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 매출? 창고에 쌓았을 뿐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이 ‘공매도’ 때문에 보유 주식 전량을 팔겠다고 선언하자 일각에선 뭔가 다른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 물건은 팔았는데 돈이 없다?
지난해에도 셀트리온은 장사를 잘했다. 어림잡아 총 3500억 원을 팔아 2000억 원 넘게 이익을 남겼다. 그런데 ‘현금’이 없다. 장부상 셀트리온 금고에는 1000억 원밖에 없다. 전년에 금고에 남아있던 잔액이 560억 원이니까 400억 원 남짓 늘었을 뿐이다. 그럼 나머지 1600억 원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세금을 떼고도 1000억 원이 넘는 돈이다. 비밀은 ‘외상(매출채권)’에 있다.
2010년 말 1600억 원이던 외상 매출이 2011년 37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이는 숫자로만 존재하지 현금이 아니다. 익명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외상 매출은 흔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외상이 현금으로 바뀌지 않는 데 있다. 셀트리온의 경우 외상만 계속 쌓일 뿐 현금이 들어오지 않는 게 문제다. 가공매출을 의심하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 물건 샀는데, 팔리지 않는다?
그럼 셀트리온에서 외상으로 물건을 사 간 곳은 어디일까? 바로 계열사인 셀트리온헬스케어다. 셀트리온이 공장이라면, 이 회사는 판매대리점 격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물건을 사서 창고에 쌓아만 두고 있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창고에 쌓아둔 재고는 2011년 3806억 원에서 2012년 6788억 원으로 3000억 원 가까이 늘었다. 셀트리온의 연매출과 엇비슷한 규모다. 물건은 안 팔리는 데 쌓아만 두다 보니 손해가 날 수밖에 없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지난해 245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 흑자는 나는데 빚은 눈덩이?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현금흐름표란 실제 회사 금고에 오간 돈의 기록을 종합한 표다. 지난해 셀트리온의 현금흐름표는 가히 충격적이다. 물건을 만들어 팔아 벌어들인 현금은 210억 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2010년 467억 원 늘었던 단기부채가 2011년에는 1597억 원, 지난해에는 2506억 원이나 급증했다. 단기부채는 보통 1년 안에 갚아야 할 빚이다. 앞서의 회계전문가는 “1년에 버는 돈은 200억 원인데, 갚아야할 돈이 12배가 넘는다. 빚을 내서 빚을 갚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실제 셀트리온은 2010년 1392억 원, 2011년 1294억 원, 2012년 2083억 원의 단기부채를 갚았는데, 빌린 돈이 갚은 돈보다 더 많다. 매년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뜻이다. 물건을 팔아서 돈을 못 벌다 보니 물건 만드는 데 필요한 원재료를 빚을 내서 사들이는 셈이다. 결국 현재 상황을 보면 외상 대금을 돌려받기 전에는 정상화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투자유치 알고보면 빚더미?
빚더미에 앉은 건 대리점 격인 셀트리온헬스케어도 마찬가지다. 역시 현금흐름표를 보면 지난해 1940억 원이 부족했다. 돈 주고 물건은 사왔는데, 물건이 안 팔리니 물건을 사오기 위해서는 빚을 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밖에서 돈을 끌어왔다.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지난해 1월 JP모건 계열의 외국자본으로부터 2540억 원을 투자 받았다. ‘투자’니까 주식으로 들어온 돈인데, 사실 따지면 빚이나 다름없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는데, 회사가 2014년 말까지 상장하지 못할 경우 투자금을 모두 현금으로 돌려주기로 했고, 기존에 제시한 영업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도 투자금에 연복리 25%라는 높은 이자를 추가로 물어주기로 약속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지금처럼 적자가 계속 나 상장이 되지 못하면 엄청난 빚 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기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금고에 남은 현금은 고작 300억 원이 채 안 된다. 나머지 재산이라는 게 대부분 팔리지 않은 재고다. 재고가 빠르게 팔려 현금이 들어오거나 또 다시 큰 빚을 내지 않고서는 이 외국자본이 상환을 요구할 경우 감당해낼 방법이 없다. 금호아시나아그룹이 해체된 것도 결국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주식 형태로 조달한 빚을 갚지 못해서였다.
한편 서 회장의 경영권 매각방침 발표 후 주가가 급락했음에도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은 여전히 코스닥 시장 1위인 3조 원에 달한다. 셀트리온홀딩스를 통해 서 회장과 특수관계인들이 가진 지분가치만 시가로 1조 2000억 원이다. 경영권 프리미엄이 인정된다면 값은 이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셀트리온 매각 주간사로 셀트리온헬스케어에 대한 투자결정을 내렸던 JP모건이 선정된 점도 눈길을 끈다.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의 50%는 서 회장이 갖고 있다. JP모건에 돈을 상환할 책임이 서 회장에게 있는 셈이다. 서 회장은 매각방침 발표 직후 주가가 연일 급락하자, 매각방침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최열희 언론인