‘민주당의 쇄신을 바라는 의원모임’도 14일 조찬 회동을 통해 노원병에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내부 의견을 정리했다. 이들은 무공천 요구 성명까지 발표하려다가 일단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비주류 중진 김영환 의원은 지난 15일 원음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과거에는 여당 유력인사나 야당 총재가 나가는 지역에는 공천을 하지 않는 관례도 있었다”며 “우리 문재인 의원과 한 묶음으로 대선을 치른 안 전 교수가 국회의원을 하겠다는데 제1 야당 형식논리로 후보를 내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은 “후보를 내도 서너 명이 돼 민주당이 굴욕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며 “결국 후보를 낼 수 없는 상황인데, 빨리 정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안 전 교수가 당장은 아니지만 내년 지방선거까지의 스케줄 속에서 신당 창당에 나설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안 전 교수 측은 당장 4월 재보선에서의 후보단일화에 대해서도 “기계적 단일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에 따라 10월 재보선을 전후해 안철수 신당이 가시화될 경우 민주당은 내부 세력의 대거 이탈과 함께 과거 자유민주연합처럼 특정 지역에 한정된 군소 정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경계감을 표출하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안 전 교수에 대한 지지도가 수도권과 호남에서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호남 자민련’ 지위조차 안심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안철수 신당에 대한 걱정은 주류, 비주류를 가리지 않는다. 비주류 김영환 의원은 최근 개인 칼럼을 통해 “야당의 민주당 독과점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앞으로 각종 선거에서 피 말리는 개혁경쟁을 벌이게 되었다”며 “특히 영호남에서 먼저 그 불꽃이 타오를 것이다. 불행하게도 민주당은 야권발 정계개편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 의원은 또 “정치개혁을 하려다가 뼈도 못 추린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다. 해방 이후에 정계개편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며 “역사적으로도 정도전, 정약용, 조광조가 모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한 김근태계 인사는 “이대로 가면 민주당이 제3당으로 전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고도 했다.
박지원 의원은 지난 13일 “안 전 교수가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것은 야권 분열의 씨앗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YTN에 출연해 “나는 안 전 교수의 새 정치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며 “새 정치는 정당정치이자 양당제이기 때문에 (안 후보는) 민주당과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대선 패배 후 제게도 서너 그룹에서 신당을 창당해 안 후보가 귀국하면 함께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단호히 거부했다”며 “민주당은 60년 전통과 10년의 집권 경험이 있기 때문에 두 번 정권교체에 실패했다고 해서 그렇게 간단하고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보탰다.
민병두 전략홍보본부장은 같은 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 전 교수가 10월까지는 신당을 만들지 않고, 무소속 연대 같은 걸로 몇 개 선거구에 나올 것 같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신당을 만들 수 있다고 보는데, 결국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애써 안철수 신당의 파괴력을 평가절하했다. 그는 “지방선거 때까지 현역의원 이탈은 전무할 것이다. 의원들은 지방선거 결과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며 “민주당 광역단체장들도 누가 이탈하겠느냐. 결국 광역의원 갖고 전선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는 경계심 수준이지만 문재인 캠프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주류들은 대놓고 안 전 교수를 요격 대상 취급하며 포화를 쏟아 붓고 있다. 친노 그룹은 최근 안 전 교수에 대해 견제구 수준을 넘어 노골적으로 ‘빈볼’을 던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래 대통령’ 논란이다. 그만큼 ‘안의 귀환’에 불안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문신일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