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방정식 놓고 제각각 풀이 ‘끙’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우리금융그룹 건물 전경. “국민주 민영화 절대 불가” 뜻을 밝힌 신 위원장은 “국민주 지지” 노조 측과 정반대 입장이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인사청문회에서 우리금융 민영화의 시기와 방식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밝히자 금융권은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신 위원장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조기 민영화를 시사했다. 민영화 방식에 대해서는 ‘국민주 방식’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던 ‘분할매각’, 논란이 거센 합병을 통한 메가뱅크(초대형 금융회사) 방식 등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은 원론적인 수준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구체적인 방식을 언급하기는 무리일 것”이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라도 민영화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듯하다”고 분석했다.
대부분 가능성을 언급한 신 위원장은 국민주 방식에 대해서는 유난히 ‘반대’를 넘어 ‘절대 불가’의 입장을 갖고 있다. 신 위원장은 포스코, 한국전력 등의 예를 들며 ‘외국 기업이 됐다’, ‘주식을 보유한 국민은 일을 안 하게 되며 재산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해당 기업에도 좋지 않고 국민에게도 좋지 않다는 것.
신 위원장의 발언은 무엇보다 분할매각과 메가뱅크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분할매각 방식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역시 분할매각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금융의 경우 분할매각을 하면 돈이 별로 안 될 것”이라며 “우리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는 솔직히 번거롭기만 한 물건”이라고 말했다.
메가뱅크나 합병도 문제점을 안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우리은행지부(노조·위원장 임혁)는 지난 19일 성명을 발표하고 신 위원장이 언급한 “메가뱅크·합병 방식을 결사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조는 메가뱅크·합병 방식은 이미 여러 문제점과 부작용이 노출된, 실패한 방법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하고 대신 ‘국민주 방식의 민영화’를 지지하고 있다. ‘지배구조 안정화와 국민 재산 형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이는 신 위원장의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하면 일괄매각이 가장 손쉽고 깨끗한 방식이다. 하지만 시가총액이 무려 9조 5000억 원이 넘는 우리금융을 통째로 인수할 수 있는 금융회사가 있을지 의문이다. 공적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56.97%만 매각한다 해도 시장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고려해 6조 원은 훌쩍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금융 인수 후보군으로 지목되고 있는 곳 모두 여력이 없거나 어수선한 분위기다. 지난 정부에서 우리금융 인수를 타진한 바 있는 하나금융지주는 외환은행 인수로 급선회했으며 농협금융지주는 이제 막 출범해 여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나마 KB금융지주와 교보생명이 유력 인수 후보로 떠오르고 있지만 KB금융은 내부 갈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데다 어윤대 회장이 조만간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있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
지난 2차 매각 시도 당시 우리금융에 큰 관심을 보인 바 있는 교보생명은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조건이 맞는다면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뭐라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인수 여력은 있느냐’는 질문에는 “충분하다”며 여지를 남겼다.
지금 상태로라면 △공적자금 극대화 △조기 민영화 △금융산업 발전이라는 우리금융 민영화에 걸려 있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 세 차례의 실패도 이를 모두 갖추려 했다는 데 비롯한다. 금융권의 한 M&A(인수·합병) 전문가는 “지난 세 차례의 실패에서 문제점과 교훈은 이미 다 노출된 상태”라며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갈수록 수익성이 악화돼가는 은행에 수조 원을 쏟아 붓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예보 지분을 조금씩 나눠 파는 ‘블록세일’이 언급되는가 하면, “국회에서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이팔성 회장 ‘버럭 메일’ 왜? 인사청탁 엄중경고 ‘타이밍 묘하네’ 평소 이 회장은 전 임직원에게 종종 이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지난 12일 이메일은 내부 직원들조차 당황스러워할 정도로 지나쳤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 우리금융 직원은 “오너가 아닌 금융사 CEO(최고경영자)가 전 직원에게 보낸 메일치고는 강도가 너무 셌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이메일 발송은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의 도덕성과 정치화를 노골적으로 비판한 직후 벌어진 일이어서 시기적으로도 미묘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때마침 신 위원장이 남은 임기와 상관없이 금융권 수장들을 교체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도 알려졌다. 이팔성 회장은 어윤대 KB금융 회장,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과 함께 지난 정부 인사로 분류돼 중 교체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