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의 ‘꼭두각시’ 혹사당하기도
<사랑과 전쟁2>에서는 아역스타가 부모에 의해 혹사당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진제공=KBS
얼마 전 방송된 KBS 2TV <사랑과 전쟁2>의 내용이다. 이 프로그램이 있음직한 내용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다는 것을 시청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날 <사랑과 전쟁2>를 본 방송 관계자들 중 가슴 한편이 찜찜한 이들이 적지 않았을 법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로 많은 아역들이 현장에서 혹사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아역 배우를 뽑는 오디션장의 열기는 성인 배우들을 선발하는 오디션 현장 못지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들이 곁을 지키고 있다는 정도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잔뜩 치장한 아이들은 아이답지 않은 외모와 말투로 다양한 연기를 준비한다. 그들의 매니저이자 가장 열렬한 팬은 엄마다. 또한 혹독한 트레이너다.
아역 배우를 전문적으로 트레이닝하고 오디션 기회를 잡아주는 에이전시도 문전성시다. 최근 몇몇 아역 배우들이 영화와 드라마를 막론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며 CF까지 섭렵하자 많은 엄마들이 앞 다퉈 아이들의 손을 잡고 에이전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 연예 관계자는 “아이들은 아직 연예계가 무엇인지, 연기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엄마가 알려준 듯한 말을 외워서 앵무새처럼 읊조리는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하다”며 “최근 2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7번방의 선물>에 출연해 스타가 된 갈소원 양은 오디션에 참가한 200명 중 연기를 가장 못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꾸미지 않고 아이다운 순수함이 좋아 감독의 선택을 받게 됐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간과한 엄마들의 욕심이 아이들을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오디션을 통과하면 아역들의 고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아역은 작품 속에서 중심이 될 수 없다. 자신의 상황에 따라 스케줄이 나올 수 없다는 의미다. 적은 출연 분량이지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촬영장에서 마냥 대기하기 일쑤다. 새벽부터 시작된 촬영이 밤까지 이어지고 오후 늦게 시작돼 날을 넘기기도 한다.
아역 배우들이 자주 등장하는 아침 드라마 제작 PD는 “성인 배우들도 견디기 힘든 스케줄이기 때문에 아역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더 클 것이다. 때문에 아역들의 촬영이 일찍 끝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지만 촬영장 여건상 예상대로 될 때는 많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탈바꿈한 유승호를 가리켜 “잘 자라줘 고맙다”고 말하곤 한다. 이 말은 단순히 멋지게 성장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아역 배우 중 또래에 비해 성장이 더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역 출신인 성인 배우 A와 B는 연기력도 좋고 외모도 준수하지만 키가 작아 여배우와 균형을 맞추기 힘들어 캐스팅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있다. 앞서 언급한 <사랑과 전쟁2>에는 기획사 대표가 “너무 빨리 성장해서 깜찍한 이미지가 없어지지 않도록 식사조절에 신경 써 달라”고 주문했고, 엄마는 아이를 굶기기 시작한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이는 아역 배우를 키우는 몇몇 엄마들 사이에서 실제 이뤄지는 일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왼쪽부터 영화 <7번방의 선물>, 예능 프로그램 <붕어빵>, 영화 <각설탕> 속 아이들의 활약 모습.
단순한 신체적 성장뿐만 아니라 정서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던 C 양의 안하무인 행동은 소문이 자자하다. 워낙 예민하고 제멋대로인 데다 스태프들이 항상 이야기를 들어주고 과잉보호하다 보니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곤 한다.
한 드라마에서 C 양의 엄마로 출연했던 한 배우 D는 “TV 속에서 비쳐지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너무 달라 나도 깜짝 놀랐다. 참다 못 해 다그치면 내 곁에 잘 오지 않아 촬영에 지장이 생기기도 한다. 연기 활동도 좋지만 아이들은 아이답게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예능프로그램 출연이 잦아졌다. SBS <붕어빵>을 비롯해 MBC <일밤> ‘아빠 어디가’ 등이 연예인의 자녀들을 출연시켜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다. 두 프로그램의 경우 부모가 함께 출연해 소통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다. 야간 녹화가 이어지면 아이들의 피로도가 급격히 상승할 수밖에 없고 방송에 익숙해질수록 아이들다운 자연스러움이 줄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눈과 귀로 듣고 보고 그들의 입으로 표현되는 천진난만함이 화제를 모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것을 원하는 제작진이 콘셉트를 잡아주기도 한다. 몇몇 아이들이 “아빠가 시켰잖아”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이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방송을 위해 아이들에게도 설정을 강요하는 상황이 못내 씁쓸하기도 하다.
이는 아역 배우들의 연예 활동에 대한 확실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국내 상황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10년 할리우드 영화 <워리어스 웨이>에 출연하며 생후 10개월 된 아기와 호흡을 맞춘 배우 장동건은 촬영하기 전 2개월가량 전문 교육을 받았다. 육아와 관련된 법 적용이 엄격하기로 유명한 미국에서는 영화 촬영을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당시 장동건은 “아이 안는 법과 기저귀 가는 법 등을 배웠다”고 밝혔다. 게다가 미국에는 아역 배우가 일일 4시간 이상 촬영할 수 없다는 보호 규정이 있다.
한 연예 관계자는 “아역들이 각종 작품에서 맡는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성공적으로 성인 배우로 정착하는 확률도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법적인 조치가 필요한 때다”고 강조했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