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궁합’ 티 내다가 여론에 콕
▲ 신동빈 부회장 | ||
얼마 전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지난해 1월 취임 후 19개월 만에 처음으로 방한했다. 호텔업계는 국빈급으로 위상이 올라간 반 총장의 고국 방문을 앞두고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내로라하는 호텔들이 반 총장의 숙소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경쟁을 펼쳤던 것. 결국 승자는 롯데호텔이었다. 올해 들어 각종 정부 행사와 국빈 방문 등을 가장 많이 유치하며 두각을 나타냈던 롯데호텔이 또 다시 미소를 짓자 업계에서는 ‘MB 효과’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올해 초 롯데그룹은 정기인사에서 장경작 호텔롯데 대표이사를 호텔부문 총괄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장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동창으로서 지금도 사석에서는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 이런 관계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와 당선인 시절 롯데호텔 31층을 베이스캠프로 사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롯데의 장 사장 전면 배치는 ‘MB 코드인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반 총장의 숙소가 하얏트호텔로 급작스레 변경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방한을 불과 4일가량 앞둔 시점이었다. 국빈급 숙소가 이처럼 변경되는 경우는 이례적인 일. 또한 그 이유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했다. 이에 대해 롯데호텔 관계자는 “호텔 근처에서 대규모 촛불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경호 등의 문제로 숙소를 바꾼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또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최근 롯데호텔이 타 호텔과의 유치 경쟁에서 너무 앞서나가는 것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지자 정부가 뒤늦게 숙소를 변경하며 수습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또한 촛불시위 정국에서 롯데에 대한 민심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도 감안했을 것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일부 네티즌들과 시민들은 롯데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롯데마트가 ‘미국산 쇠고기를 팔 가능성이 있다’며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롯데마트가 지난해 5월 미국산 쇠고기 판매를 개시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7월 판매를 중단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반 총장이 굳이 롯데호텔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롯데호텔 관계자는 “그런 말들이 나와 우리도 곤란하다.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일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급물살을 타는 것 같던 제2롯데월드 건설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올해 초 이 대통령은 제2롯데월드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일요신문> 838호 보도). 이 대통령 발언 이후 제2롯데월드 건설에 반대하던 국방부가 입장을 선회하면서 신격호 회장의 오랜 꿈인 제2롯데월드 건설은 현실로 되는 듯했다. 때맞춰 서울시는 제2롯데월드 건축물 중 112층 건물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심의를 통과시켰다. 국방부도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서울공항의 활주로에 대해 대안 검토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 건설에 대한 반대 여론은 점점 거세져만 갔다. 특히 서울공항의 새로운 활주로로 가장 유력한 성남 시민들은 반대 서명운동까지 나설 태세다. 만약 서울공항 새 활주로가 들어서면 비행안전구역에 해당돼 재산권 행사 등에 있어서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사업 타당성도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특정 기업을 위한 사업을 허락해줄 경우 이 대통령과 정부는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청와대 내에서 제2롯데월드 건설에 대한 재검토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 정부 관계자는 “2기 비서관들이 제2롯데월드 건설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다는 것을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 대통령은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마치 대기업을 위한 정책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기업을 위한 정책은 더욱 신중히 하라는 지시를 여러 차례 내렸다. 실무진들이 제2롯데월드 사업도 원점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롯데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금융업 진출도 ‘노란불’이 켜졌다. 금융업은 신격호 회장의 후계자 신동빈 부회장이 글로벌 사업과 함께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업. 올해 초 대한화재(현 롯데손해보험)에 이어 6월엔 코스모투자자문까지 인수하며 점차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는 증권사 인수를 목표로 하고 있어 금융왕국을 위한 롯데의 행보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금융 당국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은 듯하다. 내년 2월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대기업들이 앞 다퉈 금융업 진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 금융권 내부와 시민단체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 무분별한 진출로 업계 내부의 출혈경쟁이 불가피해질 뿐 아니라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또한 일부 대기업의 경우처럼 금융사들이 총수 일가의 비자금 관리처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증권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금융감독원도 작금의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올해 하반기부터는 금융감독원이 대기업의 금융업 진출을 보다 신중하고 엄격하게 관리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 물론 이것이 롯데에만 국한되지는 않겠지만 금융업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롯데로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