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경선… 난 아닌데 왜들 이래?”
지난 3월 22일,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의원 30명은 통합진보당 김재연, 이석기 의원의 자격심사 안을 공동 발의했다. 갈길 먼 통합진보당에게는 말 그대로 ‘아닌 밤 중 날벼락’과 같은 소식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발의 안은 정부조직법 협상 타결 조건으로 새누리당이 민주당에 내민 카드였다. 기습을 당한 두 의원은 자격심사 안을 발의한 여야 의원 30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곧바로 반격에 나선 상황. 이번 사건의 당사자이자 통합진보당 대변인인 김재연 의원은 지난 3일 <일요신문>과 만나 최근 심경을 ‘까놓고’ 털어놨다.
김재연 의원이 자격심사 안을 발의한 여야 의원 30명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며 반격에 나섰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자격심사 안이 발의된 게 열흘이 흘렀는데 지금도 엊그제 일 같다. 너무 억울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힌다. 왜 그 상황(여야 정부조직법 협상)에서 이 문제가 거론됐는지 이해가 안 간다. 제삼자가 봐도 뜬금없지 않나. 하물며 당사자로서 얼마나 황당했겠나.
―예측조차 못했나. 민주통합당 쪽에서 귀띔 정도는 있었을 법한데.
▲전혀 예상치 못했다. (민주당 쪽에서는) 한마디 상의도 없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전혀 뜻밖이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나.
―지난 두 번의 경우와 다르게 매우 강경한 입장이다. 자격심사 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상대로 고소장(명예훼손 혐의)까지 제출했는데.
▲무엇보다 허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도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한다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여러 번 말했다. 지난해에는 나의 결백을 내가 얘기하고 다니는 방법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난번과 크게 달라진 두 가지 사실이 있다. 하나는 당내 진상보고서가 새롭게 발표됐다는 거다. 애초 보고서의 상당 부분이 허위로 드러나면서 나의 결백이 밝혀졌다. 또 하나는 지난해 11월 발표된 검찰 수사 결과 나의 무혐의가 드러났다. 얼마 전 있었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채동욱 후보자 역시 내게 혐의가 없음을 재차 밝혔다. 아직도 내가 부정 경선에 연루된 것처럼 언급되는데, 이는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 취하할 생각은 없나.
▲허위 사실로 인한 명예훼손이다. 당사자들이 사과를 한다면 소를 취하할 생각은 있다.
―이번 자격심사 안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보복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이번 자격심사 안 발의는 법적 요건도, 객관적 근거도 없다. 이전에 이정희 대표의 대선후보 시절, 정면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반박했던 상황도 있었고 이석기 의원이 김종훈 미래부 장관 후보자의 CIA 연루설을 밝힌 문제도 있지 않았나. 이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아니면 뭔가. 야당이 정부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한 직분이다. 그런 야당 의원에게 전혀 뜻밖의 상황 속에서 보복이 들어왔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자기와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도저히 존재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거다. 한마디로 ‘유신스타일’이다. 정권 초부터 이런 상황이 펼쳐지는 것 자체가 무섭고 소름끼친다. 이런 공포 분위기가 무척 우려스럽다. 이제 누구든 잘못 보이면 의원 자격심사를 통해 입법기관의 역할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거다.
―이에 동조한 제1야당 민주통합당에 대해서도 무척 섭섭했을 텐데.
▲실망스럽고 안타깝다. 앞서 강조했듯, 야당은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면 견제하는 것이 기본이다. 더군다나 127석을 가진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이 기본 원칙에 무게를 두고 버텨야 하는 게 몫이다. 그런데 이건 뭐 흔들리는 정도를 넘어, (여당에) 끌려가도 너무 끌려갔다. 제1야당의 역할을 포기한 거다.
―사실 여당과의 정부조직법 협상 타결을 위해서 민주당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는 시각도 존재하는데.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과 시점이라 해도 동료 의원을 희생양 삼아 어떤 협상을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늘은 우리일지 몰라도 내일은 민주당 의원들이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이번 자격심사 안 발의 탓에 ‘종북’ 이미지가 다시금 견고해졌다.
▲마음이 아프고 억울하다. 낡디 낡은 색깔 공세, 이건 마녀사냥이다. 국회라는 신성한 공간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이다. 이를 다 뒤집어쓰고 1년 가까이 의원 생활을 해왔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 무조건 종북으로 얘기가 되니까 억울한 거다. 이 마녀사냥, 매카시즘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다’ 발버둥 친다고 해도 빠져나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더라.
지난 3월 25일 김덕중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김재연 의원이 질의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하지만 종북은 실체가 있는 게 아니다. 밖에서 그런 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다. 이 문제는 경색된 남북관계가 걷히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오랫동안 색깔 공세에 시달렸던 인물이 누구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남북문제를 풀어나갔다. 그 이후에는 평화 통일의 선구자적 인물로 역사적 평가를 받지 않았나. 이처럼 우리가 갖고 있는 평화에 대한 정체성을 잘 가지고 나간다면 종북 이미지는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고 본다.
―같은 진보 정당의 노회찬 진보정의당 대표의 ‘삼성 X파일’ 사건 판결의 경우, 그 부당성에 대해 상당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런데 본인이 주장하고 있는 이번 자격심사 안의 부당성에 대해서는 아직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입장에서는 굉장히 안타깝다. 사실 진보 정당의 정신적 버팀목은 도덕성이다. 근데 지난 부정 경선 사태를 겪고 이 도덕성이 상처를 입었다. 이런 것이 우리의 이미지에 덧씌워지면서 많은 것이 훼손된 거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가 워낙 많이 노출되다 보니, 아무리 우리가 도덕적 정당성에 대해 말을 한다 해도 잘 안되더라. 하지만 진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역사적 평가 속에 무겁게 받아들여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지난해에 비하면 많은 분들이 이번 사태에 대한 부당성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미묘하지만 변화는 있었다.
―당의 타격도 상당할 것 같다.
▲어찌 보면 충분히 예견된 수순이었다. 지난해 이정희 대표가 TV토론회에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아이고 저래도 괜찮을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난리 날 텐데”라고 하더라. 아니나 다를까, 연초부터 김미희, 김선동 의원이 의원직 박탈형에 해당하는 1심 판결을 받았다. 이번 자격심사안 발의도 마찬가지고. 박근혜 정부의 탄압 양상을 충분히 예견했기 때문에 지난해보다는 혼란스럽진 않다. 우리도 그간 많은 일을 겪으면서 내성과 맷집이 생겼다. 한 마음으로 똘똘 뭉쳐서 잘 해나갈 거다(웃음).
―사실 통합진보당을 포함해 진보 정당 의원들 상당수(12명 중 9명)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모든 것이 주류 측의 탄압이라 보는가.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탄압이 두려웠다면, 진보 정당 의원 하지 말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탄압은 결국 지난 10년 동안 진보정치가 그래도 나름 성장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만큼 진보 정당이 사회적 영향력과 국민에 대한 존재감이 커졌다는 거다. 이런 영향력이 미미했다면, 주류 정당들은 우리를 그냥 내버려 뒀을 것이다.
―진보 정당이 성장했다? 되레 후퇴했다는 말이 많지 않나.
▲그건 이렇게 봐야 한다.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진보 정당이 처음 원내에 진출했다. 당시 비례 8석, 지역구 2석을 얻었는데, 지난해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은 13석을 얻었다. 이 중 지역구가 7석이나 됐다. 일부 의원이 탈당했지만, 지금도 우리 지역구 의원이 4명(수도권 2, 호남 2)이나 된다. 이렇게 진보 정당이 지역구, 그것도 수도권과 호남에 진출했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한국 정치 역사에서 이렇게 진보 정당이 10년을 버텼다는 것 자체가 발전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는.
▲예상했던 부분이긴 하지만, 생각보다 더 실망스러운 불통 스타일이다. 인사 문제의 원인도 결국은 소통을 생략한 독재식 인사에 있다. 또 국회의 기능 자체가 철저히 무시되면서 이제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거수기로 전락했다. 이번 자격심사안도 어찌 보면 새누리당이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 아닌가. 국민도 우려할 것이다. 유신통치시대를 연상케 하는 이런 상황을 보고 있자니, 너무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사실 야권 내부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복지 콘텐츠에 대해 기대한 부분도 있었는데.
▲슬로건만 그럴듯하다. 박근혜 정부는 그것을 뒷받침할 재원, 인물, 정책 어느 한 가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복지가 이뤄지려면 경제민주화라는 공약이 일정하게 실현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실행 의지가 전혀 없다. 난 기획재정위원회에 속해 있다. 얼마 전, 인사청문회가 있지 않았나.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김앤장 출신의 수백억 원대 재력가였고 경제부총리는 이전부터 경제민주화를 반대해 왔던 사람이다. 또 이번에 20조 원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논의하고 있는데, 추경 편성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나. 결국 그 돈은 국가 부채밖에 없다. 이에 앞서 이명박 정부가 깎아 준 부자들의 세금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부터 해야 한다. 근데 이런 의지가 전혀 없다.
―초선 의원 김재연 의원이 그리는 미래와 목표는 무엇인가.
▲난 헌정 이래 최초의 청년대표 국회의원이라고 하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현재 한국의 미래를 담보하는 2030세대가 위기다. 이는 한국 사회의 위기다. 이러한 청년 세대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국회에 들어왔다. 청년들이 이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정계에도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정말 4년 동안 잘해보고 싶었다. 근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들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거다(웃음).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