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벌써 침 발라 놨어?
▲ 김승연 한화 회장(왼쪽), 정몽준 의원 | ||
그동안 높은 평가를 받아온 포스코가 ‘후보 탈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빠진 이유 중 하나로 본입찰이 가까워지면서 조급함을 드러낸 점이 꼽히고 있다. 본입찰 마감일을 4일 남겨둔 지난 9일 GS와의 컨소시엄 구성을 전격 선언했지만 당시엔 공동출자만 결의했을 뿐 입찰가에 대한 상세한 조율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포스코 관계자는 “가격을 제외한 나머지 99%는 합의된 상태였다”고 밝혔고 GS 관계자도 “컨소시엄 구성 전부터 서로가 생각하는 가격을 공개할 순 없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는 뜻이었지만 결국 두 회사의 연합이 깨진 이유는 가격 차이였다. 포스코가 GS의 생각보다 1조 원 이상 높은 금액을 입찰서에 써내자고 주장하다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GS가 돌아섰다는 것이 주된 결렬 배경으로 알려진다. 포스코는 GS가 난색을 표한 가격을 가지고 컨소시엄 명의로 입찰서류를 냈다가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된 셈이다. 포스코는 서류 접수 이후 GS를 설득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포스코가 본입찰을 앞두고 GS와 어떻게든 손을 잡으려 했던 배경 중 하나로 이구택 포스코 회장의 개인 입지와 관련된 해석이 주를 이룬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 안팎에선 ‘포스코가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한 경영에만 몰두한다’는 비판론이 거셌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때문에 정치외풍에 자유롭지 못한 포스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물론 이 같은 부정적 평가의 출처를 경쟁후보로 보는 시선도 있다. 어쨌든 이구택 회장의 지지기반이 돼온 포스코 주주들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이 회장에게 절대적 과제였지만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이번 인수전과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을 염두에 둔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여권 유력인사가 특정기업을 위해 뛰고 있다’는 특혜시비에서 ‘정부가 어느 특정기업을 이미 제외시켰다’는 비토론까지 각양각색이었다. 게다가 지난 광복절특사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포함되면서 정부와 교감이 두터워진 한화와, 최대주주 정몽준 의원의 여권 실세 자리매김으로 주목받아온 현대중공업의 2파전으로 좁혀진 점과 정부 산하인 산업은행이 매각주체란 점이 맞물리며 여러 해석을 빚어내고 있다.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상당수 재계 인사들이 이번 인수전의 무게추가 한화에 기울어졌다고 보고 있다. 이미 인수전 막차를 탔던 현대중공업의 속셈에 대한 여러 관측이 나왔었다. 포스코-GS 연합 결렬 당시 무덤덤했던 현대중공업과는 대조적으로 한화는 ‘포스코의 입찰자격을 인정할 경우 소송도 불사한다’는 강경자세를 취했다. 이런 한화의 공세가 포스코 탈락이란 결과로 이어지면서 한화 관계자들은 24일쯤 결정될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낙관하는 분위기다.
현대중공업은 유일하게 은행권 재무투자 없는 단독인수 방침을 고수하며 현금 유동성에 자신감을 보여온 점 등이 우위를 점할 전망이다. 반면 한화는 대한생명 한화건설 상장 등을 통해 인수대금을 조달하려 하지만 최근 증시침체에 상장일정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포스코 제외’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산업은행이 과연 누구를 선택할지 주목된다.
천우진 기자 wjc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