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사 ‘암초’에 검찰 ‘폭탄’까지 앞길 험난
▲ 9월 말부터 추진될 것으로 예상됐던 KT-KTF의 합병이 대외적 반대와 여러 악재가 겹쳐 연기되고 있다. 사진은 남중수 KT 사장.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그동안 KT와 KTF의 합병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KT는 지난해부터 합병추진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어 놓고 준비 작업을 해왔다. KTF 역시 올해 초부터 합병에 대비, 직급 및 급여 체계를 KT에 맞게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엔 양사 유통망을 통합하며 합병의 첫 단추를 끼웠고 7월엔 남중수 KT 사장이 “KTF와 합병하기로 했다”며 공식선언했다. 8월 초엔 120억 원을 공동출자해 양사 IT부문 자회사인 ‘KT데이터시스템’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합병이 연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KT 관계자도 “이미 내부적인 논의는 거의 마무리된 상태지만 합병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외적인 요건이 충족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올해는 힘들 것 같다”고 전망했다.
SK텔레콤(SKT) LG텔레콤(LGT) 등 경쟁사에서도 합병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시장점유율로 봤을 때 국제전화 63%, 국내전화 86%를 차지하고 있는 KT와 이동통신 31.5%의 KTF가 합치면 시장 독점현상이 생길 것이란 게 이들의 주장. 특히 LG파워콤·LG데이콤 등과 합병을 준비하고 있는 LGT에 비해 SKT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월 19일 김신배 SKT 사장은 “유선에서 절대적 지배력을 가진 사업자가 무선과 결합하면 시장의 공정경쟁을 심각하게 훼손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합병은 곤란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SKT가 이러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올해 초 하나로텔레콤 인수 조건으로 그동안 독점하던 ‘황금주파수’ 800㎒를 재배치하기로 한 ‘학습효과’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시 이 조건엔 KT의 반발이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SKT의 강경한 반대 뒤에는 정부로부터 실리를 얻어내고자 하는 전략이 숨어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SKT는 지난 8월 말 국회에 ‘시내망 조직분리 필요성 및 해외사례’라는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KT-KTF가 합병할 경우 KT의 유선망을 분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같은 논리로 몇몇 시민단체에서도 KT-KTF가 합병할 경우 통신서비스가 저하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경쟁구도가 돼야 질 좋은 서비스가 공급될 수 있는데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소비자라는 것이다.
KT-KTF 입장에서 보면 경쟁사 및 시민단체들의 이러한 반대는 이미 예상했던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최종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서의 부정적 기류는 뼈아플 듯하다.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시급한 현안이 많아 KT 합병 문제는 아직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승인 신청이 들어오면 심사는 하겠지만 이대로라면 ‘노’(No)라고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 여론의 향방을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가뜩이나 공정성 시비로 곤경을 겪고 있는 방통위가 굳이 여론을 거슬러가며 KT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미국발 금융위기도 합병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KT가 KTF를 합병하기 위해서는 KTF 지분을 사들여야 한다. 이 경우 드는 돈은 대략 2조~2조 50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KT의 자체 보유금액을 최대한 가용한다 하더라도 금융권으로부터 차입해야 할 돈은 1조 원이 넘는다는 것이 업계의 계산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대출을 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규모의 돈을 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터진 검찰의 KTF 납품비리 수사도 합병작업에 암초로 등장했다. 우선 KT 주주들이 이미지가 실추된 KTF와의 합병을 찬성할지 미지수. 여기에 검찰이 KTF의 지난 3~4년간 비리들을 모두 파헤칠 것이라고 밝히면서 당시 KTF 수장이었던 남중수 사장도 검찰 사정권 내에 들게 됐다. 조영주 전 KTF 사장의 구속을 계기로 검찰 수사가 확대될 경우 합병 논의는 자연 뒤로 밀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악재가 외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도 합병 반대에 대한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한 설문조사 결과 KTF 직원들의 70% 이상이 합병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KTF의 한 직원은 “합병될 경우 구조조정을 당하거나 임금이 삭감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누구를 위한, 뭘 위한 합병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러한 내부 분위기는 정치권의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 듯하다. KT 합병을 다루고 있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한 재선 의원 측은 “회사 내부 간 의견 차이가 조율이 덜된 것으로 안다. 국회에서 다루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